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히 오래된 시절에 교양과제로 제출했던 것을 그대로 복붙을 해왔습니다.
추억이 생각나서 기억하고자 올려봅니다.
언제나 그렇듯 잘 쓰진 못했습니다.ㅎㅎ;
정의란 사회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공정하고 올바른 상태를 추구해야 하는 도덕적인 가치를 뜻한다. 베니스의 상인에는 이러한 정의의 의미에 맞는 어떠한 도덕과 양심도 찾아볼 수 없다. 포샤의 판결은 타당했을지 모르나 공정하지 못했고, 샤일록의 요구는 마땅한 것이었을지 모르나 살의는 어느 경우라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의 정의는 진정한 정의도 아니며, 억압을 위한 승자의 논리도 아니다.
먼저 포샤의 입장에서는 샤일록에게 원금의 세 배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보상해 줄 것을 제의했으며 거듭해서 안토니오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등의 충분한 기회를 줬으나 샤일록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샤일록은 법과 계약서대로 판결을 내길 바랐으며 본인에 말에 책임을 지겠다고 했기 때문에 포샤는 법과 계약서에 적힌 그대로 타당한 판결을 내렸다고 불 수 있다.
그러나 한편 판결은 타당했을지라도 자비란 강요할 수 없는 것임을 본인의 입으로 내뱉었음에도 샤일록에게만큼은 자비를 베풀 것을 강조 혹은 강요했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샤일록에게는 자비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지나치게 가혹한 판결을 선고했다. 안토니오의 목숨은 구했으나 억지스러운 해석으로 피를 내지 않고 살을 취하라는 이치에 맞지 않는 판결과 삶의 터전조차 갖추지 못한 샤일록의 전 재산을 몰수하고 목숨까지 잃게 만드는 판결은 절대 합당하고 공정했다고 볼 수 없다. 포샤는 공정성을 잃었기 때문에 결국 정의의 편에 서게 된 것은 아니기에 판결은 정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포샤가 정의롭지 못했다 할지라도 샤일록도 정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노예에 대한 대우를 예로 들어 기독교 기득권층에게 일침을 가했던 샤일록 또한 마찬가지로 평소 노예를 비롯해 타 종교인인 기독교인들에 대한 차별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국에는 살의까지 품은 본인도 자비로움과 도덕적 면모를 갖추진 못했기 때문에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타 지역에서의 이민족이라는 것과 거대한 기독교의 벽 밖에서의 유대종교를 가진 것은 수많은 억압과 차별을 만들었을 것이고, 그 속에서 유대인 샤일록은 피해자임이 분명 하나 계약서를 비롯한 재판의 이유가 살의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살의는 어느 형태로든 사회와 개인에게 허용되지 않는 명백한 불법이며 정의와도 거리 차이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샤일록의 무자비함 또한 정당하지 못하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타난 정의는 진정한 의미로 해석될 수 없으며, 피해자와 피의자는 있었을지 몰라도 승자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승자의 논리라고도 볼 수 없다. 결국 베니스의 상인에는 정의자체의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기독교인들의 편협하고 가식적인 자비와 유대인들의 무자비함은 어느 한쪽도 도덕적이지 않고 양심적이지 않기 때문에 사회공동체나 개인에게 올바른 가치를 부여해 줄 수 없다.
느낀 점
종교인으로서는 보고 느낀 것이 있다면 반성하고 잘못된 것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겠지만 이 소설을 종교적으로만 해석하는 것도 억지스러운 면이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보이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인물들의 착각과 이기심 그리고 분노 등 그저 인간이어서 할 수밖에 없는 실수들을 이 소설을 통해 알려주는 것일 뿐인 것 같다. 다만 당시 시대상을 담아 소설을 쓴 것을 생각하면 유대인들의 억눌린 슬픔과 고통 섞인 분노만큼은 크게 유감스럽다. 그리고 이 유감스러운 마음은 모든 종교를 떠나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삶의 자세와 연관 지어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필자도 기독교인이지만 베니스의 상인에서의 기독교인들의 위선적인 면모는 현대에서도 여전히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 범위 안에 필자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기독교인이라고 (사이비를 제외하고) 타 종교를 차별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기독교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비심이 완전한 타인에게까지 온전히 적용되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나온 사회가 현실 그리고 현대에서 반복되고 있지만 최소한 그 불편하고 어두운 부분들의 폭을 줄여나가도록 나부터라도 노력해야 한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