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多死) 시대 유감

초고령화사회,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by 그설미

세상엔 별일도 다 있다.

여기서 ‘별일’은 드물고도 이상한 일이란 뜻이다. 구순의 노모를 여읜 자손들이 화장장(火葬場)에서 어머니의 분골함을 받지 못했다. 화장장 측에서 어머니의 분골을 수습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고도 없는 타인의 시신을 화장하여 함께 뒤섞어 버렸기 때문이다. 화장장 직원의 실수를 영상으로 확인한 가족의 심정이 어땠을까.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였으니 그만큼 사망률도 높아졌다. 나도 청첩장과 부고장의 비율이 비슷하다. 어떨 때는 부고 문자만 연달아 올 때도 있다. 그러니 직접 문상 가든 마음만 전하든, 이젠 장례식장이 이웃집 같은 느낌이다. 양가 어머님 두 분이 구순과 백수를 바라보고 계시고 건강도 썩 좋지 않으니 곧 내게도 현실로 닥칠 일이다. 그래서 그 가족의 사연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지난주 친정에 갔을 때의 일이다. 여러 겹 껴입어도 춥다는 엄마의 첫인사는 “아이구, 죽겄다···.”였다. 일어날 때도, 지팡이에 의지해 한 걸음씩 옮길 때도, 숨을 쉬듯 연달아 내뱉는 “아이구, 죽겄다.”. 글자 하나하나마다 엄마의 몸무게보다 더 큰 통증이 매달렸을 거다. 오죽하면 ‘죽겄다’는 말을 숨 쉬듯 할까. 내가 ‘살겄다’로 바꿔보시라고 했다. 그랬더니, 안 그래도 요양보호사도 그리 말하더라며 “지금은 하늘로 갈 사람들이 줄을 서 있을 정도로 자리가 꽉 차서 할머니는 아직 순서가 멀었어요.”라고 덧붙이더라며 웃었다.

정말로 이제 다사(多死) 시대로 접어든 느낌이다. 앞으로 4년 후에는 화장장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떠도는 시신이 늘어나고 화장 순서를 기다리느라 어쩔 수 없이 4일장이나 5일장이 대세가 될 거란다. 갈수록 출산율은 절벽이 되는데 반대로 사망률은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는 원정 출산이 아닌 원정 화장의 시대가 와도 이상할 게 없을 모양이다.


내가 사는 경기도만 해도 인구는 1,400만 명 가까운데 화장시설은 네 곳뿐이다. 그도 대부분 남부 지역에 있는 것 같다. 대부분 한 시간 간격으로 예약과 화장이 진행되니 고인이 가시는 길도 정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요양보호사의 ‘하늘로 갈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는 말이 틀린 게 아니다.

다사(多死) 시대, 구순의 할머니처럼 두 명의 유골이 섞이는 일이 발생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다. 화장을 마치고 분골을 수습하고 기계 내부를 깔끔히 청소하기까지 예약된 한 시간 안에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부족해서다. 그러니 예의를 차려 정중히 고인을 대하기를 바라는 유족의 항의가 심심찮게 나올 만도 하다.


1960년대 일곱 살, 내가 본 ‘누군가’의 죽음은 아버지였다. 그때는 누군가 돌아가시면 상여에 고인의 관을 올리고 종이꽃으로 장식하여 묏자리까지 모셨다. 꽃상여를 타고 가는 모습의 아버지, 어린 내 기억에도 지게와 한 몸이었던 아버지가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탈 것이 꽃상여가 아니었을까 싶다. 1970년대,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꽃가마 같은 상여를 타고 가 땅에 묻히셨다. 그러다 1980년대 말에 도시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는 고향까지 버스를 타고 가 땅으로 들어가셨다. 요즈음은 대개가 장례식장에서 상을 치르고 바로 화장하여 한 줌 재로 삶을 마감한다.


2019년 미국 워싱턴주에서는 새로운 장례 방식으로 ‘인간 퇴비장’을 도입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사람의 시신을 거름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시신을 풀과 나뭇조각, 짚 등을 넣은 특수 밀폐용기에 담아 한 달 이상 자연 분해하고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열처리까지 한다. 그리고 유족의 의향에 따라 유골함에 보관하거나 꽃과 나무, 식물에 퇴비로 활용한다는데, 친환경적 장례문화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종교단체에서는 고인의 존엄성 훼손 문제를 들어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런데도 처음 시작한 워싱턴주를 비롯하여 몇 개의 주가 도입했다고 한다. 획기적인 방법엔 고개가 끄덕여지나, ‘퇴비장’이란 단어에는 거부감이 든다.


태어나는 건 순서가 있어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건 순서가 없다는 말처럼 죽음은 탄생처럼 예약된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의식을 위해 정체된 자리 어딘가에 내가 있을 수도 있고 어머니, 엄마 누구라도 있을 수 있다. 가시는 분에 대한 예의는 남은 자의 몫이다. 다사(多死) 시대, 이상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처럼 여기지 않도록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이 모두에게 섭섭지 않은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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