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학의 사도 Oct 04. 2024

3부 10화)악마의 문양

주일미사가 끝나고 아담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오늘 미사에 참석한 사람은 4명이었다. 아담은 매주, 그리고 매일 영은이 와서 세례를 받고 싶다고 말하기를 기다렸지만 왜 오늘도 안왔을까 생각하며 애태워했다. 서로 다 안다고해도 고해성사의 내용을 비밀로 해야하니 왜 아직도 세례를 안받냐고 뭐라고 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언젠가 세례를 받으라고만했지 가까운 날짜를 정한 적도 없으니 명분도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가니 강예정이 먼저 서있었다. 언제나 밝고 화사한, 순박한 시골 마을에도, 기조있는 도시에서도 잘 어울릴 여성이 자신보다 먼저 서있었던 것이다. ‘파견성가까지 다 불렀으면 먼저 나와있을 수가 없는데 내가 늦게 나왔나.’ 아담은 성당 안을 들여다봤고 안에서는 마지막 성가의 음원 소리가 들렸다.



“신부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예. 비밀 이야기라도 되나봐요?” 아담은 능숙하게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슬기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잖아요. 기억나세요?” 

“네, 그런데요?”

“다미도 같이 하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집에서 같이 했으면 하는데요.”

“아... 예...” 아담은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예정은 그 표정을 바로 간파했다.

“다미 말이 맞나보네요. 신부님께서 못가게 할거라고 그러더라고요. 그 아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아니요. 잘못해서 아니라.. 아이가 좀 어리고 아무래도 남의 집에 가서 폐를 끼칠까봐요.” 아담은 억지로 지어낸 손동작으로 얼버무렸다. 성당 안에서는 사람 3명이 일어나 각자 성호를 긋고 성당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럴 일 없어요. 다미가 얼마나 속이 꽉 찼는데요. 일단 지금 바로 같이 갈게요. 점심 먹고 보낼게요.” 

예정은 활짝 웃고 아담 옆을 지나치고는 밖으로 나온 다미의 손을 잡고 지금 가자며 좋아했다. 다미는 가기 곤란한 사람처럼 멀뚱 서서 아담을 한번 쳐다봤지만 아담은 아무 말도 못했고 다미는 예정 부부를 따라가게 되었다. 악마에게 끌려 가는 것인지 악마를 끌고 가는 것인지, 주체와 객체의 혼동은 그 구분을 어렵게 만들었다.


“아빠, 괜찮을까요?” 현석이 아담 뒤에서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단 오늘은 놔두자.” 아담은 다시 성당 안으로 들어가 제단 오른쪽의 성모마리아상 앞에 섰다. 

“먼저 집에 가렴. 다미는 점심 먹고 온다고 한다.” 현석은 알았다며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자신이라도 따라간다고 할걸 그랬나 후회했지만 다시 그 이야기를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합리화하며 곧장 집으로 향해 걸어갔다. 아담은 두 손 모은 마리아상을 보며 잘못된 판단이 아니였는지, 그 순간에 다미를 보낼 수 없는 다른 이유를 말할 수는 없었는지, 스스로 자책했다.

‘예정씨가 말했던 그 꿈이 정말 성모님의 발현이라면, 성모님의 발현을 체험할 자격이 있는 예정씨를 성모님이 지켜주실거야. 성모님 제발 지켜주세요. 하느님의 어머님. 하느님께 기도하여 이 마을에 더 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주세요.’     








“다미야. 기도부터 할까 아니면 밥부터 먹을까? 배 안고파?”

“괜찮아요.”

 양반다리로 앉은 다미가 후드티를 벗고 등 뒤에 흘려내리게 하면서 말했다. 예정은 집에 제자리를 잃고 마구잡이로 널려있는 잡동사니를 정리했다. 사실 굳이 하지 않아도 집은 충분히 깔끔했다. 

“다미야, 이리와봐.” 

예정이 여러 성물들을 모아놓은 선반 앞에서 소리쳤다. 

“왜요?”

물으면서 걸어온 다미는 여러 성물들을 확인했고 예정은 어떤 십자고상과 성모상을 놓고 기도할지 골라보라고 했다. 다미는 고민하는척 으음 소리를 내다가 아무 기준없이 하나씩 골랐고 둘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저씨는요?”

“괜히 방해될까봐 놀고 오라고 했어. 서울 시내에 가는 걸 좋아하거든. 바람 쐬고 오라고 했지.”

