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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의 사도 Sep 28. 2024

3부 8화)절망

아주 거짓말은 아니였지만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18세 소년은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의자와 함께 뒤로 자빠졌다. 그러면서 고통스럽게 울어되는데 박만호는 덕분에 인생 최고의 쾌감을 발가락 끝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느낄 수 있었다. 무더운 햇살과 산 속 찬 공기가 적절히 어우러져 적당한 온도가 감싸는 폐가는 죽일 의도가 없는 살기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현승의 부하는 더 보고 있기가 불편해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창문을 통과하는 햇살이 만든 길을 먼지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누렇기도 한 벽과 까맣기도 한 벽, 먼지 가득한 가구들이 붙어있는 벽까지 한바퀴 돈 박만호는 왼쪽에서 네번째에 있는 소년, 방금 넘어져 울고있는 학생 오른쪽에 있는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여 눈을 마주쳤다.


“네 친구들이 당한거 차례대로 봤지? 하나씩 보여준 세 개중에 하나 골라. 뭘로 할래?”

답변을 요구받은 학생은 덜덜덜 떨면서 아무 말도 못했다. 실제로 말을 할 힘도 없었다. 입은 덜덜 떨리는데 배고픈 상태에서 기운 조차 남아있지 못했다. 먹여주는 밥 모두가 먹을 때 본인만 먹지 않았던 가녀린 소년이였다. 

“왜 말이 없어? 그 때 나한테는 귀엽네, 거시기가 작네, 기세등등하더니. 빨리 골라. 잊어버렸어?” 

박만호는 살짝의 힘으로 뺨을 툭툭 치며 말했다. “아 재미없네.”

박만호는 그 옆의 소년에게 갔다. 열흘 넘게 이어진 고문의 지옥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혀를 깨문 소년이었다. 그런데 그 아픔이 너무 커서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했다가 또 시도하고 또 후회하는 그런 나날들과 함께 자신이 자신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그런 아이였다.

“야, 너부터 하자. 뭘로 할래?”

“저... 저요?”

“엉.”

“소... 손톱 뽑기요.”

“그래, 그러자.”


박만호는 씨익 웃고는 그렇게 20분을 더 남자 아이들을 괴롭혔다. 자신이 이 아이들에게 당한 것과 자신이 이 아이들에게 되갚아 주는 정도와 비교했을 때, 이것이 등치상황인지 아닌지는 그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살림이 어려울 때도, 일이 잘 안풀릴 때도, 딸아이의 힘든 모습을 볼 때도, 모든 힘든 일을 여기에서 풀 수 있는 이곳이야말로 그에게 천국이였다. 6명의 미성년자들의 지옥으로 이루어진 이 천국 속에서 박만호는 살아있기를 잘했다는 보람까지 얻었다.


“우리 순진토끼님. 왜 또 울어?”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순진토끼님. 그럼 우리 원래 하기로 했던거 할까?”

“네, 할게요. 할게요. 시키는대로 다 할게요.”


박만호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기다리라고하고나서 건물을 나가 풀더미에 몇 번 슭힌 차로 가서 매트리스를 꺼냈다. 그러고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매트리스를 가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담배피면서 그 광경을 보던 현승의 부하는 역겨운 마음에 인상쓰며 또 눈을 돌려버렸다. 그가 느낀 역겨움에 가장 큰 요인은 못생긴 만호의 웃는 얼굴이였다.


“자, 2층으로 가자.”

