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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의 사도 Oct 05. 2024

3부 11화)신의 기적, 악마의 농간

저녁 7시에 만호와 슬기는 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하얀 쌀밥에 시골 사람들이 서로 서로 나누어주는 깻잎, 김치, 녹두전에 만호가 시내에서 사온 삼겹살에 먹고 있었다. 슬기는 원래 피자, 파스타, 치킨, 그나마 몸에 좋은 것으로는 초밥을 좋아했다. 전에는 그런 슬기를 위해 서울 시내에 나가 3명이서 외식도 하고 그랬지만 사고 이후로 슬기가 입맛을 잃자 슬기 아버지는 먹이기를 점점 포기하다가 결국 자기 입맛대로 식단을 짜게 된 것이다. 작은 거실에서 들리는 TV 소리와 함께 만호와 슬기는 조용히 밥을 먹었다. 본래 만호가 자꾸 말을 했지만 오늘은 진지하게 할 말이 따로 있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느라 조용히 있었다. 슬기는 예리한 여자의 감각으로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저... 슬기야.”

“네?”

“요즘 마음은 좀 괜찮아?”

“괜찮아요.” 슬기는 적당히 정말로 괜찮았고 그것을 표정으로도 증명해보이며 대답했다.

“슬기야. 너가 맨날 집에만 있고 재밌는 것도 별로 없고 심심할 것 같아서 재미있는걸 준비했거든? 한번 같이 가볼래?”

“뭔데요?”

“가보면 알아. 아빠도 요새 그 재미로 살아.”

“그니까 뭐냐고요?” 슬기는 귀 뒤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올라오는 불안감에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었다. 불안한 예감은 항상 맞는다는 엉터리 미신이 무섭게 다가왔다.

“그게... 말로 하기가 좀 어려운데.. 일단, 좀 아빠 말 듣고 한 번 가보자.”

“도박이에요?”

“아니야. 아빠가 그런 거나 하는 놈으로 보여?” 만호는 살면서 해본 말 중 가장 당당하게 부인했다. “설명 못할게 뭐에요, 그러면.”

“너 정말... 말로 하기가 어렵다니까.”

“세상에 말로 설명 못할게 뭐가 있어요?”

“일단 가보자, 응?”

“뭔지 설명해주기 전까지는 안가요.”


슬기는 휠체어를 돌려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에이 씨 정말...” 만호는 이마를 치며 턱을 식탁에 대고 이마를 긁어댔다. ‘그래, 다미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할지 말해줄거야.’ 만호는 핸드폰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슬기가 들을까 더 나아가 마을 길에 가서 핸드폰을 눌렀다. 뭐라고 물어볼지 생각 할 틈도 없이 바로 다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왜요?”

“어, 다미야. 저녁 먹었어?”

“네. 왜 그러시는데요?”

“이제 슬기도 같이 해볼려고 하는데... 뭐라고 말을 꺼내야할지 모르겠어서.”

“아직 아무 말도 안하셨어요?”

“그냥 가보자고 하니까 언니가 안간다고 했구나.” 

슬기가 뭐라고 거부했는지 줄줄이 말하는 다미의 예리함은 만호를 설레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가 슈퍼맨처럼 보이는 아빠를 만난 것처럼 기쁘게 했다. 

“응. 맞아.”

“저랑도 같이 가요. 저도 같이 간다고 하면 갈거에요.”

“오! 그거 진짜로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해야겠다. 고마워. 고맙다.”


데려가고 나서도 문제였는데 다미가 함께 가준다면 알아서 다 해줄 것이니 박만호는 더욱 마음의 짐이 내려갔다. 그리고 다미가 함께라면 굳이 같이 갈 필요없이 자신은 바로 두번 째 펜션을 갈 수 있으니 더욱 좋았다. 만호는 기뻐하며 춤추듯 뛰어가며 집에 들어갔다.     





다미는 전화를 끊고 혼자서 칼림바를 연주했다. 침대와 벽이 만든 직각의 공간에 쭈구려 앉아 고개를 숙이며 연주한 칼림바 곡은 그 선율과 리듬이 더 없이 완벽했다. 그런 다음 침대에 누 두 발을 높이 뻗어 일리아드를 읽다가 두시간 정도 지나 일어나 거실로 나아갔고 자신을 데리러 오려고 한 아담과 마주쳐 함께 기도실에 들어갔다. 



아담은 다미를 눕히지 않고 앉으라고 한 뒤 펼쳐진 성경책을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바흐의 성가를 재생시키고 자신은 다미의 등 뒤에, 기도실의 문 앞에 섰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신 부분이야. 소리 내서 읽도록 하렴.”

