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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의 사도 Oct 12. 2024

3부 14화)슬기

도저히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점점 지쳐가고 영적인 싸움은 아무래도 가망이 없어 보였다. 승자와 패자가 확실하고 정의와 불의가 확실한데 정의가 패하게 될  운명이라면 제3의 길이 필요한 법이라고 현석은 생각했다.


‘더 이상의 희생은 막아야 해. 이 마을에서 다미가 죽인 사람이 벌써 4명이야. 슬기누나네 아빠도 분명 어딘가에서 죽어있을거야. 그리고 정환이형네 아저씨도 어쩌면...’


“야, 혼자 뭐하냐!”

“응? 아, 아니야.”


현석은 학교 벤치에서 혼자 생각하던 것을 방해한 친구가 원망스러웠다. 현석은 화장실이 급하다면서 뛰어서 화장실에 가 양변기 칸에 들어가 앉아서 또 혼자 생각했다. 혼자 자기 방에서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을 후회하며 뭘 해야할지 고민했다.

‘어차피 다미는 악마에 씌였어. 난 그 애 상대가 못돼. 다미랑 싸우기보다는 피해자가 안생기게 하자.’



현석은 자기 나름대로 머리 속으로 상황을 정리한 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 할 일을 얼른 다 한 뒤 슬기의 집으로 갔다. 마당에 들어가려고 보니 영은이 나오고 있었다. 영은이 혼자 있는 슬기를 위해 밥을 차려주었다는 것을 눈치챈 현석은 왜 저 누나 생활을 돌봐줘야한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후회했다. 


“현석아?”

“안녕하세요.”

“슬기 만나러 온거야?”

“네.”

“슬기는 왜?” 팔짱을 끼면서 물어본 것이 대화를 오래할 심산이였다. 게다가 현석의 방문이 그리 반갑지 못해보였다.

“그냥요. 혼자 심심할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해.” 영은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영은아줌마도 따지고 보면 다미의 피해자야. 다미에 대한 경계심이 있겠지.’

“다미랑 최근에 만났냐고 물어보려고요. 무슨 대화를 했는지도요.”

“왜?” 영은이 한숨과 함께 물었다. 아빠가 시켰다고 할까 하려다가 금방 들통날 것 같아서 관둔 현석은 정면돌파하기로 했다.

“저, 시간이 없어요. 저 빨리 집에 가야돼요. 안녕히 가세요.” 





현석은 바로 영은을 비켜 돌아가 집으로 들어갔다. 영은은 따라 들어갈까 하다가 무언가 해 볼 용기가 나오지 않아 더 뒤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누나.”


현석의 부름에 슬기는 대답없이 쳐다봤다. 경계하는 눈빛도 환영하는 눈빛도 귀찮아하는 눈빛도 아니였다. 그 눈빛은 관심없는 과학 실험을 관찰하는 눈빛이였다.


‘뭐야. 뻘쭘하게 왜 저래?’


켜지지도 않은 TV를 향해 휠체어에 앉아있는 슬기 앞에 다가가 얼굴을 마주보도록 바닥에 앉을까 아니면 마주보지 않더라도 소파에 앉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선 현석은 앉으라는 말을 기다렸다.

“할 말 있어? 편하게 앉아.”


원하는대로 상황이 풀리자 현석은 긴장감을 풀고 바닥에 앉아 슬기를 쳐다보고 말했다.


“누나, 누나아빠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언제인지 기억나?”

“그걸 너가 왜 묻니?”

“요새 아저씨가 안보여서... 어디 갔나 해서?”

“너 꼭 우리 아빠가 죽은 것처럼 말한다?”

‘아차,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냐는 말은 주로 경찰들이... 아니지, 예민한 반응일 수도 있어. 왜냐면 슬기누나는 아저씨가 죽은걸 아는거야...’ 현석은 일단은 별다른 수가 없어서 말을 돌렸다.

“아니야. 누나. 다미 혹시 언제 봤어?”

“다미?” 슬기는 다미라는 말을 듣자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현석은 그 변화를 감지했고 불안감이 올라왔다.