박만호는 여자 아이를 묶고 있는 밧줄을 풀어준 다음 손으로 잡고 데려갔다. 데려가는건지 끌고가는건지, 그 동안 뺨만 때리고 몸을 다치게 하지 않았던 수고가 드디어 보상받는구나 날듯한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민국과 민국의 할아버지가 이사가고나서 다미는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다미는 아침에 현석과 아담에게 밥을 해주고 현석이 학교를 가있는 동안에는 혼자 집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다미는 지금 당장 수능을 봐도 최고 성적을 얻을 수 있는 만큼의 실력을 쌓아놓은 상태였다. 점심 시간에 아담이 오면 또 밥을 해주고 집안 일을 하다가 동네 산책을 했고 현석이 돌아올 시간즈음에 맞추어 현석이 들어오는 마을 입구에 서있었다. 예전에는 문철이 데려다주었는데 이제는 버스를 타고 오기 때문에 현석이 오는 시간이 한시간 정도 늦어졌다. 현석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예전과는 달라졌다. 예전에는 바로 집으로 가거나, 동네 어디선가 놀이를 하거나 경치 구경을 하며 대화를 했는데 이제는 항상 바로 집으로 갔다. 돌아가면 아담의 스케줄에 맞춰 집에서 성경 공부를 하거나 성당에 따라 가거나 아니면 집에서 또 쉬는 시간이였다. 다미는 주로 이 저녁의 쉬는 시간에 이런저런 스케줄을 짜고는 했다. 오늘도 여지없이 현석을 만나기 전 동네 산책을 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다미야.”

“안녕하세요.”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수 있을까?” 

만호가 유통업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시내상가 길목에 주차한 차 안에서 혀를 다시고 있었다.

“그... 건물이 혹시 또 없을까? 그 애들을 서로 다른 건물에 두고 싶은데.”

“글쎄요. 찾아보면 있겠죠.”

“그럼 어떻게 안될까? 돈이라면 구해볼게.”

“돈은 됐어요. 그... 무쌍파였나? 거기 두목 죽이고나서 그 쪽 사업 접수하면서 우리 도와주는 조폭이 돈을 많이 벌었거든요.”

“아, 그래? 그럼 도와주는거지? 두 건물 따로따로 조직원도 배치해주고?”

“그럼요. 근데 왜 나눠요? 왔다갔다하면 불편하지 않겠어요?”

“아... 저기.. 그게.. 성별로 나누려고.”



“아하..."

다미는 만호가 들리지 않는 웃음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호의 바램은 하루만에 이루어졌고 만호는 인생의 두번째 행복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세번째 행복을 얻기 위해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요즘 많이 외로우시죠.”

“아니라면 거짓말이죠. 꿈에 집사람이 나와요. 어서 오라고. 함께 있자고. 혼자 외로워서 못있겠다고.”

정환의 아비는 심한 기침을 하며 느린 손동작으로 얼굴의 침을 닦았다. 많이 야위고 주름이 심해진 얼굴이었다. 들떠버린 바닥 장판을 보며 마음 한켠에서 동정심의 한숨을 쉰 아담은 정환 아버지의 손을 잡고 쓰다듬어 주었다. 정환 아버지는 옛날식 디자인의 작은 옷장위에 올려져있는 십자고상과 성모상을 쓱 한 번 보고 다시 아담을 쳐다봤다.

“말이 안되죠. 천국에 가있으면 하느님과 함께 있을테고. 지옥에 가있으면 나쁜 놈들과 같이 벌받고 있을건데 외로울게 뭐 있겠습니까. 아니면 혹시 연옥에 있어도 외로운걸까요.”

“아직 육체에 갇혀있는 저희가 알 수 없는 문제죠.”

“늙은 놈이 그냥 혼자 외로워서 꾼 꿈이죠, 뭐.”

“건강 챙기셔야돼요. 요즘 일도 잘 안생기신다면서요? 생활비가 필요하면 저에게 말씀하세요.”

“그래봐야 살 날이 얼마 안남았습니다. 이제 건강도 그냥 집착이라 느껴져요.”

“보이지 않지만 성령께서 돌보고 계실겁니다. 얼마나 신앙생활 열심히 하셨어요, 그동안.”

노인은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아무 대답도 안하고 몸을 뒤로 살짝 젖혔다 앞으로 했다를 두어번 반복하고 침침한 눈을 떳다 감았다했다.

“영은처자한테는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우리 집사람이 나쁜 말을 많이 했어.”