다미는 읽을 것처럼 쳐다보다가 곧 덮어버리더니 성가가 나오는 카세트 쪽에 공부가 끝난 학생처럼 성경을 던져버렸다.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그 거친 행동을 보니 더 당혹스러웠다. 보통은 사건보다 사건이 일어나기전 사건을 걱정하는 불안이 더 큰 고통인 법인데 다미는 실제로 상대하는 것이 더 큰 고통을 주었다. 아담은 어떻게 할까 하다가 더 싸워봐야 자신만 손해라 생각하고 다미를 눕혔다. 어깨에 손을 대자 다미는 저항없이 스스로 침대에 누워 십자가 모양을 지었고 아담은 팔 다리를 묵었다. 그러고 있는 동안 아담은 방금 성경책을 던진 것이 다미인지 다미를 지배하는 악마의 소행인지가 궁금했다. ‘이 간사한 악마는 쉽사리 부름에 응답하지 않아. 그런데 만약 방금 그 행동이 악마의 짓이라면... 얼마나 나를 가지고 노는 것인가?’ 아담은 지쳐보이는 기색, 패배를 예감한 두려움의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마음에 새기며 최대한 굳어있으면서도 차분한 표정으로 성경책을 들었다. 그리고 월계수잎을 다미의 가슴에 올려놓고 성호를 그은 뒤 읽으라고 시킨 구절을 자신이 읽기 시작했다.



“예정 아줌마가 겪었다는 그 기적, 진짜 기적일까요?”

아담은 무시하고 계속 읽었다.

“근데 왜 기적 심사를 받지 않죠? 교황청에도 꽤나 도움이 될 뉴스일텐데요.” 

아담은 움찔하고 읽기를 중간에 멈추었지만 신경쓰면 지는 것이야 생각하며 계속 성경을 읽었다. 다미는 그 순간의 미세한 호흡의 떨림을 눈치챘다.

“다시 생각해보니 기적이라고 인정받아도 문제네요. 그러고 일주일만에 죽어버렸으니. 아저씨,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에 마귀는 예수님을 떠나고 천사들이 나와 예수님을 시중드셨다.”

아담은 성경을 덮고 다미를 쳐다보았다. 다미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고 자신이 성경을 읽는 내내 다미가 보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표정한 다미가 자신을 관찰하는 것에 아담은 소름돋움을 느꼈다.

“암 치유부터 교통사고까지 모두 하느님의 뜻이셨을까요?”

아담에게 자유로운 몸짓, 생각은 있을 수 없었고 다미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방 안에 존재하는 모든 공기입자가 다미의 명을 받고 서서 자신을 포박하여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면 암치유는 기적이었지만 교통사고는 그냥 인간세상에서 벌어진 별개의 일일까요? 어쩌면 암치유는 인간계에서의 우연이고 교통사고가 주님의 뜻? 아니면 모든게 다 우연일까요?”

아담은 손에 들고 있던 성경책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는 탁자에 올려놓고 성경책을 손에서 떼어놓으며 손에 땀이 맺혀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다시 몸을 돌려 다미를 바라보았다.

“내 생각엔 암이 낳은건 하느님이 내려주신 기적이고 교통사고는 말 그대로 사고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하느님 입장에서도 아쉬웠겠네요.”

“그럴지 모르지.”

“아저씨. 마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죠? 그래도 덕분에 예정이모가 신실한 신자가 되었다고요? 그런데 그 말 하고 나서 나와의 논쟁을 이길 자신이 없는거죠?”

아담은 잠깐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그럼?”

“앉아보세요.”



아담은 아무 생각없이 의자에 앉았다. 다미의 다리 쪽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고 나서 다미가 시키는대로 했다는 것에 곧 후회했다. 아담은 머리를 빠르게 굴려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라는 말을 뇌 속에서 찾아냈고 다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현상황에서의 이점까지 생각해냈다.

“이 문제의 본질을 알아내기 위해 생각해야 할 요소 중에 빠뜨린게 있어요.”

“그게 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제라면, 특히 아저씨라면 생각했어야 하는데요.”

“뭐냐니깐.” 아담은 마음 속으로 삼위일체 성호경을 외우며 대답했다.

“악마요.”

“악마?”

아담은 생각지도 못한 말에 깜짝 놀라면서도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생각에 자신에게, 그리고 그걸 알려준 다미에게도 놀랐다. 이런 생각은 그에게 굴욕을 느끼게까지 만들었다. 

“다시 정리해볼까요? 그럼 세가지 가능성이 있어요. 악마가 암을 낳게 해주었고 하느님이 사고를 내었을 것이 첫 번째.”

“그건 말이 안돼. 하느님께서 왜 사람을 죽이시겠니?”

“악마의 기적이 남아있으면 안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기적이라고 믿지 않는 마음 혹은 악마의 소행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이성을 심어주는 방법도 있다고 말하려다가 이 논거에도 여러 문제가 있어 아담은 대답을 멈췄다.

“두번 째는 뭐니? 하느님이 암을 낳게 해주고 악마가 사고를 냈다는거냐?”

“맞아요.”

“그건 좀 말이 되네. 하느님의 기적을 믿지 않게하거나 오히려 원망하게끔 만들 수 있으니깐.”

