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벚꽃

봄에도 빛나고 가을에도 빛나는 삶

by 그설미


첫눈이 내렸다. 소담스러운 눈은 세상을 금방 하얗게 덮어 버렸다. 붉은 대왕참나무 이파리 위에, 전나무에, 덜꿩나무 빨간 열매에 눈꽃이 피었다. 눈을 보니 시월 초부터 피기 시작한 꽃 생각이 났다. 고개를 한참 들어야만 보일 아파트 3층 높이의 우듬지를 자랑하는 교목에 피기 시작한 꽃이 지금 한창인데 싶었다. 이 눈보라를 고스란히 받고 있을 꽃의 안부을 살피려고 집을 나섰다.

우산을 쓰고 종종걸음으로 오솔길을 몇 번 돌고 돌았을 때 저만치 나무가 보였다. 눈보라 속이지만, 며칠 전과 다름없어 보여 마음이 놓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마치 눈송이가 꽃 같고 꽃이 눈송이 같다. 눈을 맞으며 둥치 가장 아래에서 뻗은 가지에 핀 꽃을 정성 들여 찍었다. 흩뿌리는 눈을 맞으며 서너 번의 시도 끝에 제대로 담았다. 집에 와서 사진을 자세히 보니 곁에 아직 피기 전의 봉오리도 있다.

춘추벚나무는 봄에는 70% 정도의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30% 정도의 꽃을 피운다. 봄에는 이 주 정도 피지만, 가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몇 달을 피고 진다. 올해는 시월 초에 첫 봉오리를 열더니 팝콘 튀겨내듯 꽃을 피워 지금이 절정이다.

수년 전 가을 화담숲에서 키 큰 나무인, 교목에 핀 꽃을 처음 봤다. 가을에 피는 꽃이 궁금해 다음 해에 다시 찾아갔으나 못 보고 왔다. 때를 맞추지 못했거나 나무의 위치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서였을 거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내 집 앞에서 같은 꽃나무를 다시 만났다. 그날 여러 그루의 춘추벚나무를 보며 커피를 두어 잔은 마신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 춘추벚나무꽃을 보고 온 날, 노년에 배움의 꽃을 피우는 분들 이야기를 들었다. 여든과 아흔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이 자기만의 속도로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하고 글을 쓰고 랩을 배우며 그림을 그렸다. 인생의 가을을 빛내는 그분들의 열정이 봄과 가을에 피는 춘추벚나무꽃 같아 보였다. 젊은 시절과는 다른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하는 그분들이, 작지만 짱짱한 가을 벚꽃 같았다. 벚나무 수피 같은 얼굴과 손 주름조차도 멋진 그분들을 보며 나도 조심스럽게 나만의 가을꽃을 그려 가슴에 품었다. 한번 큰일을 겪고 나니 모든 게 새롭게 보인다. 그러니 나도 한해를 적당히 나누어 피는 춘추벚나무처럼 내 몸을 적당히 아껴서 알뜰하게 나눠 써야겠다는 다짐이었다.


올해 첫눈은 117년 만의 폭설이라고 한다. 정말 왔나 싶게 흩뿌려 아련하고 애틋함을 남기던 ‘첫눈’의 이미지를 사정없이 난도질당한 느낌이다. 오후에도 꽃을 보러 갔다. 오전엔 발목을 덮던 눈이 오후에는 종아리까지 올라왔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느티나무 가지가 부러졌고 만첩빈도리는 허리를 있는 대로 구부려 땅에 닿았다. 춘추벚나무 작은 꽃의 등에도 습기를 머금은 눈이 소복하다. 하지만, 눈의 무게에 낙화하는 일은 없을 거다. 쉽게 이울지도 않을 거다. 지난해 겨울 혹한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있던 작은 꽃의 힘을 믿는다.

그날 무슨 마음으로 쓰레기를 버리고 나서 아파트 정원을 한 바퀴 돌았는지 모른다. 공동현관을 나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붉게 빛나던 덜꿩 열매에 끌렸을까. 나보다 먼저 이사 와서 뿌리 내린 나무들의 이름이 궁금하기는 했다. 낙상홍을 비롯하여 남천과 덜꿩이나 만첩빈도리 같은 관목과 키 큰 대왕참나무와 칠엽수를 보다가 정말 우연히 만난 춘추벚나무꽃. 시골 가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별을 보느라 고개를 꺾곤 하는데, 요즈음은 도시에서 그것도 대낮에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끔 머리를 들어볼 일이다. 나보다 큰 나무를 살피고 하늘을 우러러볼 일이다. 춘추벚나무꽃을 보겠다고 멀리 부안 내소사까지도 찾아간다는데 나는 아파트 정원에 여남은 그루의 춘추 벚꽃을 끌어안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다. 춘추벚나무를 아파트 조경수로 선택한 누군가의 결정이 참 고맙다.

첫눈은 오늘 밤에 다시 폭설로 이어 달릴 모양이다. 이런저런 걱정이 많아지는 밤이다. 안 되겠다. 내일 아침에도 꽃이나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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