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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리 Nov 23. 2021

집밥 사수

배고픔은 어쩌면 마음의 허기짐

나의 경우 우울이 시간이 지나면서 무기력으로 확장되었다.

손끝 하나 움직일 의지도 기력도 없어진 상태.

하염없이 바닥을 향하는 몸과 마음.

나는 그래서 서울역에 축 늘어진 채 누워있는 노숙인 분들을 보면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혹자는 사지육신 멀쩡한데 왜 일을 안 하고 노숙을 하냐며 동정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각자의 사연인들 알 수는 없으나 사람이 엄청난 충격 또는 상실감으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한계를 초과해 버렸을 때는 몸도 마음도 모든 것이 셧다운 되어 버린다.

이때 의지를 내어 새로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솔직히 불가능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아주 일상적인 샤워하는 일, 밥 먹는 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 조차도 있는 힘을 다 해야 겨우 해낼  수 있었다.




그런 나였지만...

이토록 무기력한 생태에서도 내가 반드시 사수하려고 노력했던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집밥이다.


혼자 살면서 유 별스럽게도 따듯하게 갓 지은 밥과 몇 가지 온기가 느껴지는 반찬을 적당하게 어울릴법한 그릇에 담아 오로지 나 스스로를 위한 밥상을 차렸다.


손끝 하나 움직일 힘이 없는 무기력 속에서도 집밥을 고수한 데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20대 후반 나는 이미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부모와 떨어져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런데 몇 달 동안 이상하게 마음에 바람이 부는 듯 외롭고 허전했다.

퇴근길 집에 오면 알 수 없는 허전함에 재미있는 TV를 봐도, 친구랑 전화수다를 떨어도, 즐겁게 회식을 해도 좀처럼 헛헛함이 없어지지 않았다.    

일시적인 것이겠지 곧 괜찮아지겠지 하며 보낸 시간이 무려 몇 달이나 흘렀고 도무지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몰라하고 있을 때 이런 나의 상태를 걱정하던 남자 친구가 퇴근길 집 앞에 잠시 들렀고 주차장에서 얼굴만 잠깐 보자 하여 나갔다.

나는 차 앞 조수석에 앉자마자 아파트 1층에 어떤 집을 보게 되었고 뜬금없이 눈물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급기야 꺼이꺼이 하며 통곡하며 울었다.


베란다 창문으로 보이는 그 집의 풍경은 노란 조명 아래 가족이 올망졸망 모여 같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것은 따듯했고 정겨웠고 그리움이었다.

혼자 살면서 잊어버린 집밥에 대한 향수였다. 그 짧은 순간에 달그락 거리며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던 엄마의 손길과 가족들이 깔깔 웃으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하던 풍경이 영화 속 풍경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소박하지만 따듯했던 집밥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고 강렬하게 올라왔다.


, 내가 그동안 그토록 허전했던 것은 마음의 허기짐이었구나...



나는 그제야 몇 달간의 내 방황의 원인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과거 따듯했던 풍경으로 돌아가기엔 이미 독립적인 내 삶이란 것이 생겨버렸고, 매 끼니 엄마의 온기와 사랑으로 풍성했던 가족과의 식사는 현실 불가능한 풍경인 상황.


그래서 마음을 먹었다.

내가 그런 풍경을 만들어주자. 허기진 내 마음에 따듯한 온기를 채워주자.

그렇게 나의 고집스러운 집밥 사수가 시작된 것이다.


아침밥상 (조기 두 마리는 좀 과한듯하지만 맛있으니까~)
야채 가득한 도시락
불판 세 개가 정신없이 돌아간다

  

가장 좋아하는 솥밥

퇴근길 배고픔에 서둘러 집밥을 만든다.  

밤을 넣은 뜨끈한 솥밥에 두부 송송 된장찌개 그리고 고등어구이 한 젓가락...

만들 때는 버겁지만 막상 한 숟가락 입안으로 들어올 때 순간 온몸을 휘감던 허기짐이 눈 녹듯이 녹아지면서 몸도 마음도 따듯한 온기가 스며든다.




모두가 나와 같은 경우라 보긴 어렵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 우울, 불안, 무기력과의 전쟁 속에서 집밥은 든든하게 나를 지켜줬던 믿음직한 무기였다.

이것을 온몸으로 경험한 나는 이제는 알 것 같다.


배고픔은 곧 마음의 강렬한 허기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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