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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왜 하필 나인가

Why me

by 도서출판 야자수


분위기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직쏘는 그냥 비디오를 돌렸다.



저마다 다양한 사업을 표방하는데,





모든 가상자산 사업자의 목표는 하나

- 가상자산을 파는 것.

그들이 버는 모든 돈은 가상자산을 사는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끝.



비디오가 꺼졌다.

그 어둠은 마치 심연과 같아서 사람들은 빙글빙글 돌면서 추락하는 기분을 느꼈다. 구역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먹은 게 없어서 나오는 건 없었다.

그 와중에도 각자 자기들이 했던 말을 되짚어 보았다; 새로운 화폐가 될 수 있다, 여러가지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 투자자를 보호하면서 산업을 육성하겠다.

‘기대’, ‘청사진’, 방향성’적인 내용이다. 법적 책임은 커녕, 여러 사람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개인적 비난을 받을 염려도 없었다.


문제는 직쏘의 기준이었는데...

저 인간은 ‘헛소리’도 ‘거짓말’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보는데다가, 그 말로 돈을 벌었다면 ‘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비뚤어진 잣대를 가진 자이다.

자신은 민간인이니 안전지대에 있다고 안심했던 교수는 불안을 느꼈다.


"잘 보셨나요? 자유롭게 의견을 말씀해주세요.


역시 지정을 해드려야 하는군요.

아직 말씀을 안하신 분이…사장님께서는 어떻게 보셨나요?"


"저는 실제로 코인, 아니 블록체인 시스템도 개발했고 앱도 만들었고 직원도 있었습니다."


"오, 일자리 창출!

저는 사업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업의 정체가 뭔지 보자는 것입니다.

직원이 많지만 범죄로 분류되는 사업들이 꽤 있죠."



"변호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직 한 마디도 못하셨죠?"


"아, 저는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말을 경청하고 그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구요.

그런데 거시적인 문제의식이 부족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모두가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밖에 나가게 되면 아~ 정말 그런 부분 명심하면서 살아야겠다…"


"변론이 시작된 것 같군요.

변호사님이 먼저 시작하는 걸로 하시죠. 본인 얘기를 마친 후 다음 번 발표자를 지명하는 식으로 해주시면 됩니다."


변호사는 놀랐지만 순서를 바꾸겠다고 징징거리지는 않았다.

요가 전도사이기도 했던 그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이곳이 법정이라는 마인드 컨트롤을 시작했다.


'여기는 법정이다~여기는 법정이다~


제길, 여기가 어떻게 법정이야!'


마인드 컨트롤에 실패했지만 변론은 해야 한다.


"시작 전에 질문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말씀하시지요."


"왜 저인가요? 많은 변호사 중에서 왜 하필 저인지?"


모두가 침을 꼴깍 삼키고 직쏘를 본다.


직쏘의 침묵이 길어지자 변호사는 작아진 목소리로 옹알거렸다.


"기준을 알면 변론에 참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이쪽 일로 저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번 변호사들도 있는데…"


"좋은 질문입니다. 질문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님을 선택한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직업별로 후보들을 정한 뒤, 눈에 띄는대로 잡아왔어요."


'뭐? 눈에 띄는대로?!'


억울함과 분노의 불길이 어찌나 컸는지 사람들의 공포를 잠시 녹여버릴 정도였다.

게다가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뻔뻔함을 보라!


'정의의 수호자라도 되는양 하더니 이따구로 일을 한다고?'


"오해는 하지 마세요. 아무나 잡아왔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일단 영향력이 있으신 분들을 추린 다음에 그 중에서 선택한 것입니다.

의미없는 우열을 가리느라 시간을 보낼 필요는 없잖아요.


일찌기 장자가 이런 말을 했죠.

작은 도둑은 자물쇠를 부수고 물건을 꺼내서 도망가지만, 큰 도둑은 상자를 통째로 들고가면서 자물쇠가 망가져 물건이 도중에 쏟아지지 않을까 염려한다."


???


"큰 도둑은 법에 쫒기지 않고 법을 부린다는 얘기이지요."


바깥에서였다면 사람들은 옛 선현의 말을 인문 교양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필 내가 특정된 상황에서 이 말은 사이코의 헛소리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생각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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