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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Aug 04. 2021

경성에 간 별들

[두메별, 꽃과 별의 이름을 가진 아이] 리뷰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고 서평을 작성했으나 솔직하고 주관적인 생각임을 명시합니다*

두메별, 꽃과 별의 이름을 가진 아이
줄거리
두메별 앞 표지

예천의 작은 동네, 백정의 딸로 태어난 두메별.

출신 때문에 보통학교는 꿈도 꿀 수 없지만, 돈 많은 오름 아저씨네 아들인 광대 덕분에 글을 배우는 처지다. 배우면 배울수록 공부에 대한 열망은 커져만 가는데, 아버지는 자신이 공부하는 것을 영 탐탁지 않게 여긴다.

"백정의 딸이 공부를 배워봤자, 백정의 딸이지!"

그러던 어느 날, 두메별 앞에 희한한 여자 한 명이 나타난다.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안경을 쓰고, 말을 타고 다니는 여자, 박춘앵. 두메별은 왜인지 모르게 그녀에게 자꾸만 눈이 간다.


경성에 간 별들
숨은 의미 찾기

당연한 말이지만, 소설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을 매료시킬만한 세상과 인물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누구에게든 어렵다. 거기에 역사를 바탕으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역사책을 달달 외듯이 지루한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달랐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 독자의 시선을 끌었다. 더불어 실존했을 것만 같은 인물들은 이야기를 한 층 더 맛깔나게 만들어주었다. 생생한 현장감이 마치 그 순간으로 데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백정, 그들은 누구인가.

[두메별] 내용 중 발췌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고기를 썰어 팔던 기술자’라는 점뿐이다. 2010년에 방영된 드라마 ‘추노’는 사극 역사상 처음으로 ‘노비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 가장 천한 계급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리라. 하지만 같은 계급인 백정을 주인공으로 삼아, 백정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뤘다는 작품은 아직까지 많지 않다.

조선시대 계급표의 가장 낮은 단계인 천민 중에서도 백정은 가장 ‘아랫것들’이었다. 천민들에게조차 무시당하는 존재, 백정. 나라에서 법으로 신분제를 폐지했음에도 백정에 대한 멸시와 차별은 그대로였다. 대체 왜, 같은 천민들조차 백정을 그리 천하게 여겼던 것일까.


모순이지만 백정이라는 계급을 더욱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은 백정들 본인이기도 했다.

물론 책에는 백정을 깔보고 무시하는 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노촌 아이들은 그냥 길을 지나가다가도 백정촌 아이들을 때리고, 노촌 사람들은 고기를 팔러 온 백정촌 여인들이 지나갈 때마다 침을 뱉고 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백정촌 사람들의 반응은 덤덤하다. 백정촌 아이들은 노촌 아이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자리를 비키고, 백정촌 여인들은 노촌에 들어갈 때면 머리를 땅에 박을 듯 허리를 숙인다. 이들은 백정이라서 당하는 차별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더 이상 맞설 생각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들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는 노촌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행동에 믿음을 갖고 더욱 당당하게 만드는 요소 이기도하다.

그러나 두메별의 반응은 다른 백정촌 사람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백정촌 아이가 두들겨 맞으면 달려가서 맞서 싸우고, 고기를 팔러 가서 구정물을 뒤집어써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닌다.

그녀는 백정도 똑같은 사람임을,
우리는 당신들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애쓴다.
[두메별] 내용 중 발췌

두메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것들, 가슴으로만 느끼던 것들을 춘앵은 정리하여 말로 뱉어낸다. 그녀는 양민들에게 휩쓸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형평사 사람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먼저 백정들도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도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는 매우 중요하다. 만약 춘앵이 노촌에서 노촌 아이들만을 가르쳤다면, 과연 백정촌 아이들이 배움에 대한 가능성을 느꼈을까? 자신들도 똑같이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한이 서린 백정촌에 필요한 것은 ‘형평’이라는 단어가 아닌, 살갗에 와닿는 형평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춘앵은 직접 행동함으로써 백정촌 사람들이 그것을 느낄 수 있길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메별을 향한 차별은 백정이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성이라는 차별의 생김새는 단순히 두메별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어머니부터 대를 이어오는 여성에 대한 억압은 그녀를 더욱 힘 빠지게 한다. 노촌 아이인 간난이도, 귀족인 일본인 여자애도 결국 남성에 손에 이끌려 이리저리 폭력을 당할 뿐이다. 그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자유를 잃고 살아간다.

