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새벽기도를 준비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잘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 편인 우리 집 강아지.
우리 집 강아지도 이제 내가 일어날 때를 맞추기 시작했다.
졸리면서 뭐가 좋은지 동그란 몸을 팅글팅글 흔들며 다가와, 웃으면서 폭 하고 안긴다.
매일매일 이렇게 귀여운 생물이 있을 수 있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우리 집 강아지가 몹시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사랑 필터가 달린 색안경을 끼고 있는 것만 같다.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안아 들고 집 밖을 나선다.
(강아지 너, 빵빵 짖다가 까까 먹고 조용해졌지? ㅎㅎ
앙콤한 녀석. 얄미워.)
웃기겠지만 당연히 나는 강아지 기도도 할 수밖에 없다.
‘행복하고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게 해 주시고,
구석이나 다른 장소에서 숨을 거두지 않게 하고
우리 품 안에서 편히 눈 감을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천국에서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주세요.’
들어주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보다 수명이 짧을 강아지의 죽음까지 미리 준비하며 기도하는 마음이 슬프다.
이 강아지를 사랑하게 된 내가 싫다.
우리 집 강아지가 된 너, 왜 입술이 점점 하얘지니...
사람과 동물에 대한 사랑이 커질수록
슬픔도 함께 커지는 것 같다.
나이는 왜 들어가고, 몸은 왜 낡아갈까.
엄마, 강아지.
헐 수 없는 울타리 속에 넣어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들.
작은 울타리에 갇힌 건 사실 나뿐이겠지.
가지 마. 나랑 평생 있자.
엄마는 꼬까 사주고, 강아지는 까까 사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