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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리 Nov 26. 2021

그냥 걸었어

걸으면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

30대 초반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마침 꼭 가고 싶었던 곳에 공채가 있어 지원을 했으나 최종면접에서 낙방을 하고 심신이 지쳐 몰골이 말이 아닌 채 침대에 누워 뒤척이고 있었다. 그런데 면접에 떨어진 것보다 해가 짱짱한 대낮에 모두들 삶의 현장에서 바쁘게 움직일 이 시간에,  하염없이 흐트러진 채 침대에 들어 누워 있는 상태가 더욱 참을 수 없더라. 이것은 관성의 법칙인지, 노예의 법칙인지... 내 몸과 영혼은 10년여 가까이 숨 가쁘게 일하며 경주마처럼 달리는 패턴에 완벽하게 적응돼있었고 급기야 루저 감과 죄책감이 치밀어 올라와 더는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떠났다. 


당장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떠오르지도 않았고, 집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이 불가능하니 여행이라는 명분으로 포장을 해서라도 '여유로움'이란 것을 느껴보자 하는 어설픈 마음가짐과 계획으로 떠난 여행지는 '산티아고 순례길'

대략 40일 정도의 여정으로 하루 20Km 이상의 길을 6~7시간 정도 걷는 매일의 고행(?) 길이었다.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품고 그 길을 걷는다. 이별에 대한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떠나 온 그녀, 결혼기념일을 맞아 다정하게 나란히 걷던 백발의 노부부, 무일푼으로 얼마나 오래 걸을 수 있을지 자신과의 테스트를 하고 있다는 청년, 평생 이 길을 걷는 것이 소원이라 비록 몸은 아프지만 기도하며 느리고 차분하게 걷고 있는 아주머니... 그에 비해 큰 결심 없이 덥석 그냥 걸었던 나의 순례길은 예상보다 너무 힘들었다.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냐며 내내 투덜거리던 나는 가만히 있어도 마치 다리는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지점쯤부터 걷기가 주는 매력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못다 한 에피소드는 언젠가 따로 쓸 날이 있기를 기대하며 결론적으로 극한의 고단함과 격식 없는 순례길을 걸으며 직업이나 외모 등으로 포장된 내가 아닌 온전한 나를 대면할 수 있었다. 또한 웅장하고도 소박한 대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연의 속도에 맞춰 향유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으며 평소 내외부의 요란한 소음으로  들리지 않았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키가 작은 것이 아니라 가방이 큰 것이다 (그러나 걷다 보면 가방은 작아진다. 무거움에 자꾸 버리게 되므로...)

햇볕을 받으며 걷는 것이 우울증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 결과에서도 증명하고 있듯 평범해 보이지만 걷는 것이 주는 유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력하다.


풍경을 눈에 담다
   

이른 주말 아침이면 나는 무조건 공원을 갔다. 호수가 있고 아름드리나무들을 꽤 볼 수 있는 공원이었다. 아직 때가 덜 탄 신선한 이른 아침 공기를 들이키며 아직 풀리지 않은 뻣뻣한 다리로 터벅터벅 걷는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발걸음은 조금씩 유연해지고 간밤에 좁아졌던 시야도 열리기 시작한다. 우울증은 마음의 시야를 아주 좁게 만든다. 어떤 한 지점에 함몰되어 무한반복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감정과 생각의 늪에 몸도 마음도 매몰되어 탈출구를 잃어버린다. 차창밖 풍경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것. 가까이에서 걸을 때야 비로소 세포 곳곳으로 선명하게 전달되어 오는 것들이 있다. 사계절의 냄새를 품고 있는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가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만큼이나 익숙하지만 신선한 스킨십이다. 자잔하게 올라와 있는 잔디와 이름 모를 풀들이 걷는 길 주변으로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펼쳐져 있다. 헝클어져 있던 마음에 위로가 덮인다. 사그락 거리며 잎사귀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 새들의 청명한 울음소리에 적막했던 내면에 리듬이 만들어진다. 



