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소설 [귤의 맛] 리뷰
귤의 맛
줄거리
다윤, 소란, 해인, 은지.
네 사람은 신영진 중학교 영화부 동아리에서 만나며 친해진 친구다.
그들은 함께 떠난 여행에서 홧김에 같은 고등학교에 가기로 결심한다.
과연, 그들은 신영진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귤이 온전히 혼자 익어볼 기회
숨은 의미 찾기
이들이 그다지 특별해보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사람들은 정말 친한 친구라면 서로에게 생채기 하나 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 외로 정말 친한 친구들은 서로에게 가족 다음으로 생채기를 많이 내는 존재다. 대신 상처난 자리에 약을 발라주며 사과하고 용서하고, 그렇게 화해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가장 친한 사이가 된다.
네 친구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생각처럼 되지 않는 유년기,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로부터 상처받은 패잔병들이 모인다. 그들은 때로 서로에게 북서풍보다 더 냉랭하게 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몸을 맞대고 가장 차갑고 매서운 바람을 견뎌낸다. 그들은 결국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봄을 맞이한다.
그러고는 자신들이 만든 계획표에 맞춰 움직이게 한다. 예상된 경로에 맞춰 자란 아이들은 기대를 받는다. 어쩌면 '기대를 당한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원하지 않았던 계획에 휩쓸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기대를 받는다는 건,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니까.
그 오랜 시간 동안 아이는 혼자가 된다. 가족은 부담을 주는 존재로 전락하고, 친구는 경쟁상대가 되거나 바빠서 멀어지기 일쑤다. 그렇게 영양가 없이 자란 아이들은 결국 시고 씁쓸하기만 한 귤이 된다.
물론 귤의 맛이 달지 않다고 해서 그 귤이 별로인 건 아니다.
저마다 주어진 선택지 내에서 최선을 다했을 테니까.
그렇게밖에 선택지를 내주지 않는 사회니까.
하지만 네 친구들은 한 번 튕겨보기로 결심한다.
어른들이 꼭지를 따내려는 순간, 합심하여 서로의 꼭지를 지켜낸다. 그렇게 자라는 귤들은 더 예쁜 모양을 갖지 못할 수도 있고, 마트에 진열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분명 저마다의 맛과 향과 모양을 가질 것이다. 우리가 미래에 어떤 모습일지 전혀 예측할 수 없듯이.
귤은 한 주먹에 들어오는 작은 과일이지만, 그 안에는 수없이 많은 알맹이들이 존재한다. 껍질을 까서 열어보기 전까지는 그 알맹이를 전부 볼 수 없다. 그러니 그들의 꼭지를 따버리는 행위를 '너를 위한 거야'라는 헛소리로 포장하는 짓 따위는 그만둬야 한다. 끝까지 익어보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작은 알맹이, 알맹이마다 푹 익어서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도록 말이다.
작가를 바라볼 때에는 편견없이
감상평
이렇게나 하고자 하는 말이 명확하고 상징성이 도드라지는 소설은 오랜만이었다. 오히려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느낌도 강했다. 아마 청소년 소설이라서 더욱이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징이 완벽했던 대신 인물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것도 있다. 누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캐릭터가 잡히지 않아서 읽는 동안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가독성에 대한 아쉬움도 살짝 남는다.
조남주 작가는 82년생 김지영으로 알려진 작가이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작품은 아직 안 읽어봤다. 사회적 이슈가 많은 작품이니만큼 일부러 다른 작품을 먼저 읽어보려고 미룬 것도 있다. 어떤 작가의 대표 작품을 먼저 읽게 되면, 그 작품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나 82년생 김지영의 경우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쟁쟁한 작품이라서 피했다. 작가에 대한 어떤 편견이나 좁은 시선을 갖고 싶지 않았기에.
김려령 작가의 경우, 완전 내 주관적인 입장이긴 하지만, '우아한 거짓말'이 가장 히트 친 레전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청소년 소설이고, 나 역시 그 소설을 청소년 시기에 접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 제일가는 소설가는 김려령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김려령의 성인 소설을 접하기 전까지는.
다 읽어는 본 거냐고 묻는다면 고거는 아니다. 첫 장 읽자마자 내 취향이 아니라 덮어 버렸다. 편독이긴 하지만, 내 취향 아닌 소설을 굳이 시간 들여 붙잡고 있어봤자 안 읽히고 결국 남는 것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무튼 그렇게 내가 가장 환호했던 작가의 소설이 내 취향이 아니란 충격적 사실을 접하고야 깨달았다.
청소년 소설과 성인 소설은 다른 거구나.
이렇듯 내가 조남주 작가의 청소년 소설은 그럭저럭 만족하고 읽었을지는 몰라도, 성인 소설은 또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읽기가 좀 두려워지는 면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이렇게나마 접한 게 나은 선택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성인 소설 읽고 맘에 안 들어서 아예 접근 시도조차 안 했을 수도 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주목받는 작가니까 읽어보긴 하겠지만... 이 다음에는 그냥 82년생 김지영부터 읽어봐야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