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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리 Nov 23. 2021

아침 하늘

비상구를 찾아 고개를 들다  

내 우울의 모양새는 마치 아름드리나무가 뿌리째 뽑혀 너덜너덜한 상태로 그 어디에도 몸뚱이를 기대지 못한 헐벗은 상태와 같았다. 낮에는 그래도 아닌 척 괜찮은 척 그렇게 사람들과 웃고 이야기하고 비틀거리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쓰다가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서 화장이 벗겨진 나의 방 침대 속에서 나는 직면하기 싫은 적나라한 나와 대면해야 했고 그렇게 우울의 늪으로 거부할 수 없이 빨려 들어갔다.  




우울증이 극에 달한 어느 날 밤 나는 어깨를 움츠려 흐느꼈다.

두려웠다. 그리고 막막했다.

절대로 끝날 것 같지 않은 회색의 짙은 터널 속을 끌려다니며 천년 같이 느껴지는 긴 시간 동안 어둠과 사투를 벌였다.  그렇게 모든 힘이 빠져 더 이상은 눈을 뜰 여력도 없이 축 늘어져 있을 때 커튼 사이로 따듯한 온기가 스며든다.


해가 떴다.

다시 아침이 왔다.

더는 보지 못할 것 같았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축 늘어진 몸을 아주 조금씩 일으켜 세운다.    

힘겹게 샤워를 하고 무릎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에 처참한 얼굴을 화장으로 덮고, 밥을 챙겨 먹고 주섬주섬 물건을 챙겨 아파트 현관을 나섰다.   


고여있던 숨을 빨아들이듯 겨울의 알싸한 공기가 간밤의 기운을 뻥 뚫으며 내 가슴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마치 우주의 다른 별에서 또 다른 별로 이동한 것 같은 생경한 기분이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죽음의 공포와 우울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는 것을 망각할 만큼 그것은 상쾌하고도 신선했다.   

특별히 출근길인 제2자유로를 달리면서 보는 주황의 황홀한 새벽 미명의 하늘은 간밤에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앓이와 고단한 삶의 사연을 고스란히 품고 일렁거린다.


그렇게 넉넉하게 펼쳐진 하늘은 지독하고 처절한 나의 우울도 넉넉하게 집어삼킬 만큼 아름답고 눈부셨다.

나는 그렇게 매일 밤마다 휘몰아치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성실하게 펼쳐져 있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하늘을 보며 제대로 된 숨을 들이쉴 수 있었다. 그리고 따박따박 돌아온 일상의 하루를 담담하게 대면할 수 있었다.

제2자유로의 북쪽 끝자락에 살았던 덕분에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가슴 벅차게 아름다운 하늘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폭풍 같은 우울에 뒤엉켜 살려달라고 호소했던 기도에 대한 섬세하고 따듯한 신의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 지루한 우울증 속에서 매일 아침 맞이하는 비상구였다.

위험한 줄 알지만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나의 하늘(?)



지금 우울증으로 힘겨운 누군가가 있다면...


"잠시만 고개를 들고 아침 하늘을 보세요.

그리고 크게 숨을 쉬어보세요.

오늘 하루를 견딜 만큼의 에너지와 용기를 얻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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