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슬깃국을 먹다, 다슬깃국을 끓이다. 다슬기가 소환한
“다슬기는 국으로 끓여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남편이 말했다. 나도 다슬기 즙은 처음이다. 껍질까지 갈아 즙을 냈다고 하나,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비위가 약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여러 즙을 사봤지만, 끝까지 제대로 먹은 적이 없다. 호박즙, 대추즙, 양배추즙, 칡즙, 오디즙 등. 주는 대로 먹는 남편도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아는 사람이 힘들여 잡은 다슬기로 낸 귀한 즙이니 약이라 생각하고 먹으라는 동생 말에 받아다 냉장고에 넣었다.
그러고 보니 다슬기국을 먹어본 지가 꽤 되었다. 지금은 망백을 눈앞에 둔 어머니가 젊은 시절 끓여주셨던 다슬깃국과 그 맛을 잊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내가 끓였던 다슬깃국에 얽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다슬깃국 1 (2007년)
다슬기 국물이 개울물에 둥둥 떠다니는 청태 색깔이다. 고운 보에 국물을 걸러내고 다슬기는 바구니에 담아 마루로 옮긴다. 여름철이라 잠시만 둬도 상할 염려가 있다며 시어머니는 말보다 손길을 더 재게 놀리신다.
어린 시절, 시골에선 탱자나무 가시가 속살 빼내는 데 최고였는데 지금은 구할 수 없으니, 바늘로 대신한다. 다슬기가 굵은 것에 비해 속살이 잘다. 그런 걸 보니 잡은 지 며칠 된 것을 냉장고에 보관한 모양이라고 혀를 차신다. 고향 마을 앞 빈지소에서 잡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는데 싱싱함까지 챙겨볼 수 없었던 것을 자책이라도 하는 것 같다.
돌돌 말린 모양 따라 살살 뽑아내면 되는데 남편은 영 서툴다. 자꾸 중간에 끊기는지 입으로 가는 게 더 많다. 어머니는 머리 맞대고 수런거리는 즐거움에 그저 웃기만 하신다. 다 까놓고 보니 손품을 들인 것에 비해 속살보다는 껍데기가 더 많다. 껍데기를 감나무 밑으로 옮기기 위해 바구니에 모으는데 차르륵, 자갈에 부딪치는 물소리 들려오는 것 같다.
이른 아침, 시장에 내려가 싱싱한 단배추를 사다가 삶아 우거지를 만들고 불린 쌀은 가루로 만드느라 빠르게 움직이는 동안 어머니의 다리 통증은 씻은 듯이 나아 보인다. 고향이 주는 보약 같은 다슬깃국 한 그릇 먹으려고 올 자식들 생각에, 아픔을 잠시 잊으신 게다. 아니면 가끔 내게 들려주던 등지고 떠나온 고향 마을 ‘깨뜰’의 풍경을 그려보느라 그런지도 모른다.
아버님에게 동산은 말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어서 온전히 주인이 되지는 못했다. 시나브로 사라지는 논밭은 그것을 불리는 일보다 더 빨랐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곳을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하지만 세월만큼 좋은 약이 또 있을까. 이제는 누구보다 먼저, 그곳에서 굵은 주름 키웠을 어머니의 기억이 바쁘게 되살아난다.
할 일이 없으면 더 아프다던 친정엄마가 생각난다. 늘 “놔둬라 그건 내가 해야 혀.”라던 분이다. 어머니 또한 내겐 채소나 다듬게 하며 홀로 종종걸음이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온 집안에 향긋한 다슬깃국 냄새가 퍼진다. 국 냄새가 어린 시절 향수를 떠올리게 했는지 남편이 슬그머니 방에서 나왔다. 냄새만 맡아도 미역 감고 다슬기 잡아 올렸던 물 좋은 빈지소가 떠오르는 모양이다. 물 반 다슬기 반이던 유천강에서 허리가 아프도록 다슬기를 잡았던 큰시누는 지금도 이것만 보면 허리가 아프다고 한다며 ‘쯧쯧’ 혀를 찬다. 수경 낀 큰시누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만 같다.
밥심으로 사는 거라고 밥도 항상 고봉으로 퍼주더니 국도 냉면 그릇에 그득 넘치도록 담아내신다. 후루룩. 남편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저렇게 맛있을까. 준비한 시간이 아까워 천천히 먹고 싶은 마음과 달리 내 숟가락 놀림까지 덩달아 빨라진다. 어머니는 수저를 놓기 무섭게 일어나더니 다녀간 지 얼마 안 된 막내 몫을 따로 퍼서 선풍기 바람 앞에 식힌다. 차가워진 국은 냄비째 냉동실로 들어갈 것이다. 늘 바쁜 작은시누 것도 한 냄비 따로 퍼낸다. 식성 좋은 아주버님 몫으로 뚝배기 한가득, 그러고 보니 들통만 한 냄비가 텅 비었다. 어머니는 비워진 그릇을 보며 “올여름도 다 갔다.”라고 혼잣말을 하신다.
여름이면 고향 마을에 찾아가 다슬기를 사다가 이렇게 국을 끓이는 일이 어머님께는 명절 쇠는 일 같다. 설날 아침 차례상 물리기가 무섭게 이제 한 해 다 보냈다고 회한 가득한 한숨을 내쉬던 어머니다. 이제 제 일을 다 한 큰 냄비는 말끔하게 씻겨져 다시 다락으로 올라갔다.
뜨거운 국을 시원하게 한 그릇 뚝딱 비운 남편은 어느새 세상 부러운 것 없는 얼굴로 오수(午睡)에 빠졌다. 고향 마을 앞 빈지소에서 멱이라도 감고 있던가, 아니면 소 꼴 먹이며 마을 앞산 너머 세상을 그리던 시절로 돌아가 있는지도 모른다.
