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으로 읽는 하루
오늘의 배경 화면
언제부터인가 노트북을 켜면 화면이 수시로 바뀌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켤 때마다 에메랄드빛 바다나 세상에 없을 것 같은 멋진 풍경들이 펼쳐진다. 화려한 깃털을 뽐내는 새가 화면을 가득 메울 때도 있다. 오늘은 진보랏빛으로 출렁이는 라벤더 꽃밭이다.
처음에는 아이콘이 잘 보이지 않는 데다 정신 사나웠는데, 희고 검은 활자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치고는 괜찮다는 생각에 이젠 즐긴다. 같은 자리에 앉아서 네모난 창을 통해 보는 세계, 마치 내가 걷는 산책로의 변화하는 모습과도 같다. 늘 같은 길을 걷는다. 주로 하천 산책로지만, 자주 가는 곳 중 하나가 생태숲이다. 집에서 직선으로 이백여 미터만 가면 숲이 나온다. 오늘도 활자의 늪에서 허우적대다가 숲으로 갔다.
어제도 걸었던 길이다. 하루 전에는 직박구리가 스트로브잣나무 가지에 그림처럼 앉았다가 참나무 숲으로 사라졌다. 오늘은 박새 몇 마리가 같은 나무 낮은 가지에 앉아 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약속이나 한 듯이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포로롱 관목숲으로 날아간다. 연초록이던 청년의 숲이 어느새 초록이 짙은 품 넓은 장년으로 성장했다. 걷는 길은 매양 같으나 보이는 건 언제나 다르다. 그래서 늘 같은 곳을 걸어도 매번 새롭다. 반복하는 일이지만 전혀 지루하거나 지겹지 않다.
갈림길 쉼터에는 오늘도 휠체어를 타고 숲으로 마실 나온 분이 있다. 나와 같은 시간대, 어제와 같은 자리다. 도움 주시는 분과 같은 방향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의 시선 너머 까치 두 마리가 사뿐사뿐 춤추듯 계단을 오른다. 오래전 오대산 적멸보궁을 오르는 계단에서 만난 까치 같다. 그날 까치는 마치 길잡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 앞에서 계단 끝까지 올라가더니 곧장 숲으로 날아갔다. 저 둘은 까치를 보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두런두런하는 말소리가 나무들의 키를 넘지 않아 숲과 잘 어울린다.
걷다 보면 보이는 것들을 관찰하게 된다.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봄’이란 관찰의 개념대로 자세히는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게 된다. 우리 삶의 방향은 의식이 아니라 대부분 무의식이 결정한다고 한다. 내 행동 너머의 그 무엇인, 무의식 중 하나는 자연현상을 향한 관심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칠자화의 잎을 찬찬히 살펴봤다. 하트모양의 잎도 줄기의 껍질도 산수유와 비슷하다. 어느새 올라온 꽃대, 벌써 몇 송이는 피었다. 칠자화는 하얀 꽃을 피우고 남은 빨간 꽃받침이 마치 꽃 같아서 일 년에 두 번 꽃을 피운다는 소리를 듣는 나무다. 꽃이 활짝 피면 코끝에 스밀 향기를 맡기 위해 또 이 길을 자늑자늑 걷게 될 거다. 이렇게 새소리를 듣고 나무와 풀을 보며 걸을 때마다 땅을 딛고 서는 발에 감사하다.
맨발 걷기가 숙면에 도움을 준다기에 한동안 날마다 걸었다. 그랬더니 발에 문제가 생겼다. 평발이라는 걸 잊었다. 사실은 평발보다 발바닥 아치와 복숭아뼈 중간에 복숭아씨만 한 뼈가 문제라고 했다. 남들에게 거의 없다는 뼈가 내 발엔 눈에 띄게 드러났다. 사진으로 보니 바다를 향해 뻗은 반도 같은 뼈가 보였다. 평발인데 맨발로, 그것도 긴 시간 동안 땅을 디뎠으니 튀어나온 뼈가 견디지 못하고 탈이 난 거라고 했다. 당분간 걷는 것도 조심하라는 의사의 소견에 시무룩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걷지 못하니 소화도 안 되고 좀이 쑤셨다.
걸을 때는 천천히, 때로는 멈춰야만 자세히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오늘은 며칠 전에 못 봤던 고마리가 눈에 띈다. 그때는 하늘을 봤거나 다른 것을 보느라 놓친 것 같다. 고마리처럼 작은 꽃을 보려면 쪼그리고 앉아 꽃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멀리서 고마리 흰 꽃이 모여있는 걸 보면 메밀꽃 같다. 분홍색 고마리꽃은 하나하나 살펴보면 작은 연꽃과 흡사하다. 이곳에서는 흰 꽃과 분홍 꽃이 약속이나 한 듯 영역의 경계가 분명하다. 수질정화의 일등 공신이라는 고마리와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 두 꽃의 맑은 빛은 모두 흐림에서 왔다.
오늘도 걸으며 보고 바라본 것들을 생각한다. 내가 무언가를 본다는 건 공부하는 중이라는 거다. 관찰하며 궁금한 건 찾아본다. 그리고 금방 잊기도 한다. 다음에 또 찾아본다. 그때는 좀 더 오래 기억한다. 처음 본 사람의 얼굴을 몇 번은 봐야 기억하는 것과 같다.
도심의 낮은 산 하나를 일 년에 400번 가까이 올랐다는 사람이 있다. 하루에 두 번 이상 오른 날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는 매일 걸었던 같은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고 했다. 풀 한 포기 자라는 것, 꽃이 피고 낙엽 속에서 바스락거리며 풀이 올라오고 연녹색부터 진초록에 갈색 낙엽까지 매번 다른 풍경이 펼쳐진 덕분이라고 했다. 부지런한 자연이 만들어 낸 배경 화면이다.
집으로 돌아와 가벼워진 몸으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떠다니는 빙하 같은 물거품이 몰려가는 사진이 떴다. 하늘에서 찍은 듯 백사장에 일렬로 펼쳐놓은 색색의 파라솔이 마치 줄임표처럼 보인다. 말을 더 덜어내 칠자화 같은 은은한 여운을 남기라는, 오늘의 배경 화면이 주는 메시지다.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