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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의 사도 Oct 11. 2024

3부 13화)위로

“사... 살려주세요.”

방구석에 쭈구려 앉아 홍예진이 울면서 두 손을 빌며 말했다. 자신보다 세 살 어린 소녀는 자신을 차갑게 쳐다보았다. 도무지 감정을 품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기대도 걱정도 상상할 수 없게 보이는, 살면서 처음 보는 저 표정은 예진을 더없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저 장애인 언니에게 가서...” 다미는 쭈구려 앉아 홍예진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말했다. 




“그동안 이곳에서 당한 걸 말해줘. 물론 그 전에 먼저 저 아저씨에게 어떻게 했는지도 말해야 해. 공평하게.”

홍예진은 뛰어 나가 다미가 시키는대로 했다. 곧 다미도 문을 열고 거실로 향했다. 박만호의 시체를 옆으로 지나 휠체어에 앉아 있는 20살 여성과 그 앞에 18살 여성이 쭈구려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됐어. 가장 나쁜건 나야. 사람을 죽였으니깐... 그것도 키워준 아빠를...”


슬기가 넋나간 표정으로 예진을 보면서 말했다. 얼굴이 예진을 향하고 있었고 예진에게 한 말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세상에 예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존재하는 건 괴물이 된 자신과 그 괴물에게 희생된 아버지의 시체, 그리고 다가오는 악마, 자신을 괴물로 만든 존재가 있었다.

다미는 총을 들어 예진의 관자놀이에 댔다.

“죽여달라면 죽일게, 언니. 이야기는 다 들었지?”

“사... 살려준다고 했잖아!”

“조용히 해.”


다미의 차가운 말에 예진은 아무 것도 못하고 조용히 울기만 했다. 슬기는 쳐진 눈을 위로 올려 다미를 쳐다봤다. 다미의 얼굴과 표정을 보니 증오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 증오심은 유발자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홍예진이 안다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단 하나였다. 악마.



“나를 죽여.”

“언니는 잘못한게 없는데 왜.”

“날 죽여.”

“나랑 예정이모가 언니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는지 알아? 그런데 죽여달라니?”

“죽이라고.” 

슬기는 눈만이 아니라 고개를 높이 들어 다미를 쳐다보면서 목에 핏대세우며 소리질렀다. 흥분하며 움직이는 몸짓은 휠체어와 함께 앞으로 쓰러질듯 불안해보였다.

“죽여! 죽여! 죽이라고!”

다미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이유를 말하면 죽여줄게.”

“살고 싶지 않아.”

“그건 이유가 안돼. 그건 지금 이 밤, 이 현장, 이 순간에서의 감정일 뿐이야. 날이 밝고 명동에서 산책을 하면 생각이 바뀔걸?”

“난 아빠를 죽였어. 살아있을 자격이 없어.” 

“그래, 좋아.”



다미는 예진에게 향해있던 총을 돌려 슬기를 향해 겨누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런 다음 슬기의 입에 집어 넣었다. 그 광경을 본 예진은 귀를 막고 눈을 감은채 소리 질렀다. 슬기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다미를 노려보았다. 다미는 헤엣하며 웃는 소리를 발음하고는 슬기의 얼굴에 자신을 얼굴을 가까이 댔다.


“지금 언니 표정 알아? 안보이니까 모르겠지?”


슬기는 뭔가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총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구강이 “어읍어읍”하는 발음만 내었다.

“나도 그런 표정을 지은 적이 있어. 그래, 이 표정이야. 본 적은 없지만 알 수 있어. 딱 이 표정이었을거야.” 

“우우우웁우웁”

“우리 마을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정환이오빠가 왜 문철아저씨한테 죽은줄 알아? 정환이오빠가 그 아저씨네 아줌마랑 잤거든. 내가 정환이오빠를 꼬시면서 아저씨한테 고백하라고 했어. 그럼 오빠랑 하겠다고. 그랬더니 진짜 고백을 했고, 그래서 죽었지. 나중에 내가 문철아저씨를 찾아가서 돌아오라고 했어. 그런 다음 경찰차에 폭탄을 설치해서 죽여버렸어. 그리고 정환오빠네 아줌마는 자살했지. 왜? 자기 아들이 유부녀랑 그런 짓을 했다는 걸 알아버렸거든. 내가 그냥 죽어버리라고 했더니 자살하더라고. 그 다음은 언니네 아빠, 그리고 이제 언니 차례야.”




다미는 방아쇠를 손으로 툭툭 치면서 가벼운 소리를 냈다.

“정환오빠네 아저씨만 빨리 죽어서 내 저주를 피했지. 미리 도망가버린 그 할아버지와 손자도. 난 이 마을 사람들 모두 죽일거야. 다양한 방식으로.”


슬기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길게 이어지는 눈물은 아까와는 다른 종류였다. 오한이 들린 듯 떨리는 그녀의 몸은 치아와 총을 계속 부딪히며 시끄러운 소음을 냈다. 다미는 슬기 입에 들어가있는 총을 꺼낸다음 예진을 한 번 돌아보고 다시 슬기를 쳐다봤다.


“마지막으로 할 말 있어?”

“사.. 사.. 살려줘.. 시키는거 다할게. 살려줘.” 

슬기는 두 손을 비비며 울면서 빌었다. 이제는 콧물도 흘리고 있었다.


“내가 무서워?”

“살려줘, 제발...”

으음 소리로 허밍을 내며 슬기의 주변을 천천히 돌던 다미가 예진 옆에 쭈구려 앉았다. 그리고 예진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예진은 또 벌벌 떨었고 슬기를 힐끗 쳐다봤다. 슬기를 보려고 본게 아니라 다미를 못보겠어서 맞은편에 슬기를 쳐다 본 것이다.

