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목, 검정알 나무, 너는 어디서 왔니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이 맞나 싶다. 한낮이 되기도 전에 온도가 가뿐하게 26도로 올라갔다. 습도까지 높으니 조금만 걸어도 얼굴을 비롯하여 온몸에 땀구멍이 활짝 열렸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땀이 줄줄 흐른다. 불쾌지수가 수직으로 상승하는데, 갑자기 익숙한 향기가 맡아졌다. 옆을 보니 쥐똥나무다.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반갑다. 지금쯤 꽃이 피었을 거라 여겼는데, 아직 피기 전이다. 그런데도 향기를 진하게 내뿜고 있다. 역시 공해에 강한 나무답다. 이름을 안 지 십오 년. 올해도 옛 마음을 기억하게 해 준 쥐똥나무, 덕분에 오늘의 더위는 견딜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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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똥나무>
계절의 경계를 넘나들던 봄이 제자리를 찾았다. 때맞춰 산도 축제를 준비한다. 오월의 푸른 잔치를 위한 단장이다. 연둣빛으로 물들인 머리는 몽글몽글, 화사한 연분홍은 홍조 띤 얼굴이다. 우아함과 부드러움으로 한껏 치장한 산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이맘때의 산은 성장한 무용수가 된다. 도심으로 내려온 춤사위는 쥐똥나무에도 아름다운 몸짓으로 다가간다. 겨우내 없는 듯 울타리를 지키던 쥐똥나무가 조용히 기지개를 켠다. 그 좁쌀만 한 새순을 보려면 눈을 크게 떠야 한다.
무엇이든 최초의 기억이 가장 오래가는 법이다. 몇 년 전 봄, 무엇하나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지 않았는데 계절만은 매끄럽게 잘도 흘러갔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늘 지나치던 길인데 갑자기 낯설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데도 무인도에 홀로 던져진 것 같은 느낌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길 한쪽에서 눈을 감고 흩어진 정신을 수습하려는데 진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천천히 눈을 뜨니 두부모처럼 반듯하게 빈틈없이 줄 맞춰 섰던 푸른 울타리가 흰 꽃 천지였다. 줄기 끝에는 작은 백합 송이 같은 꽃들이 조랑조랑 매달려있었다. 목적지와 두려움을 잊은 채 그 향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로지 하나에만 열정적으로 매달려 성공한 적이 없어서일까. 딱히 이것이라고 정해놓고 그것만을 좋아한 적이 없다. 식물에서도 마찬가지다. 늘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인 나무와 꽃을 반기면서도 각별한 느낌을 받은 적은 별로 없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말미암아 만나게 된 것들은 쉽게 잊지 못한다. 그해 봄, 하얀 쥐똥나무꽃은 내게 어둠에서 새벽으로 나가는 길이 되어주었다. 누군가의 위로도 따뜻한 손길도 아니었다. 작은 꽃에서 나는 향기가 나를 가둔 그물을 스스로 벗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산에서 만난 쪽동백꽃의 고고함도 좋아하고 병꽃나무의 팔색조 같은 화사함에도 발길을 멈춘다. 뭉게구름처럼 피어난 불두화의 우아함에 탄성을 내지를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나무들은 화려하거나 고고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쥐똥나무만큼의 의미를 주지는 못했다. 그날의 각별함 때문에 쥐똥나무꽃의 향기를 맡을 때면 경건해지기조차 한다.
큰 나무는 올려다봐야만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그러나 울타리로 만난 쥐똥나무의 눈높이는 낮아서 좋다. 오월의 쥐똥나무, 길을 걷다 마치 강아지가 엄마 품을 찾아들 듯 슬그머니 다가가 코를 킁킁거린다. 순백의 색깔로 짙은 향기를 발산하는 키 작은 나무. 하지만 공해나 추위에 강해 어디서나 잘 자라는 씩씩한 나무다.
우리나라에서 열매가 쥐똥을 닮아 쥐똥나무라고 부른다면 북한에서는 문화어로 검정알 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가 열매의 모양으로 이름을 정했다면 문화어는 색깔로 이름을 정한 것이다. 통일된다면 이 나무만큼은 검정알 나무로 불리는 것도 괜찮겠다. 까맣게 익은 이 열매를 약재로 사용하는 분들은 ‘남정목’이라는 색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열매를 말려 가루 내어 먹거나 달여 먹으면 위와 간은 물론 신장까지 튼튼해진다고 한다. 그 외에도 고혈압에 양기 부족 갖가지 암, 이명증에 효과가 있다며 아주 뛰어난 약재라는 설명을 해 놓았다. 한마디로 만병통치약이다.
남정목이 있으니 여정목도 있을 터, 바로 광나무다. 꽃은 쥐똥나무보다 조금 늦은 칠팔월에 피고 열매는 쥐똥나무와 흡사하여 구분하기 힘들다. 하지만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으며 쥐똥나무보다 잎이 조금 더 큰 광나무는 소금기가 많아 좀처럼 썩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방부목이다. 쥐똥나무는 열매만 약재로 쓰이는 것이 아니다. 도장도 만들고 지팡이도 만들고 회초리로도 쓰인다. 예전에 서당 훈장들도 싸리나 물푸레나무와 함께 쥐똥나무로 만든 회초리를 썼다.
사람의 손길에 의해 다듬어진 쥐똥나무 울타리를 따라 걷는다. 사월이라면 먼 산 아지랑이처럼 너울거리는 보드라운 연둣빛에 매료되고 오뉴월이라면 향긋한 꽃향기에 취할 수도 있다. 꽃처럼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향기가 있다. 나무가 향기 있는 꽃을 피우듯 사람은 내면에서 우러나온 향내로 자신을 기품 있게 가꾼다.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설렌다.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꽃향기를 맡으면 오래전 그날을 생각나게 하는 쥐똥나무가 내게는 그렇다.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작은 집을 뒤란까지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길, 들어갈 때는 느끼지 못했던 향기가 코를 찔렀다. 집안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꽃이 핀 나무는 없었다. 작은 골목길을 내려오는데 향이 점점 강해졌다. 심우장 아랫집 담벼락 밑에 작은 꽃들이 흰 눈처럼 소복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담을 넘긴 키 큰 쥐똥나무 한 그루 우뚝 서 있었다. 손을 타지 않아 자연 그대로 늘어진 가지 끝에 매달린 꽃들, 향기로 다가왔듯 향기로 아는 체를 했다고 여겼다.
쥐똥나무는 4m까지 높게 자라기도 한다는데 내가 기억하는 것은 1m나 될까. 그래서인지 산이나 들에 서 있는 키 큰 쥐똥나무는 못 알아본다. 마치 몇 번 만난 사람을 다른 장소에서 만나면 초면인 듯 지나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인지 쥐똥나무는 울타리일 때 익숙하고 또 아름답다. 매연 속에서도 제자리 지키며 꿋꿋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키 작은 쥐똥나무가 좋다. 격이 좀 떨어지는 이름을 가졌으면 어떤가. 이름값 못하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꽃망울 활짝 열기 시작하는 지금, 꽃을 보며 나도 내 자리 지킬 때 가장 아름다울 것을 믿는다. 이 봄, 내게 거는 주문이다.
2010.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