차를 마실 때 쓸만한 작은 상 위에 십자고상과 성모상을 올려놓고 그 앞에 나란히 선 두 여자는 기도를 시작했다. 주기도문, 성모송을 묵주기도를 통해 여러번 드리고 나서 예정이 슬기를 생각하며 기도를 바쳤다.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죄인을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 예수님의 기적을 불쌍한 슬기에게 보여주소서. 착하고 가녀린 저 아이에게 더 이상의 불행이 함께 하지 않도록 보살펴주소서. 어머니를 잃은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일 것입니다. 그리스도님 굽어 살피어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근데 이모.” 감은 눈을 뜨고, 손은 계속 모아놓은 채로 다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예정을 불렀다.

“응?”

“슬기 언니가 그렇게 불쌍해요?”

“갑자기 무슨 말이야?”

“슬기 언니는 그래도 아직 아빠도 있고 두 눈도 잘 보이고... 찾아보면 슬기 언니보다 훨씬 불쌍한 사람은 더 많을 것 같아서요.”

“뭐... 물론 그렇겠지. 근데 슬기는 우리 이웃이잖아.”

“슬기 언니보다 고아원 고아들을 위해, 암투병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아프리카 기아들을 위해 기도하는게 하느님 보기에 더 기특하시지 않을까요?”



“그... 그런 기도도 하지 물론. 미사시간에도 하잖아. 지금의 기도는 특별한 기도야.”

“어떤 점에서...” 다미는 눈을 사선으로 뜨면서 뜸을 들였다. 예정의 몸은 완전히 돌아 다미를 향해있었다. 

“특별하죠?”

“우리의 친구 슬기를 위한 기도니깐.” 예정은 그런 질문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자신있게 대답했다.

“친구니까 다른 더 불쌍한 사람을 외면하고 기도해도 된다는거에요?”

“너... 갑자기 무슨 말이야? 전에도 그렇고. 기도하기 싫어?” 

예정은 또 자극받은 예민한 마음에 소리를 높여 말했다. 예전에 소리 질렀을 때에는 다미는 울먹거렸지만 지금 그 소녀는 조소를 지었다.

“외면당하는 사람의 죄는 기도해줄 친구가 없는 죄인건가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야? 기도하기 싫으면 그냥 나가.”

“왜요? 제가 못되보여요?”

“너 정말 왜 그러니? 이러려고 따라 온거야?”

“저도 슬기 언니 장애가 나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죄책감이 들잖아요. 딱히 다른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 적은 없는데 슬기 언니 한 명한테 기도하는게 맞나 싶어서요.”



강예정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며 아픈 머리를 손바닥으로 짚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들고 다미를 봤다. 대체 이 어린애 말을 믿어야하는지 어째야하는지,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지, 불쾌함을 없는 척 감당하며 대꾸해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애라도 기도가 필요한거야. 아니, 더더욱 필요하지.’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여러 사람들을 고쳐주고 치유해주시잖아. 그 예수님한테 왜 더 불쌍한 사람은 안도와주고 이 사람들만 골라서 도와주나요라고 하지는 않잖아.”

“그런 말하는 사람들도 있던데요.”

“다미야...” 

예정은 다시 골치아파 두통을 느꼈지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인 성모 마리아와의 만남을 떠올리며 참아야한다고 마음 먹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마. 모두를 위해 기도할 순 없잖아.”


“이모. 이모의 아빠가 돌아가신 그 교통사고... 하느님의 계획 아닐까요? 이모의 신앙심을 확인하기 위해서요. 성모님까지 만나게해주었는데 과연 신앙심을 잘 간직하고 있으련지...”

“너 그 입 다물지 못해!”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을 바치라고 하잖아요.”


어느새 눈에 보이는 눈물이 예정의 눈에, 눈에 보이지 않는 분노가 표정에 발현되어 다미를 쏘아붙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아버님을 죽이시게 되는거죠.”




“나가. 당장 나가.” 예정이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분노를 힘껏 구기며 대답했다. 

“나가라고!” 강예정의 큰 소리와 문을 가리키는 팔은 다미에게 아무런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 나쁜 종류의 감정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그와 정반대되는 감정만 다미에게서 커져갔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다미는 오히려 예정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방석이 티 안나게 그녀 앞으로 갔고 방석간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다미는 노골적으로 몸을 그녀 쪽으로 숙였다.

“꿈에서 성모님이 대체 뭐라고 하시던가요?”

