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감정을 조절한다는 것

감정

by 자씨


일상 속 나를 누리는 방법이 있다.

시간과 감정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갖는 것이다.


이것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거나 나에게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하는 것과 별개이다.


내가 나의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인정하고

조절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긍정적인 감정은 최대한 표현하되,

부정적인 감정은 가능한 스스로 정리한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하는데, 내 마음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다. 내가 문제인지 상대방이 문제인지 일이 문제인지 상황이 문제인지 도통 모르겠는! 대상이 불분명한 답답함과 짜증이 올라오는 그런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럴 때에 나는 일단 섣불리 그 답답함과 짜증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내 감정을 다스려본다. 표현해도 되는 감정인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정도인지,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도 해결되는 문제인지 아닌지 등을 빠르게 정리해 본다.


그리고 대부분은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삼킨다는 표현은 좋지 않은 것 같지만, 나는 그렇게 해 본다. 속에 그 감정을 담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보는 것이다. 흘려 보내지지 않는다면 감정 그대로를 말과 행동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둘러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이 방법이 나의 감정을 존중해주지 않는 방법이라 느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는 후에 표현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게 된다. 시간이 흘러보면 내가 부정적 감정을 바로 표현하지 않아 얻는 것들이 더 많다.


그 상황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오고 가는 감정까지 해결 과제에 넣지 않아도 되며, 나의 짧은 생각과 판단을 들키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상황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나는 그것이 시간을 벌고 누리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나 스스로 부정적 감정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고 실행하고 온전히 평안한 상황에 도달하는 것. 이것은 내가 나를 다잡고 상대방을 이해하며 세상을 포용하며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나의 감정을 온전히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주는 효능감을 누리는 것이다. 그 쾌감이 있다.


물론 항상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내가 나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 그럴 때는 “나를 누리기”보다 “나를 살리기”를 선택해야 하니 말이다. 항상 그럴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못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것이 내가 나를 온전히 누리는 방법이다.




keyword
이전 18화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