“영은이도 여러모로 어르신께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죽음이 눈 앞에 오니 그동안의 삶이 너무나 다 어리석었던 것 같아요. 그냥 대충 잊고지내도 됐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아담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납득도 잘 되지 않아 그냥 미소만 지었다. 노인은 그것을 눈치채고 멋쩍게 웃었다. 

“문철이 죽은... 그 경찰차 폭발 범인은 아직도 못잡았답니까?”

“경찰차가 순찰 중 휴식 시간에 한적한 읍내길에 주차가 되있었나봐요. 경찰은 근처 편의점에 갔고. 그 때 복면 쓴 사내가 차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모습이 다른 차 블랙박스에 찍혔어요. 거기까지 수사가 됐는데 그 복면 쓴 사람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사실상... 포기한 것 같아요.”

“그렇군요. 허허... 만약 정환이가 살아있었다면 가장 먼저 의심받았겠죠. 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담은 입술을 안쪽에 집어넣고 침을 닿게 하고는 쓰읍 소리와 함께 글쎄요라고 할 말 없는 상태를 모면했다. 

“문철이 그 놈이 서울에서 깡패생활할 때 원수진 놈일까요?”


아담은 입이 근질거렸다. 입 안으로 혀가, 혀 밑으로 심장과 가슴이, 그의 고독한 영혼이 인간의 말하는 기관을 작동시키고 싶어했다. 


‘그런게 아니야, 다미가 죽인거야. 복면을 쓴 사람은 다미가 아니겠지만 분명 다미로 인해 설치된 폭탄이야.’ 


확인한 적은 없지만 절실하게도 확실한 사실을 자신만 알고 있는 것이 그를 고독하게 만들었다. 

상간을 했다, 조직 폭력배 생활을 했다, 뺨을 때렸다, 모진 말을 했다, 이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악이 존재한다는 걸. 자신이 그 악과 고독한 싸움을 한다는 걸 말하고 위로받고 싶었다. 




독실한 신자이니 악마의 존재를 믿을 테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비밀 간직도 될테고, 인품으로 보아 공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을 것이니 말해도 될 이유는 넘치도록 많았다. 진실이 삶을 바꾼다. 하지만 저 노인에게는 남은 삶이 별로 없어보였다. 손해라고 할 것은 없었다.

“현석이랑 다미는 잘 지내나요?”

“예? 아, 예. 네. 둘 다 잘...”

아담은 자기도 모르게 몸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며 대답했다.

“입양한 애들이라고 했죠?”

“네.”

“아이들의 친부모는 압니까?”

“아... 아니요. 모릅니다.”

“그 아이들은 원래 친남매인가요?”

“아니요. 그러지는 않고요. 저희 세 명이 함께 모여 가족이 되었죠.”

“제가 죽고 나면 그 아이들도 청년이 되고 노인이 되고 또 그렇게 되겠죠. 잘 키워주세요, 신부님이.”

“예..”

“저는 신부님들이 입양을 할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허허웃는 소리를 들으며 아담은 심장이 쿵쾅거렸다. 오히려 이런 때에 더 이야기를 해야되나, 하느님께서 동지를 만들어주시려고 이 자리를 만든 것인가 생각도 했지만 아담은 가엾게도 꽤나 소심한 사람이었다.     





아담은 집으로 돌아와 방에서 침대에 누워 쉬고 있었다. 방 안에는 자신만의 TV가 아담이 보고 있는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켜져있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아담은 침대에 누워 잠이 들 듯 말 듯 눈이 감겼다가도 다시 떠져서 또렷한 생각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다시 잠에 들 때면 달콤한 호흡이 얼굴부터 퍼져 몸을 감쌌고 그대로 영원히 잠들고 싶다는 감정적인 바램이 가슴을 멤돌았다. 그 때 똑똑소리가 나더니 현석이 들어왔다.

“아... 주무세요?”

“아니, 그냥 쉬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어..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현석이 쉰소리를 내면서 책상 속 의자를 꺼내 돌려 앉았다. 아담도 반즈음 일어나 허리를 기대고는 먼저 물었다.