뿌웅, 기적소리 맞춰 물놀이하던 최고의 낙원이 바로 유천강이라고 했다. 증조부모 산소 앞에서 내려다본 유천강은 여전히 맑고 깊다. 마을이 변하고 사람은 갔어도 강물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교교히 흐르고 있다. 그곳에서 잡아 올린 다슬기로 만든 국은 떠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 원기를 회복시키는 한 첩의 보약이다.
다슬깃국 2
(2019년)
산 아래 주차장에 장이 열렸다. 새벽에 산에 오를 때는 텅 비었던 곳인데 낯설다. 차를 타러 내려가며 천천히 구경한다. 호객 중인 분들의 물건을 보니 이름표는 같으나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여 한 바퀴를 더 돌았다. 물건은 표고며 땅콩, 고추부각, 건나물 등이 주를 이룬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시선을 끈다. 판매원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차림새다. 성(性)이 다르고 파는 물건도 다르니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복숭아뼈를 감싸고 무릎 아래까지 올라온 장화는 흙투성이다. 갈걍갈걍한 모습의 아저씨는 일하다 나온 듯 옷에 먼지가 보얗고 얼굴은 검게 탄 데다 불콰했다.
급히 나온 것 같으니, 판매대는 트럭이고 땅바닥이다. 우선 고춧대가 트럭 적재함에 쌓여있다. 한눈에 봐도 싱싱하다 했더니 밭에서 바로 뽑아 왔다고 한다. 붉고 푸른 고추가 탐난다. 삭힌 고추 만들기에 적당한 크기고 잎까지 먹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사려면 직접 따서 가져가란다. 불친절한 판매 방식이다. 그래도 팔린다.
어느새 두 여인이 한 무더기를 바닥에 쌓아놓고 고추를 따기 시작한다. 아깝다고 고춧잎까지 훑어 담는다. 갈등하는 나를 보던 남편이 팔을 잡아끈다.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나도 한 무더기 샀을 것이다. 아저씨 앞에 놓인 다슬기 그릇만 아니었어도 말이다.
타원형 고무통에 들어있는 다슬기를 보니 어머니가 해 주시던 다슬깃국 생각이 났다.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얼마냐는 말이 튀어나왔다. 덜컥 달라고는 했으나 실패할까 봐 한 그릇만 샀다. 아저씨는 인심이라며 덤으로 두어 주먹 더 넣어주었다.
집에 오자마자 다슬기부터 넓은 그릇에 쏟았다. 잘았다. 껍질이 잔뜩 짊어진 이끼를 보니 손질이 쉽지 않게 생겼다. 고무장갑을 끼고 흐르는 물에 박박 문질렀다. 금방 검푸른 물이 다슬기를 삼켜버렸다. 몇 번 씻어내고 깨 한 물을 받아 뚜껑을 덮어두었다. 서너 시간 후 뚜껑을 열어보니 다슬기가 그릇을 타고 오르며 해감을 잔뜩 해놓았다. 벽에 붙은 다슬기들이 《꽃들에 희망을》에서 본 애벌레 기둥 같아 금방 씻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봤다.
씻고 해감하기를 서너 번 거치고 나니 그제야 어머니가 샀던 다슬기 빛깔이 나왔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언제 먹나 싶은 얼굴로 다슬기 그릇을 자꾸 들여다봤다. 어머니는 고향 근처 식당에서 해감까지 마친 것을 사서 깨끗했다. 그래서 준비 과정도 짧았다. 그러니 남편이 언제 먹을 수 있느냐고 보챌 만도 했다.
다음 날 아침에야 물에 된장을 풀어 다슬기를 삶았다. 살을 발라내려고 보니 혼자서는 엄두가 나질 않는다. 바늘과 작은 물그릇 두 개를 준비해 놓고 도와줘야 빨리 맛볼 수 있다는 말로 남편을 불러다 앉혔다. 양도 적고 크기도 작으니 손실 없이 깨끗하게 해야 한다. 왼손으로 다 슬기를 집어서 오른손에 든 바늘로 다슬기 모양 따라 돌돌 뽑아낸다. 껍질을 버리고 이번엔 놀고 있는 왼손 엄지로 뚜껑을 떼어내 물그릇에 버리길 반복했다. 그렇게 빠른 손과 느린 손의 합작으로 반 대접 정도의 속살이 나왔다. 공을 들여서인지 살보다 훨씬 많은 수북한 빈 껍질도 아깝다.
이제 국을 끓일 차례다. 냄비에 알배기 배추랑 부추와 다진 청양고추, 발라낸 다슬기 살을 순서대로 넣었다. 다슬기 양이 적다고 물을 많이 잡지 않았더니 국물이 짙푸른 바다색이다.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국물을 먼저 눈으로 보고 숟가락을 넣어 휘휘 저어 맛을 봤다. 쌉쌀한데 맛있다. 남편은 반찬도 필요 없다며 새로 지은, 따뜻한 밥에 다슬깃국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국을 먹으면서 나는 노년의 어머니가 끓여주었던 다슬깃국을, 남편은 중년의 엄마가 끓여준 다슬깃국 이야기를 했다. 추억은 달랐지만 같은 맛을 느꼈던 어머니 표 다슬깃국. 그 어머니가 이제 망백이다. 문득, 더 늦기 전에 어머니께 다슬깃국 한번 끓여 보내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손품에 시간 품도 들고 맛도 장담 못 하지만 다슬기를 살 때처럼 갑자기 든 생각이다. 그런데 어디 가서 아저씨가 팔던 것 같은 다슬기를 살 수 있을까.
2019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