‘무슨 이유일까? 슬기에 대한 기도, 아버지의 죽음. 그런 것에 대한 다툼과 대답과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할 수도 없을 것처럼 느껴져. 모든 공기와 영혼과 냄새가 나를 떠나 저 아이에게만 붙어있는 느낌이야. 무.. 무서워. 왜 무섭지?’ 예정은 어느새 다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심장 소리가 얘 귀에 들리지는 않겠지.’ 공포심만이 머리와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뭐라고 했냐고요?”

“왜 하느님을 안믿냐고... 구원자 하느님을 믿고 교회에 나가 기도하라고...”

“그렇게 구슬린 다음 아버지를 죽였군요. 구원자 하느님께서.”



다미는 다시 몸을 당겨 좋게 앉은 뒤 방석을 조용히 뒤로 밀어 처음 기도할 때의 자리로 돌아갔다. 거의 붙어있던 얼굴이 떨어지고 나니 예정은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고 화도 다시 돋았다. 


“너 이제 집에 가. 앞으론 나 혼자 슬기를 위해 기도할테니까.”

“우리 아저씨한테 말해보세요. 슬기언니를 위해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요.”

“무슨 말이야? 갑자기.”

“아저씨는 분명 이렇게 말할걸요. 그런 기도를 할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랬던 기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주님을 원망하지 않는거라고요. 기적이 이루어지지 않을걸 대비해 둘러대기 참 좋은 말이죠. 그쵸?”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슬기언니가 마을에서 가장 불쌍해요? 그래서 슬기언니를 위해 기도하는거에요?”

“갑자기 또 왜...”




다미는 예정이 더 말하지 못하게 또 방석을 끌어 아예 무릎끼리 닿게했다. 그러고는 아이처럼 예정에게 안겨 자신의 얼굴을 그녀의 가슴에 묻고 두 팔은 어색하게 예정을 껴안았다. 예정은 놀라면서도 자신을 공격한게 아니라는 안도감에 한시름 낫고는 성모님이 어디선가 도와주시고 계시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의 사명이야... 슬기도... 아 아이도 내가 돌봐야 해.’ 


강예정은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손을 들어 다미의 머리에 대어 쓰다듬었다. 다미는 골반에 안좋은 이 자세가 불편하지도 않은지 아무말도 안하고 있다가 조용히 입을 뗐다. 정확히 아주 조금만 낮춰도 안들릴, 강예정의 귀에 들릴 수 있는 목소리 크기 중 가장 작은 소리였다.



“9살 때 제가 지내던 고아원이라고 한 그 수녀원은 수녀원이 아니었어요.” 

다미는 이 말을 하면서 그녀의 팔뚝을 좀 더 세게 쥐었다. 

“거기 수녀들은 악마를 숭배하는 사이비 수녀들이었어요.”

“사... 사이비?” 예정은 천주교 내에도 그런 곳이 있는지 당황스러웠다. 생각해보니 전라남도 어딘가에도 그런 곳이 있다고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9살이였던 저를 악마에게 바쳤어요. 제 옷을 벗기고... 개와 염소와 뱀의 피를 내 몸에 붓고 의식을 치렀어요. 그리고 제 등에 뜨거운 인두로 악마의 문양을 새겼어요.”




예정은 믿을 수 없었다. ‘대체 내가 무슨 이야기를 들은거야. 이런 말을 믿으라고? 하지만 이 아이의 이 슬픈 목소리와 아까 보여주었던 삐뚤어진 모습들은 어디에서...’ 

예정은 떨리는 손으로 다미의 등에 올려놓았다. 더 뻗으려고 했지만 안겨있는 다미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잡힌 자리에서 옷주름을 당기기만하면 다미의 등을 볼 수 있었다. 예정은 천천히 상의를 잡아당겼고 주름이 지어진 상태에서 다시 한 번 그 밑으로 옷을 당겼다. 다미의 허리가 보였고 예정은 계속 옷을 당겨 옷 주름 전체를 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 다미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고 예정은 옷의 말려진 부분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다미의 속옷 끈을 풀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도 대충 보였지만 예정은 정확히 보기 위해 허리를 옆으로 숙여 다시 등을 보았다. 다미는 도와주듯 손을 풀었다. 7년 동안 몸이 커지면서 형태가 늘어난 감이 있었지만 또렷한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지름 12cm 정도의 원안에 날개 달린 뱀의 형상이 다미를 누르고 있었다.

“그 날 악마가 제 몸에 들어왔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