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을에 살고있는 30대 후반 부부는 주일마다 꾸준히 성당에 나오는 몇 안되는 마지막 마을 사람들이였다. 아내는 꿈에서 성모마리아를 만난 이후 아버지의 대장암이 나은 일을 계기로 신자가 되었다.
그 때 생긴 신앙심은 대장암 완치판정 이후 일주일만에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에도 끊어지지 않았
다. 오히려 다른 가족들보다 가장 덜 슬퍼하는 정신상태를 갖게 되어 평온한 마음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그녀의 평온함은 가족들로 하여금 그녀에 대해 서운하게 생각하게 했지만 가족이 모두 천성이 모질지 못해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그런 그녀의 일련의 행동과 말들이 모두 못마땅했지만 부부간의 의리로 대충 맞춰주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사기를 당해 사업이 모두 망하고 부부는 이 작은 시골마을로 이사오게 된 것이었다. 둘은 함께 농사를 지으며 몸은 고됬지만 편하게 살았다. 그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내의 평온함과 모든걸 아내에게 맞추는 남편의 인내심 덕분에 가능했다.
마을에서는 아담의 집 다음으로 현대식으로 잘 지어진 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아내의 아버지가 남긴 유산과 아내가 남편 모르게 저금해놓은 돈으로 지어진 집이었다. 남편은 전업주부였던 아내가 자기 모르게 돈을 모았다는 것에 화가 났지만 도저히 자신의 형편상 화낼 수 없었고 실제로 지내보니 아내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뒤늦게 불쑥불쑥 들었다. 슬기를 제외하고 마을 성인들 중에서 가장 어린 이 부부 중 아내의 이름은 강예정, 남편의 이름은 권자중이었다.
“슬기왔구나.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 먼저들 와있었구만.”
박만호는 강예정에게 손으로 인사하고 권자중의 어깨를 반갑게 툭툭 쳤다. 슬기도 치아를 보이지 않으면서도 반듯하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강예정은 자연스럽게 슬기가 타고 있는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았다.
“아저씨는 얼굴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그니깐, 여자라도 생겼나?” 자중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내밀며 물었다. 당연히 농담이었다. ‘저 얼굴에 장애인 딸까지, 절대 그럴리 없지.’라고 저주를 붓는 속내도 있었다.
“여자? 하하하. 그럼 슬기가 가만 안있지. 그런 소리 말라고.”
네 명은 성당으로 들어갔다. 간만에 한 장소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가 모여있었다. 사람은 정확히 10명이었다. 아담의 정성스러운 기도문과 함께 정환의 아버지 장례식이 조용히 치루어졌다.
“저기 할아버지는 다른 가족 없대?” 만호가 자중에게 물었다.
“몰라요.”
자중이 신부님에게 들키면 혼날까 신경쓰며 조용히 대답했다.
“근데 문철이 아내는 왜 저렇게 울어? 누가 보면 자기가 딸인줄 알겠어. 희한하네.”
“아빠!”
슬기의 만류에 그제서야 만호는 입을 다물었다. 엄숙하면서도 다정하기도 한듯한 신부의 목소리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어려운 말이 이어져 나오는 이 미사시간이 만호에게는 거슬렸다. 신자가 아니지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성당보다는 자신만의 천국인 그곳에 있는 것이 훨씬 즐거웠다. 옆에 앉아있는 자중에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혹시라도 경찰에 신고할까봐 두려운 이유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 예쁜 여자를 독차지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죽음은 우리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닙니다.죽
음은 우리의 삶을 완성해 가는 것이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될 기쁨의 문턱이기도 합니다. 그립고 보고싶고 한 번 더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떠나간 교우의 안식을 위해 기도하는 것 또한 우리의 사명일 것입니다.
죽음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죽음은 하느님의 법이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악마의 간계입니다.”
아담은 정환의 아버지가 천국에 갔을 것이라 굳게 믿으며 기도했다. 제일 앞에 앉아있는 다미는 다리를 모으고 마주 잡은 두 손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미소지으며 아담을 보고 있었다. 그 표정이 아담에게는 잘 보였다. 아담에게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두 명으로 항상 보고 있어야 하는 다미, 그리고 아까부터 콧물 소리와 함께 울고있는 영은이었다. 미안하다는 정환아비의 말을 전해주었을 때도 대성통곡한 그녀였기에 지금 저러고 있는 것이 이상할 것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다른 마을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를테니 의아할 것이 답답하기도 안타깝기도 했다.