“네. 세번 째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마의 소행인거에요. 효과는 방금과 같죠.”

“그래.. 그것도 말이 안되지는 않는구나.”

“여섯 개 중 뭐가 맞는 것 같아요?”

“아니, 틀렸어. 두개의 가능성이 더 있어.” 

아담은 탁자에 손을 뻗어 성수Ⅲ병을 가져와 엄지 손에 묻힌 뒤 다미의 발목에 십자가를 만들었다.



“우연한 치유 이후 악마에 의한 죽음, 악마에 의한 치유 이후 우연한 죽음.” 

아담은 이렇게 말하며 어깨의 힘이 가벼워지고 심장 박동의 편안함을 느꼈다.

“아니요. 악마가 개입한 이상 우연은 없어요.” 아담은 대답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아저씨도 늘 그렇게 생각해왔잖아요? 저에 대해서.”


아담은 눈을 감으며 성령에게 도와달라고 빌었다. 

“제 생각에 기적이 실제로 일어났고 이후 악마가 예정이모아빠를 죽인 것 같아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성당에 얼씬도 안하는 비신자 꿈에서 성모 마리아를 만나고 며칠만에 말기였던 대장암이 갑자기 나은 이 조합은 우연이라는게 더 이상하죠. 누군가의 계획이라고 생각하는게 합리적이에요. 실제로 예정이모는 신실한 신자가 되었고요.”

“그 누군가가 악마일 가능성은 없는거냐?”

“그러면 악마가 성모마리아로 위장했다는건데 하느님께서 그걸 보고만 있겠어요? 그런건 불가능해요.”

“그러면 좋겠지만 어떻게 그걸 확신하지?”

“그럼 교황청에서 인정한 성모 발현 기적들도 알고보면 악마의 소행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에요?”

아담은 몹시 불편한 마음으로 다미의 말을 인정해야하는 의무감에 짓눌렸다. 


“그래, 네 말이 맞겠다. 그럼 교통사고는? 왜 우연이나 하느님의 뜻이 아닌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니?”

“하느님이 죽인게 맞다면 그 이유가 뭐겠어요? 예정이모의 신앙심 때문이겠죠. 그러면 예정이모의 신앙심을 위해 그 아저씨를 죽였다는건데. 너무 잔인하잖아요?”

“우연일 가능성은?”

“교통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 매우 낮은거 아세요? 뉴스에서는 교통사고가 많다고 떠들지만 전체 교통량에 비교하면 매우 적은 일이에요. 그렇게 확률이 낮은 일이 하필이면 주님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에게 일주일만에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어요? 이건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죽였다고 보는게 더 타당하죠.”

“그리고 그 누군가는 하느님보다는 악마라는 거냐.”

“당연하죠.”

“뭐, 맞았다는 증거도 틀렸다는 증거도 없으니..” 아담은 이야기가 길어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구마기도를 위해 몸을 일으켰다. 미카엘 대천사에게 기도드리려는데 웃음소리 없이 웃는 얼굴의 다미가 또 입을 열었다.

“아저씨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다미의 말을 듣고 정말 생각이 바뀐 아담은 솔직하게 그냥 말하기로 생각하고 대답했다.

“모두 하느님의 계획이신 것 같다. 왜 그러셨는지는 그 높으신 분의 뜻을 사람이 알 수는 없지만.”

“그건 핑계죠. 우린 하느님의 뜻을 추측할 수 있어요.” 이제는 아예 웃으며 다미가 말을 이어갔다.

“왜 인간에게 지성을 주셨겠어요? 자신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대로 살라고 아니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이 무슨 생각으로 뭘 하셨는지 추측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암을 낫게 해주고는 그 다음에 죽여버린다는건 뭐겠어요? 자신을 믿게 한 다음 그 믿음을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지 시험해본거겠죠. 그런데 하느님은 그렇게 잔인하지 않아요. 실제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는 순간에도 마지막엔 죽이지 못하게 막잖아요. 교통사고를 일으킨 건 악마에요.”

아담은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이유때문에 아담은 굳이 반박해서 싸우느니 이제는 대충 이 대화를 끝내고 구마의식을 치루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알았다. 이제 그만하자.”



“하느님이 기적을 일으키고 그리고 그 기적의 은혜를 받은 이를 악마가 죽였다. 이게 뭘 의미하는 것 같아요?”

아담은 이제서야 구마에 집중할 정신을 차렸고 라틴어로 미카엘 대천사에게 바치는 구마기도를 외웠다. 



“악마가 하느님보다 강할 수 있다는걸 의미하는거에요.”


아담의 기도문은 멈춰져버렸다. 여기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면 매우 난처해지지만 상황이 급하다고 해서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닌 법이였다. 아담의 난처함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대답할까? 내가 그렇게 말하면 또 뭐라고 대꾸할까? 그런데 난 왜 오늘 다미의 말을 다 듣고 있는거지?’

“그만할게요. 하려던거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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