깊은숨을 쉬다

 

상담 심리학을 공부하거나 심리상담을 받아 본 사람을 알겠지만 사람의 심리 상태는 호흡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누군가로 인해 감정이 격해지거나 화가 났을 때, 또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절망하거나 낙심할 때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숨을 크게 몰아쉰다. "하아~~"하고 숨을 크게 몇 번 내쉬고 나면 조금 진정이 되고 진정이 되면 차분하게 현재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반추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나는 평상시 얕고 빠른 호흡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건 아마 늘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고 늘 사무실, 차, 집이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의 짧은 시선이 호흡과도 연결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적어도 걸을 때는 달랐다. 보폭의 넓이와 걷는 리듬에 맞춰 폐부 저 깊은 곳까지 공기가 와닿는 느낌이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생각들이 기지개를 켠다는 것이다. 한지점만을 맴돌던 생각에 가려져 쪼그라들어 있던, 결이 다른 기억과 생각들이 하나씩 아지랑이 피어오르듯이 살아난다. 봄을 상상할 수 있는 생각의 에너지가 돋아나는 것이다.


에너지를 받다

이른 아침 공원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다. 해가 그리 쨍쨍하지 않음에도 혹시 빛 한 줌이라도 들어와 그 흔적을 남길까 봐 철통 무장을 한 채로 목장갑을 흔들며 마네킹처럼 걷고 계신 여사님부터, 한눈에 봐도 살을 빼겠다는 굳은 의지 속에 힘겹게 한발 한발 내딛고 있는 청년, 정말 부부가 저렇게 다정하게 손을 잡는다고(?) 할 만큼 나란히 금실 좋게 걷고 계신 부부, 누가 누구를 산책시키는지 헷갈리게 걷고 있는 강아지와 그의 주인...

가지각색의 사람들은 그렇게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이유야 어찌 되었건 그들 모두에게는 공통적으로 기대라는 것이 있다. 주말 아침 6시에 인생에 회의감에 빠진 사람이 나와서 산책이란 걸 하는 경우는 아주 희박하다. 살을 빼야겠다는 각오가 되었든 가족 같은 강아지를 위해서 나온 산책이건 부부가 주중에 못 나눈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건 그들에게는 기분 좋은 기대가 품고 있는 에너지가 흘러나온다. 누군가의 에너지는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도 어렵지 않게 전염된다. 나는 주말 아침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이름 모를 그들을 유심히 보면서 걸었다. 그들의 눈빛과 걸음걸이 그리고 언뜻언뜻 스치듯 주고받는 대화들... 꼭 손을 잡지 않아도, 껴안지 않아도, 직접적인 응원에 메시지를 듣지 않아도 그 길에서는 충분히 기분 좋은 감정과 기대를 어림잡아갈 수가 있다.             


나를 만나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가?

생각해보니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더라. 출퇴근길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집에 와서 잠들기 전, 커피숍에서 그렇게 특정 공간에 물리적으로 혼자 놓여 있는 경우는 있었으나 실질 내면은 처리해야 할 과제의 연장선인 생각들과, 리셋되기 어려운 꺼림칙한 관계의 고민, 일상의 To-do List로 늘 분주하고 복잡했다. 혼자인 듯 하나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처음에 걸을 때는 다리는 걷고 있지만 생각은 여전했다. 자동반사적으로 늘 하던 대로 생각이 돌아간다. 그러나 어느 정도 걷다 보면 마치 구름이 걷히듯 그렇게 말갛게 된다. 평소 중요하다 착가 했으나 본질이 아닌 것들이 걷히고 밑바닥 여릿하지만 선명하게 올라오는 진짜 내 소리가 들린다.

알고 나면 괜찮아지는 것들이 있다. 몰라서 괴롭지 아는 순간 담담하게 정열 되는 것들이 있다. 마음을 헝클어트리는 상황도, 감정도 마치 실타래가 풀리듯 그렇게 스르르 감기는 게 있다는 것을 혼자 걷는 시간 동안 나는 경험했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밀접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마음이 아프면 일도, 관계도 엉망이 되어버리고 몸이 아프면 무언가에 집중을 할 수도 퍼포먼스를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 

서로는 마치 부부처럼 둘이나 하나인듯하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마음이 아플 때는 몸이 조금 더 힘을 내주어야 한다. 도저히 일어나고 싶지 않은 상태일지라도 기어이 문밖을 나와 걸으며 자연과 사람과 나 자신과의 만남을 가져야 한다. 몸이 먼저 보고 느낀 것들은 결국 고스란히 마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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