두메별은 이 지긋지긋한 차별의 고리를 끊고 싶다.

어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어머니와 똑같은 백정 여인네로 살고 싶지는 않다. 간난이를 아끼고 좋아하지만 간난이처럼 매일 얻어맞으며 살고 싶지도, 일본 여자애처럼 멋대로 시집가고 싶지도 않다.

[두메별] 내용 중 발췌

두메의 아버지는 독특한 인물이다. 두메가 공부하고 경성에 가는 행위를 반대하고 드는 이유가 단순히 '딸'이라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좌절감에 휩싸인 지식인'이었다'. 변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증오의 불똥이 딸에게 튀어버린 셈이다.

믿음을 잃은 그의 믿음이 확고해질수록, 그는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딸의 믿음을 파괴하려 든다.

딸의 일에 사사건건 끼어들어 방해하는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울분이 터지게 만든다. 하지만 그 행동들이 단순히 딸이라서 미워하거나 차별하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그는 딸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동시에 걱정하며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 자신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려는 젊은이의 패기가 그에게는 질책으로 다가오고, 이루지 못할 꿈을 꾸는 딸의 열정이 안타까운 것이다.

[두메별] 내용 중 발췌

우습게도 두메의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반대 지점에 서 있다. 그녀는 태어나서 백정촌을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집에서 죽은 동태 눈깔을 하는 남편 대신 돈을 벌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고기를 팔러 다니면서도 원망 한 번 뱉지 않는다. 그녀는 차별을 익숙하게 받아들이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믿음을 잃고 희망을 부정하는 아버지 옆에는 언제나 저고리 속에 박성춘의 연설문을 품고 다니는 어머니가 존재했다. 두메별이 꿈과 희망을 간직하고 자랄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는 언젠가 세상이 바뀔 것이며, 딸이 원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딸이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자신과 같은 세상에 살지 않기를 딸보다도 더욱 간절히 희망한다.


두메와 춘앵은 많이 닮아있다. 기생의 딸과 백정의 딸, 모두가 안 될 거라던 일에 도전하면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차별에 직접 맞서 싸운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강하다. 자신들만이 아닌,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의 손을 잡고 나아갈 줄 알기 때문이다.

차별과 폭력으로 얼룩진 시대, 그들은 연대의 힘을 보여주고자 한다.

차별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세상으로 가려는 그들의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직 숱한 고비와 위기가 존재함을 알지만, 그들이 잘 해낼 것이란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소수의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바뀌었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것이므로.

그들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또 다른 차별과 폭력에 맞서는 용기를 건네고,
용기를 이어받은 우리는 또다시 연대하는 힘을 기른다.

두메별과 춘앵은 지금쯤 경성에 도착했을까.


평등은 어디쯤 오고 있는가
감상평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는 평등을 거부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손해’라는 생각을 갖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평등을 원하지 않는 자들은 자신이 누리던 혜택과 대우를 포기하는 행위를 ‘손해’라고 계산한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라는 말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는 사회’라는 말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신분제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노촌 사람들이 백정촌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부류로 인정할 수 없는 것도 이와 같다.

[두메별] 내용 중 발췌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는 책의 내용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서로에 대한 차별과 공격은 계속되고 있으며, 힘과 돈을 가진 자들은 그것을 악용해 연대를 무너뜨리고 틈새를 만든다.

극단적인 제목의 기사들, 갈등을 부추기는 말들,  사이에서 왔다 갔다 누가 자기편인지 판가름하는 사람들. 아직도 모르겠는가? 우리는 양극단으로 내몰리는 시소싸움의 희생양일 이다. 노촌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세상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고민해보게 된다.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진정한 방법은 연대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부당한 것에 함께 맞서려는 정의로운 마음. 그래서 힘과 돈을 가진 자들은 연대를 무서워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책 속에는 답이 있다.
두메별 뒷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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