장례미사가 모두 끝나고 성당 밖으로 나와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어느 덧 가을이 되어 떨어지는 낙엽이 그들의 풍경을 더 한폭의 그림으로 만들어주었다. 토요일 오후의 한적함과 마을 사람들 총집합이 맞물려 성당 앞의 생기가 돌았다. 돌담길이 거의 없다시피하고 큰 건물이 없어 땅 위의 하늘과 마을의 풍경이 하나가 되어주었다.
“영은씨는 할아버지하고 사이가 꽤 좋았었나봐. 그렇게 슬퍼할 줄 몰랐네.” 참아왔던 궁금증을 반드시 풀겠다는 마음으로 박만호가 물었다.
“아, 예... 오늘 좀.. 그러네요.”
“언니가 마음씨가 좋잖아요.” 강예정이 별 생각없이, 하지만 감정을 진정으로 담아서 말했다.
“아참, 그리고 신부님. 원래 병원에서 장례식을 먼저 하잖아요? 가족들은 따로 안계신답니까?”
“있기는한데요. 생전에 할아버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족에게 알리지말고 성당에서 미사만 한 번 해달라고요. 가족에게서 잊혀지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요.. 특이한 양반이네.”
“아빠.” 슬기가 다시 만호에게 눈치를 주었다.
“슬기야. 내가 널 위해 기도할게. 혹시 아니? 다시 걸을 수 있을지?” 강예정은 진심이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기적이 일어났던 것처럼 슬기에게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장애인 아가씨에게 쓸데없는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못마땅했다.
‘기적은 무슨. 우연이라고. 가끔씩 그런 일들이 있다잖아. 진짜 신이 치유해준거면 일주일만에 그렇게 죽게 내버려뒀겠어?’
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모든게 비정상같았지만 그래도 참았다. 자중은 슬쩍 슬기를 봤는데 다행히 슬기는 웃고 있었다.
“저는 가볼게요.” 영은이 먼저 자리를 떠났고 다른 50대 부부도 타지에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
“저도 같이 기도할래요!” 더 갈 사람은 없다는 것이 확인이라도 된 것 마냥 다미가 갑자기 말했다.
“언니, 나도 언니를 위해 기도할게. 사실 그동안 안했는데 예정이모 말 듣고 나도 하기로 했어.”
슬기 앞에 쭈구려 앉아 슬기의 손을 잡고 흰 피부에 고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기다리듯이 쳐다봤다.
“고마워.” 슬기도 인자한 미소로 화답했다.
“다미가 속이 꽉 찬 애구나.” 예정이 좋아라하며 같이 웃어댔다.
남자들은 멍청히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면서 웃는 것도 제대로하지 못했다. 아담은 일을 봐야겠다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할 일은 다름아닌 영은에게 전화해서 위로하는 것이었다. 아담은 늘 영은이 스스로를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그녀의 주치의처럼 그녀를 케어해왔다. 그것은 자신을 케어하는 것이기도 했다. 친구 영은을 돌보고 있으면 그 시간이 다미에게 지쳐있는 영혼이 온찜질을 받는 듯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나머지도 자리를 파해 집으로 돌아갔다. 다미와 현석도 집에 가는 듯 했지만 다미는 현석에게 먼저가라고 한 뒤 젊은 부부에게 뛰어갔다.
“그런데 이모.”
“응?”
“우리가 기도해서 슬기 언니의 장애가 없어졌는데...”
“그런데?”
“그러고 일주일 뒤에 교통사고로 죽어버리면 어떡하죠?”
“뭐?” 예정이 발걸음을 멈추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미를 쳐다봤다. 권자중은 싸움 구경이 재미있겠다는 생각 조금에 어린게 감히 시비냐는 분노 감정이 섞여들어갔다. 그러나 다미가 한 말은 자신도 한 생각이었다.
‘물론 애초에 장애가 사라질 일도 없을테지만.’ 자중은 아내가 뭐라고할지가 궁금했다.
“너 그게 무슨 뜻이니?”
“이모 아빠처럼요. 슬기 언니도 죽어버리면 어떡해요? 그럼 우리가 죽인 셈이 되잖아요.”
“너 나랑 싸우고 싶어서 일부러 그러는거야?” 예정은 크게 소리쳤다.
“그게 아니라 저는...”
다미는 조금씩 울먹거렸다.
“슬기 언니가 죽을까봐 무서워서...”
강예정은 기죽어 고개숙인 다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껴안아주었다.
“그랬구나, 몰랐어. 미안해.”
예정과 다미는 서로 화해했고 매주 자신의 집에서 함께 기도하기로 약속을 했다. 자중은 이 상황이 우스웠지만 둘만 집에서 심심할 때가 많았는데 잘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우리 집 아저씨가 허락을 안하실 것 같아요.”
“왜?”
“몰라요. 이모가 말 좀 해주세요.”
“그래, 알았어. 걱정하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