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저의 인생 가장 큰 변환점이자 경험의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기억 속 사라져 가는 하루하루의 온습도까지 끄집어내어 소중히 모아 이곳에서 나누어 보려 합니다.
아이를 낳고 7개월 차. 이제야 몸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던 시기였다. 피로했지만 그것이 당연한 시기이기도 했다. 아기에게 막 밤과 낮이 생기고 생활의 규칙성이 조금씩 생기던 때였으니, 그때까지 먹는 것, 자는 것은 나의 의지대로 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 조그맣고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우리 가족이 된 것이 신기하고 감사해서 매 순간 너무 행복했다. 매일 일기를 쓰고 있었는데, 이때의 일기를 보면 하루하루가 분홍빛 사랑으로 가득 차있다.
많은 산모들이 경험하듯 나도 임신 및 출산을 겪으며 몇 가지 증상이 나타났었다. 가장 큰 증상은 기립성 저혈압이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난 직후나 앉아있다 긴장감 없이 쑥 일어설 때면 앞이 캄캄해지면서 머리가 띵 하고 어지러웠다. 그러다 두어 번은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했다.
또 왼쪽 어깨와 심장 부근이 한 번씩 아렸는데, 내가 아이를 안을 때 그쪽 방향으로 많이 안아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래서 통증이 살짝 느껴지면 “오케이, 오른쪽으로 안아줄게~” 하고는 오른쪽 어깨로 아이를 안고는 했었다.
가볍게 넘겼던 이런 증상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몸이 나에게 보내는 긴급 신호였던 것 같다.
1 월 1 7 일
시작은 가벼웠다. 이렇게 긴 여정, 평생의 여정이 될 큰일이 갑자기 나에게 닥칠 줄 이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025년 1월 17일 아침. 친구들과 남편들, 아기들 다 함께 1박 2일 여행을 하기로 계획된 날이었다. 그날도 역시 아침에 항상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 아기 분유를 타러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분유를 타다가 정신을 잃었다. 아이가 잠에서 깨어 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리며 정신이 번쩍 들어 깨어났던 것 같다. 순간적으로 일어서서 걸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에 빠르게 기어서 방으로 들어가 앉은 상태로 아이를 안았다. 자고 있던 남편을 불러 아이를 안겨주고는 앉아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분유를 타다 쓰러져서 인지 머리와 옷은 분유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왠지 뒤통수가 뜨겁게 아렸다. 생소한 느낌에 뒤통수를 살짝 잡았는데 손을 펴보니 붉은 피가 묻어 나왔다. 놀란 남편과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근처에 살고 계시는 부모님께 연락해서 상황 설명과 함께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드렸고 곧바로 119를 불렀다.
내 인생 첫 119였다.
10분 이내로 도착한 구급차를 타고 종합병원에 가서 머리의 찢어진 부위를 7바늘 꿰맸다. 혹시 몰라 CT, MRI, 심전도 검사를 했지만 큰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의료진들이 몇 가지 원인으로 추측되는 내용을 설명해 줬는데 나는 기립성 저혈압일거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말들은 크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임신 후 자주 쓰러졌었다고 하니 심장 검사를 해보는 것도 권유했는데, 대학병원으로 가야 검사할 수 있다고 하고 의료진도 나의 상태를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는 것 같다고 판단해서 그냥 넘겼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나와 남편은 계획된 여행을 갈 것인지 상의 후 나의 강력한 주장으로 아이와 함께 거제로 갔다. 철없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선택에는 후회가 없다. 아이가 물놀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았고, 앞으로 1여 년은 못 보게 될 친구들도 만났고, 한동안은 먹지 못할 피자, 치킨, 족발 등등 맛있는 배달 음식 시리즈를 모두 먹었으니 말이다. 가서 머리가 아파 누워있기도 했지만 아침에 쓰러져서 그런가 보다 했고, 친구들이 아기를 봐주며 쉴 수 있게 해 줘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반가움과 따뜻함에 아픔을 잊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