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 작법서 읽기

전업 작가 생존기

by 담작가
"전 문예창작과 전공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빈말일지라도, 나를 대단한 사람 취급한다.

하지만 내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거라곤, '글 쓰는 법'만 배우겠다는 게 바보짓이라는 사실뿐이다.




글쓰기란 굉장히 주관적인 행위다.

개인의 경험이나 생각이 바탕이 되기 때문에 보편성이나 일반성이 존재할 수가 없다. 물론 사람이 읽기 편한 틀은 존재할 수 있지만 '글쓰기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망각한다. 직접 써보기 전까지는.

나 역시 몇 번쯤 써보고 나서야,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쓸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문장의 깔끔함이나 문단의 배치는 자주 쓰다 보면 스스로 편집자가 되어 고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왜 쓰는가'라는 본질적인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없으면 독자가 글을 읽을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여태껏 작법서를 피해왔다. 글 쓰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없다면, 나 혼자라도 쓰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동기나 선배들이 다른 예대를 가서 배움을 쌓는 동안, 나는 사서 자격증을 따서 직업을 선택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멈추지 않고 쓴 것은 사실이다. 양쪽 모두 다양한 경험을 얻었겠지만, 딱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은 글을 쓸 충분한 시간과 피드백을 얻을 동료가 있었고 내겐 없었다는 점이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결국은 나름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만큼 머리 굴려서 쓸만한 시간은 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써냈어도 읽어줄 사람이 없었다. 글 쓰는 사람은 글 쓰는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한다. 글에 대한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지 못하면 글은 도태된다. 나는 글의 양을 늘리는데 한계를 느꼈고, 양이 늘지 않으니 질을 높이는데도 시간이 걸렸고, 그것들을 읽어줄 사람이 많지 않아 신선도를 잃었다.

몇 년간 써낸 작품이 아무 곳에서도 뽑아주지 않았다면 그건 스스로 세뇌시킨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젠 길을 바꿔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더군다나 이젠 직접 책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으니, 무조건 쓰지 않으면 안 됐다.


처음에는 '잘 팔리는 글은 뭐가 다른가?'라는 생각으로 작법서에 접근했다. 내가 쓰는 방식이 무언가 잘못되었을 거란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작법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더 잘 발휘하기 위해서 필요한 보충제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다. 한데 막상 작법서를 펼쳐놓고 보니 나는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내가 왜 쓰는지 말이다.

나도 모르게 쓰는 행위에 강박을 느끼는 동안, 내가 글쓰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잊어버렸던 것이다. 보통 나는 엉뚱하고 재미있는 상상을 하거나, 내가 부딪힌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통해 소재를 얻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고 혼자 책상 앞에 앉아 끙끙거렸다. 당선되기 위한 글, 남들이 좋아할 만한 글만 쓰면서 정작 남들에게 보여주지도 못했다. 그렇게 쓴 글은 대부분 별로였으니까.


작법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보다는 '어떻게 해야 재밌는지'에 더 초점을 맞춰서 설명하고 있었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쓰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게 생기지 않겠어요?'라는 식의 마인드는 내게 충격을 주었다. 그러게, 언제부터였을까. 글을 쓰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기보단, 일단 내가 만든 틀에 가둬놓고 쓰기만 했던 것이. 이런 식으로는 얼마나 더 글 쓰는 삶을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원래의 나를 벗어던져 보기로 했다.




물론 작법서가 아예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방법을 알려준 것도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재밌게 쓸 것인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앞으로의 긴 '씀'의 여행에 꼭 필요한 충고를 해주는 든든한 참고서가 될 것 같다.

타인을 만족시키는 글보다 어려운 것은 자신을 만족시키는 글이다.

일단 내가 재밌어야 계속 쓸 수가 있고, 내가 진심으로 즐거움을 담아내야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행복한 감정이 전달되지 않을까? 강박에 얽매이지 않고, 이제는 오로지 나를 위해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해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첫 책을 낼 뻔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