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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방문

by 재스비아

갈까 말까 일억 오천만 번, 이 말해야지 저 말해야지 일천조억 번.
원래도 자리가 없던 머리에 쓸데없는 생각을 욱여넣었다.

가서는 “이건 말 안 할래요” 시전 하고선,
갈대보다 더 빠르게 흔들리며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시간제한이 있나요?”
실제로 이렇게 여쭙고, 아니라는 말을 듣자마자
쉬지 않고 의사 선생님의 고막을 괴롭혀 드렸다.

의사 선생님은 얼마나 어이가 없으셨을까? ㅋㅋ...
정말 상또라이가 따로 없는 것 같다.

평상시에는 이 정도까진 아닌데, (아닐 텐데,,, 아니겠지,,,?)
병원만 가면 극대화되는 불안도를 감출 길이 없다.
병원은 열린 문~~

첫 방문 이후 증상이 어땠는지,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셨다.

오래된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무 충격받으실까 봐
들으시면 내가 인간쓰레기처럼 느껴지실 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알려주지 않으실 텐데 ㅋㅋ,
들어보신 최악의 말이 무엇이냐고도 여쭤보며
사전 예방(?) 사전 조사(?)를 했다.

(다행히 ‘인간쓰레기 아니다’라고 하셨다.
감사했다.)

약을 먹으니 괴로움이 좀 사그라들어서
마음이 괜찮은 것 같다고 하고,
일부를 나름 덤덤하게 말씀드렸다.

그런데 최악 중 최악의 기억을 꺼내 놓자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고 잠이 오는 걸 느꼈다.
눈물이 조금 나긴 했지만, 지난번과 다르게
확실히 마음이 괜찮았었는데,,,

울었는지 웃었는지..
“저 머리가 멍해요~!!” 이러고 말을 멈췄다.

거의 매일 생각하는 주제였고,
가족들에게 말할 땐 안 이랬던 것 같은데 이상하다.

의사 선생님이 현실로 돌아오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아니에요. 저 괜찮은 것 같아요!”
이러고 또 쓸데없는 고집을 피웠다.

그러다가 결국은 시키는 대로 했다.

오, 상실한 언어 능력이 조금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안 괜찮았구나.

정상이 아니라는 건 인정했으면서
말은 또 듣지 않으려고 할까.
그 빌런이 나였다니!!!!

의사·간호사 선생님들은 얼마나 힘드실까...죄송하다.
하지만 덕분에 사람으로 변해 가는 걸 느낀다.
아기 때 이후로 이만큼이나 가벼운 마음을 느낀 적이 있을까 싶다.

정신과 약을 먹는 건 절대 나쁜 일이 아니다.

세 번째 방문을 앞두고,
또 두 번째 방문 때 했던 실수와 잘못을 복기하고
이것저것 잡생각을 하겠지만 그래도 꼭 갈 것이다.
가서 점점 더 나은 내가 될 것이다.

정병 가는 사람들이여, 용기를 내봅시다..!

하지만 의존하진 말자고요.
주체적 환자지만, 말은 잘 듣는 환자가 되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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