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에 기대는 불면의 밤
염불사를 찾았다. 몇 년 만에 왔는데, 변하지 않은 절의 모습이 반갑다. 대웅전 앞에 고목 한그루가 세찬 비를 맞으며 우뚝 서 있다. 오래전 태풍에 입은 큰 상처로 가지 한편이 비어 보이나 그동안 품이 더 넓어진 것 같다. 14세기쯤 절에서 불도를 닦던 스님이 심은 수령 600여 년의 보리수라고 한다.
보리수나무 잎은 조금 찌그러진 하트모양인데 나무 아래 떨어진 잎은 밤나무 잎처럼 길쭉하다. 주워서 보니 메주콩보다 더 작은 열매가 기다란 잎을 등에 지고 두 서넛씩 매달려있다. 하나의 나무에 두 개의 잎이라니 싶다. 찾아보니 길쭉한 잎은 열매가 떨어질 때도 함께하는 포抱라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보리수나무들과 다른 모습이다.
불면으로 잠을 부르느라 안간힘을 쓸 때 나만의 처방이 있었다. 무엇이든 외워보는 것이었는데 나무, 꽃, 산 또는 시 몇 편을 더듬더듬 찾아 외웠다. 가끔은 잠이 더 달아나기도 하고 더러는 나도 모르게 그들, 또는 그것을 부르다 스르르 잠들기도 했다. 그러니 처방이 영 허방은 아니었다. 나무 이름을 외우며 같은 이름인데 다른 나무인 것들이 몇 개 있었다. 보리수도 그중 하나다. 내가 불렀던 순서는 보리수, 보리수, 보리수였다. 이름은 같았으나 기억하는 모습들은 달랐다.
첫 번째 보리수는 가을에 산에 가면 빨갛게 익은 열매를 심심찮게 따먹을 수 있었던 나무다. 보리를 닮은 열매를 매단 나무를 고향에서는 뽀로수라고 불렀다. 보리똥이라고도 불렀고 누구는 파리똥이라 부르기도 했다. ‘뽀로수’라고 불렀던 보리수가 우리나라에서만 부르는 이름이라는 걸 식물 공부를 하며 알게 되었다. 집 앞 공원에도 팥알만 한 열매를 매달아 가지가 늘어진 보리수나무가 있다. 반가워서 갈 때마다 안부를 묻듯 나무를 살피곤 한다.
화담숲 뒷산을 걷다가 같은 나무를 만난 적이 있다. 빨갛게 익은 열매를 보며 함께 간 동생과 마주 보며 웃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 같은 추억을 떠올렸다는 게 느껴졌다. 아버지 산소는 낮은 산자락에 있었는데 추석 때 성묘하러 오솔길로 들어서면 키 작은 보리수나무가 먼저 반겼다. 다 익은 열매를 한 주먹씩 따먹고 산소로 향했다. 지금은 아버지 누우셨던 무덤은 사라졌어도, 산이 사라지지 않았으니 나무의 둥치는 더 자랐겠다. 낮은 언덕에 서 있는 나무로 바짝 다가가 까치발을 하고 서서 열매를 몇 개 따서 입에 넣었다. 시큼털털한 그리고 떫은 뒷맛이 반가웠다.
두 번째는 뜰보리수다. 6월이면 먹음직스럽게 익은 빨간 열매가 눈길을 끄는 나무다. 몇 년 동안 모락산에 오르며 지나다녔던 계원예대 교정에도 아름드리 뜰보리수가 있었다. 정원 안쪽이라 꽃을 자세히 볼 수 없었으나 열매가 붉게 익으면 꽃보다 고왔다. 열매가 익어갈 땐 부러 그길로 가서 느릿느릿 걸었다. 그때 나무 이름을 찾아보고 뜰보리수라는 걸 알았다. 그후 여주의 시골 마을 담벼락에 기대 자라던 뜰보리수의 추억도 생생하다. 지나는 이의 시선을 잡아두던 뜰보리수 열매는 참 달았다. 아마도 친구랑 같이 걸으며 도란도란 나눴던 이야기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뜰보리수가 몇 그루 있다. 작은 꽃을 피울 땐 멈춰서서 꽃을 찾아보기도 한다. 꽃이 지고 열매가 자라는 걸 보고 싶지만, 그 시기에 가지치기를 하여 한 번도 익은 열매는 본 적이 없다. 잘린 가지를 볼 때면 보기 좋다는 생각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최근 읽은 최은영 작가의 〈한지와 영주〉에도 보리수가 몇 번 등장한다. 영주가 지내는 수도원, 수사들의 묘지 아래쪽 언덕이라고 자세히 써놓았다. 한지와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눌 때도 보리수 향이 난다고 했는데 어떤 보리수나무였는지 무척 궁금했다. 한지와 영주가 헤어지는 걸 보며 뜰보리수는 아니겠다 싶기도 했다. 뜰보리수 꽃말이 ‘부부의 사랑’이라는 게 기억나서다.
세 번째로 불렀던 보리수는 부처님이 그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나무다. 그런데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나무는 인도보리수로 우리나라에서는 키우기 어렵다고 한다. 동남아산인 인도보리수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니 중국 원산인 보리자나무를 심으면서 보리수라 불렀다고 한다. 국내에는 인도에서 기증받은 두 그루 정도가 있다고 한다. 국립수목원 온실에서 인도보리수에 대한 해설을 들으며 제대로 정리가 되었다. 그러니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보리수’는 정확히는 보리자 나무일 확률이 높다는 소리다. 하지만, 보리자나무 열매로 염주를 만들 수 있다고 하니 어떤 식으로든 깨달음을 주는 나무는 맞는 것 같다.
비가 잦아들어 우산을 접고 나무를 올려다봤다. 소원을 적어 나무 주변에 걸어둔 모양과 똑같은 잎이 무성하다. 잎은 앞뒤 색깔이 다르다. 거기다 자잘한 열매와 열매를 매단 포抱까지 다양한 모습을 살피는 묘미가 있는 나무다. 보리자나무꽃에서는 향기도 난다고 하니 내년엔 꽃이 필 때 꼭 와봐야겠다.
나무 아래 떨어진 열매를 주워다 책장 위에 올려뒀다. 열매는 바싹하게 마른 포抱에 매달려 돌처럼 딱딱해졌다. 이젠 불면의 밤에 보리수, 보리수, 보리수 하고 외던 것을 염불사에 다녀와서부터는 보리수, 뜰보리수, 보리자, 인도보리수로 부르며 잠을 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