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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리 Nov 23. 2021

조명

따듯한 조명이 주는 유익  

그 어떤 아름다운 장식보다

장소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의 8할은 조명인 것 같다.


아무리 따듯한 가구와 커피 향이 가득한 공간이라도

형광등의 적나라한 조명 아래에서는

이성이 번득이고 감성은 쉽게 메말라버린다.


형광등은 정확한 사물의 팩트를 인지시키고, 디테일한 것들을 볼 수 있게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정확함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조금은 덜 보여도 조금은 흐릿해도 노랗고 뽀얀 조명이 주는 신비로움과 따듯함




누구나 기질이 다르고 성격이라는 것이 제각각인데...

나의 경우 유독 '옳고 그르고, 맞고 틀리고, 적절하고 적절하지 않고'등의 상황과 사람에 대한 평가가 미처 내가 의도하기도 전에 시시때때로 머릿속에서 자동 반사적으로 돌아가서 묵직하고 날렵한 나름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또한 그 화살은 상황과 타인뿐만 아니라 언제나 나에게도 향해 있었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그려놓은 '나는 이래야 한다'라는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끊임없이 체크하고 그것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그러한 상황이 되지 못했을 때는 엄청난 자책감과 후회들로 나를 몰아세웠다.


      그런데
어디 인생이 내 맘대로 되던가?!

  

 

비교적 계획한 대로 생각한 대로 흘러가던 내 인생에 사랑, 결혼, 일에 있어서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이 연타로 터졌고, 나는 그것을 감당하지... 아니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것은 내가 기대하고 믿었던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인정도 포기도 수긍도 안 되는 상황...  

나름의 기준이란 것이 많았던 나는 그 기준과 동떨어진 나를 직면하지 못하고 힘없이 허물어졌다.

꽤 오랜 시간 '왜? 나에게 이런 일...''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에 관한 물음에만 집착하느라 참으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결국 쉽게 원상복구 되지 못하는 현실은 나에게 우울증으로 나타났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내가 세워놓았던 그 기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심각하게 주관적이고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인지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또한 내가 들이대던 잣대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상처 주었는지, 그런 나는 또 얼마나 피곤하게 살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제 보니 인생은 수학공식처럼 똑 떨어지는 정답이라는 것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더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삶의 모양새는 규정지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우울증이 왔을 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집에 조명들을 교체했다


머리카락 한 톨까지도 보일 듯 푸른빛이 감도는 쨍한 거실은 은은한 노란색으로 바꿨고, 식탁 역시 따듯하고 부드러운 빛으로 음식을 먹을 때 편안함을 더했다. 침대는 조도를 더욱 낮춰서 간접조명으로만 켜 두고 지냈다.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 그랬을까? 신기하게도 나는 바뀐 조명처럼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뾰족 함들이 둥글해지고 날카로운 시선 역시 관대해지고 있었더라.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그렇게 말했다. "뭔가 예전에 날이 서있는 느낌이었는데 참 많이 편안해진 것 같아"


부드러워진 시선으로 타인을, 상황을, 내 삶을 조명하기 시작하면 절대 안 되는 것들이 흐릿해지고 그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 수용력이 커지고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넓어진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걸림돌들이 자연스럽게 물 흘러가듯 그렇게 넘어가진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 스펀지처럼 슬그머니 스며들게 된다. 조명은 내 마음에 실로 신비롭고 거대한 재질의 변화를 일으켰다.   




지금 이 순간 피곤하게 정답을 맞히듯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맘에 썩 들지 않더라도, 어설프고 모자라 보여도 나만의 프레임으로 선명하게 재단 하기보다

흐릿하지만 따듯한 백열등으로 나 자신을 조명하는 것.

여유로운 감성을 유지하고 살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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