“오늘 예정언니랑 같이 왔는걸? 날 위해 기도해주고 갔어.”

“그래? 여기 자주 와?”

“아니, 처음인 것 같은데.”

“그 전에 어디에서 봤어?”

“나 여섯 명의 남자를 죽였어. 너 그 쾌감이 어떤건줄 아니?” 

슬기는 주님께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야? 갑자기.”

“다미에 대해 궁금하면 다미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6명의 남자 중에 혹시... 누나 아빠도 있어?” 황홀감에 빠져 미친것 같은 슬기를 보니 이렇게 대놓고 물어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현석이 물었다.


“너 날 경찰에 신고할거야?”

“경찰?”

‘생각해보니 경찰에 대해 고민해 본적이 없었어. 차라리 다미를 감옥에 보내버리면 제일 편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다미를 사랑하고 있어. 진정으로 딸이라 생각하고 목숨과 영혼과 모든 것을 걸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현석 역시 다미를 친구로서, 남매같은 존재로서 좋아하고 있었다.

“그건 모르지. 되도록 안 할 생각이긴한데.”

“내가 죽인 여섯 명은 모두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였어.”

“그 때 다미도 같이 있었어?”

“너 다미가 나를 타락시켰다고 생각하는구나.”

“무슨 소리야... 아무튼 다미도 같이 있었어?”

“다미는 날 구원해줬어.”


사람들은 이 대화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생각을 하는 현석은 자신이 과도한 상상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그린 그림이 실제 상황을 재현하고 있는 것인지 판단해야했다. 다미가 슬기를 타락시켰고 슬기가 자기 아버지를 포함해서 여섯 명의 남자를 죽였다. 자신은 이렇게 추리하고 있고 자신이 그렇게 추리하고 있다는 것을 슬기가 눈치챘다. 이것이 현석의 생각이였다. 



“요즘 다미랑 친하게 지내? 다미랑 무슨 얘기 나눠?”

“다미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줬어. 너와 같은 수녀원에서 자랐다며.”

“응. 몰랐어? 마을 사람들 다 알텐데.”

“아니지, 그거말고 더 깊은 이야기.”

“무슨 이야기?”



슬기는 양손으로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고개를 숙이며 현석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현석은 슬기의 얼굴이 부담스러워서 눈빛을 떨굴뻔 했지만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안된다는 생각에 슬기를 똑바로 마주했다.


“너는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 너 기억을 잃었다면서.”

‘내가 기억을 잃었다고? 원래 어린 시절 기억은 잘 안나는거 아닌가?’

비정상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깨달을 기회는 바로 정상을 마주할 때이다. 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생기면 비정상은 자신이 정상이고 저것이 비정상이라고 우기거나, 아니면 서로 다를 뿐이지 모두가 정상이라고 선동한다. 그렇다면 어떤 속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과 간직하고 있는 것 중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일까. ‘아버지가 다미와 날 데리고 이 마을에 와서 지낸 것 외에 전 기억은 없어. 엄마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다미를 처음본게 언제인지도 기억이 안나. 어느 순간 다미와 함께 이 마을에 살고 있었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기억조차도 없는데. 다미는 그것을 다 기억하고 있는거야?.’ 현석은 다시 문제의 본질을 생각해보았다. 다미가 유별난게 아니라 모두가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고 자신만 기억을 못하고 있다면 자신이 비정상인 것이다. ‘왜 나는 기억을 못하는거지? 다미와 관련 있을까? 내가 다미에게 뭔가를 당했었을까?’ 현석은 슬기에게 빨리 말해보라고 보챘다.



“무슨 이야기인데?”

“말 안해줄거야.”

“왜? 말해줘.”

“다미가 말하지 말라 그랬거든.”

“왜 다미 말을 들어? 다미가 죽으라면 죽을거야?”

슬기가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 쳤다. 

“중딩 아니랄까봐, 뭐래니.”


몇 번의 더 대화를 시도했지만 전혀 진전되지 못했다. 현석은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강예정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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