“노래 부르면 살려줄게.”

“부... 부를게...”

슬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울면서 부르는 노래는 가사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고 음정도 박자도 엉망이였지만 다미는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세 소절 정도 부르고 나서 슬기는 울기만 했다. 피범벅 상태로 눕혀져있는 아빠의 시체가 자신의 미래로 보이면서 큰 공포로 다가왔다. 손으로 눈물과 콧물을 닦았지만 닦여진 얼굴은 금방 다시 새로운 물로 적셔졌다. 예진은 이 상황이 너무 무서웠지만 한편으로는 당장은 자신이 아니라는 위안감을 얻기도 했다.


“언니, 내가 무서워?”

슬기는 뭐라고 대답해야 살려줄까 고민하다가 무섭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눈을 크게 떴다. 

“아니야, 곤란해. 언니는 날 좋아해야해. 그래야 살 수 있어.”

다미는 일어서서 총구를 슬기 이마에 대었다. 총의 차가운 촉감은 세상의 끝이 여기있구나하는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순간의 공포를 심어주었다.

“좋아해! 너가 좋아! 다미 너가 정말 좋아!”

“내가 마을 사람들을 그렇게 죽였는데도?”

“응, 좋아.”

“언니가 아빠를 죽이게 만들었는데도?”

“상관없어. 너가 옳아. 죽이길 잘했어.”

“남은 마을 사람들을 내가 모두 죽일건데? 개의치않아?”

“너가 좋아. 너가 최고야, 다미야.” 슬기는 군인의 맹세처럼 크게 외쳤다.

“아직 아니야. 언니 날 좋아하는척하네.” 

슬기는 아니라고 소리 질렀지만 다미는 대답도 않고 슬기의 절규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2분 정도의 절규 끝에 지친 슬기가 말을 잃었을 때 다미가 슬기의 머리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슬기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괜찮아, 좋아하게 될거야.”     





다미는 밖에서 지루해하던 조직원 한 명을 불러 슬기를 집에 데려다주라고 시켰다. 그리고 예진과 단 둘이 남자 양반다리로 앉은 다음 예진의 손을 잡았다.





“그 동안 고생 많았지? 저 변태아저씨 때문에.”

“아... 아니에요.”

“말 편하게 해, 언니잖아. 나 15살이야.”

“아니에요.. 괜찮아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홍예진은 이 때에 처음 진정으로 깨달았다.

“근데 언니 진짜 예쁘다. 부러워.” 다미가 예진의 머릿결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예진은 실제로 꽤 훌륭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와 친구들의 불량한 돈벌이가 꾸준히 가능했던 것이였다. 날카로운 턱선과 감금 시간 동안의 고생에도 부드러운 피부와 큰 두 눈은 계속 다미에게 관찰되고 잇었다.

“미안해, 언니. 저 변태아저씨가 이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어. 그래서 내가 복수해줬잖아.”

“네...”

“편하게 하라니까, 언니. 왜 그래 정말.”

웃는 소리와 표정과 천연덕스러운 말투는 정말 모든게 괜찮아질거라는 믿음을 주었다. 예진은 몇 년만에 들어보는 말투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으.. 응...”

“난 어릴 때 고아원에서 자랐어. 태어나자마자 버려졌거든.”

“그.. 그래..?”

“언니는 부모님이 있어?”

“응...”

“좋은 분이야?”

“아니...”

“이야기해줘. 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

“내.. 내 이야기?”

“응. 알고싶어.”


예진은 머뭇거리다가 다미의 질문에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차피 다른 선택권이 없어서, 말을 안하면 죽일 것 같아서, 공감받는 것 같아서 등 알 수 없는 여러 이유가 예진에게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이었고 예진은 이미 다미를 동경하고 있었다.


예진의 이야기는 대충 이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빠가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했고 전업주부였던 엄마가 학교앞 마트에서 청소 일을 시작했다. 엄마가 마트에서 마루걸레로 닦고 다닌다고 놀림을 받는게 스트레스였던 예진은 가출을 했고 가출한 사이에 아빠가 자살을 했다. 그리고 집은 지하 단칸방으로 옮겨졌는데 그것도 어떻게 학교 아이들이 알아서 놀리기 시작했다. 놀림받는 것이 지긋지긋해진 예진은 일진 남학생들과 사귀어 한순간에 학교의 강자로 등극해 아무도 놀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 번 시작된 잘못된 교제는 중고등학생에 성인까지 이루어진 불량써클로까지 그녀를 이끌었고 학교 폭력 문제로 모든걸 알게 된 엄마와 사이가 더 안좋아졌다. 그렇게 가출을 일삼으며 불량스럽게 살던 예진은 중학교 3학년 때 젊고 잘생긴 남자 선생님의 훈계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우선 엄마에게 그동안의 잘못을 사과하려고 했지만 이미 저급해진 단어와 말투는 애석하게도 마음과는 다르게 그녀의 뜻을 왜곡했고 불행히도 또 모녀간의 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늘 하던 행동이었지만 처음으로 마음에 없는 가출을 했다.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않고 혼자 지하철역에서 노숙을 한 다음 다시 집에 돌아갔지만 엄마는 없었고 마트에도 안나왔다는 엄마는 며칠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두 달을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었고 방에서 쫓겨난 예진은 유일하게 의지할 그들에게 다시 돌아갔다.     

예진은 이 이야기를 하며 울었다. 한 번도 남한테 해보지 않은 진짜 자신의 이야기였다. 써클로 돌아갔을 때에도 다른 여자아이들, 아니 모든 아이들과 기싸움을 해야했기에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것이다.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도 자살했을까봐 그게 제일 무서워.”


예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를 안고있는 다미도 같이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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