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추석쯤에는 대체로 날씨가 쌀쌀, 선선해지고 가을 냄새가 짙어진 것 같은 기억이 있다.
가을냄새를 맡으며, 언젠가 맞춘 어린이 한복을 입고선 엄마 옆에 앉아 전을 부치고 x, 먹고 o 있으면 명절을 다 즐긴 기분이었다. 게다가 엄마가 보관할게에 의해 곧 사라질 돈이지만, 얼마쯤 주어지는 용돈은 어린 나를 충분히 설레게 할 만한 일이었다. 용돈은 어른이 된 지금도 설레는 일이지만.
그런 이유로 아주 아주 어릴 땐 비교적 천진난만해서 친척들이 오가는 게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친척들이 오는 시간을 몹시도 꺼리게 되었는데, 내 트라우마에 그들이 참 많은 기여를 기꺼이 해주었기 때문이다.
친척들 중 모든 사람이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평범한 집들처럼 우리 집은 친척들 간 사이가 좋지 않다. 뭐, 옛날 방식으로 어른에 대한예의를 지키고자 할머니가 살아계실 적 정도는 어쨌든 왕래를 한 게 전부일 정도이다.
사이가 좋지 않은 일방적인 이유는 쫌 사는 손윗사람 친척들과 달리 우리는 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잘 사는 친척들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한 친척은 본인들이 주최하는 결혼식에 가난한 우리와 또 다른 가난한 친척들은 창피하다고 초청하지 않았다. 다른 부자인 친척만 따로 초대했을 뿐이다. 실제로 그들이 직접 입으로 내뱉었다. 레전드 인간들이다. 초대해 줘도 안 갔어. 캭 퉤.
위에 언급한 건 트라우마가 아니다. 그냥 있었던 사실을 말했을 뿐. 주옷 같은 친척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이만.
내 의도와 상관없이 망가진 명절의 기억이 설렘도 가져갔지만, 못 사는 우리끼리만이라도 다시 조금씩 회복하려고 노력 중이다.
예전처럼 올 손님들은 없지만 엄마는 전을 매년 꾸준히 만들고, (사실 한 두 번쯤은 너무 귀찮아져서 전 맛집에 가서 사다 먹은 적도 있지만, 그래도 생선은 굽고 나물도 무쳤다.) 옆에서 핏줄 1이 돕고 있으면, 나는 여전히 또 부치는 척하며 꿀꺽 집어만 먹는다. 눈누~~~
그리고 엄마가 미리 강아지용으로 빼놓은 양보다 내가 더 많이 빼돌린 소고기와 채소로 강아지용 음식도 만들어서 강아지도 함께 명절의 설렘을 누리게 한다. (강아지는 옆에서 바지런히 어슬렁 거리며, 최대한 예쁜 표정으로 얌전히 기다린다. 무척 먹고플텐데도 주기 전엔 달려들지도 않고 얼마나 이쁜지 모른다.)
이렇게 오순도순 다 만든 전은 우리를 사랑해 주는 친척에게 조금 날아가고, 이웃집에 조금 날아가기도 한다.
전을 부치는 것 자체는 새로울 것 하나 없지만, 막 익은 따뜻한 전은 우리가 지켜나가는 우리만의 명절, 우리만의 설렘, 그리고 행복이다.
연휴가 시작되면 집에서 완벽한 휴일을 보내기 위해 대형마트를 털(탈탈 X, 찌끔O) 것이다.
엄마 몰래 초콜릿이랑 과자를 카트에 잔뜩 담을 생각으로 설렌다. 엄마가 장본 것 밑에 숨기면 되거등요~ 고기 값보다 까까 값이 더 나오겠지? 하하하하하하핳하
올해의 긴 황금연휴가 무척 아깝긴 하지만 이미 예약 못한 거 어쩌겠나 여행은 언젠가 가는 것으로 하고!
치지직 - 치직 오색전 굽는 소리가 비행기 이착륙 소리를 대신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엄청 엄청 행복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