“다미는 뭐하니?”

“운동한다고 나갔어요.”

“그래, 할 말이 뭐야?”

“그... 밤마다하는 엑소시즘 의식 있잖아요. 다미한테 하는거.”

“응.”

“효과가 좀 있나요?”

현석은 콧바람을 세게 내쉬고 왜 묻냐고 물었다. 현석은 진짜 준비한 본론을 말하려는데 심장이 야속하게 뛰어대서 말을 바로 잇지 못했다. 아담은 그것을 느끼고 티 안나는 미소를 지으며 현석의 말을 기다렸다. 

“저도 그 의식에 함께 할래요. 옆에서 기도할게요. 만약... 아, 아니, 예. 저도 하고 싶어요.”

구마 기도실 안에 함께 있는게 위험하거나 다른 이유로 안된다면 문 밖에서 기도하겠다는 말을 하려했지만 처음부터 모든 카드를 다 꺼내면 모두 거절될 수 있어서 우선 기본 카드만 꺼낸 것이다. 시계 똑딱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현석에게 들려오기 시작했고 한 번 소리가 날때마다 어떤 대답이 날라올까 염려스러웠다.

“위험해서 안돼.”

“지금까지 특별한 위험이 없었잖아요.”

“너가 함께 들어오면 악마를 더 자극시킬 수 있어. 위험요소가 더 생기는거야.”

“어차피 평소에도 같이 지내니까...”

“구마기도때는 악마도 예민해질 때란다.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지금이다.’ 현석은 생각했다.

“그러면 문 밖에서 할게요. 그렇게도 한다던데요.”

“하고 싶으면 너 방에서 하렴. 거기까지 따라올 필요없어.”

꽤나 큰 저택이라 구마실은 그들의 생활공간과 많이 떨어져있었다. 현석은 방에서 기도하는게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을거라 판단했다. 그러나 그는 이 이상의 대본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민국의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자신의 아들됨이 할 말을 계속 만들어주었다.

“아빠 혼자 너무 힘들어보여요. 많이 지친 것 같고... 솔직히...”

“솔직히 뭐?”

“솔직히 악마한테 당할까봐 걱정돼요.”



현석은 최대한 눈에 힘을 줘서 눈물이 나지 않도록 주의했다. 눈물이 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는데 내가 이렇게 아버지를 사랑했었나 당혹스러웠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그 모습을 절대 아담에게 들키고 싶어하지 않았다. 아담은 현석에게 정말 고마웠다. 하지만 아무리 고통스러운 고독감이더라도 계속 혼자 감당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만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렇기에 고독한 것이고 또 그렇기에 힘든 것이었다. 힘들지 않았음 하는 것은 그에게 논리적 모순이었다.



“민국이 할아버지랑도 그런 이야기 했지? 다미, 악마, 뭐 어쩌고. 그런 말들.”

“네.” 현석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머뭇거리는 시간이 짧아 아담은 머뭇거렸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너도 싸움에 함께 하고 있단다. 다미와 같이 놀고 같이 공부하고 같이 생활하는 것 모든게 다 영과의 싸움이야. 그리고...” 아담은 잠깐 망설이다가 곧 다시 말했다. 

“가장 직접적인 싸움에서 만약 진다면 패배자는 두 명이 아니어야 한 명이어야 해.”

현석은 달려들듯이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두 명이서 싸운다면 그 질 가능성이 낮아지지 않겠어요? 우리 이기는 것만 생각해요.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고요.”


현석은 다시 한 번 더 울먹거릴 것 같은 심정을 가슴에 묵혀놓고 그것을 목구멍으로 통화는 기관에 용기라는 울림을 넣어 이어서 말했다.


“다미를 위해서도요.”

‘주전자가 하나 더 늘었다고 산불을 끌 수는 없단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담은 아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빼앗아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아니야, 괜찮아. 그럴 필요 없어. 아빠 혼자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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