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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Jun 28. 2021

친구의 추억 (1)

어느 날 그렇게 다가왔다


“나는 동현 중학교에서 온 전우현이야. 친하게 지내자.”


낯설었다. 어색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친교親交 방식이 아니었다. 서울말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악수를 거절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 그래, 하는 어설픈 동의同意가 겨우 따라 나왔다.




1987년 봄,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처음 며칠은 등교하는 순서대로 앉았다. 일찌감치 유철이가 내 옆에 말뚝을 박았고, 앞자리는 놀기 좋아하는 몇몇의 지정석이 되었다. 그렇게 자기 영역을 우선 정한 다음, 천천히 눈치를 보며 말을 섞거나 가벼운 장난을 걸면서 차츰 친해지는 것, 그것이 친구가 되는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런 순서를 단박에 건너뛰고 먼저 다가와 대뜸 손을 내밀며 그것도 서울 말씨로 친하게 지내자 하니, 내가 당황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후로 며칠 동안 살펴보았지만, 우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그런 식으로 인사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쉬는 시간에도 누구와 어울리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결국 내게만 그랬다는 것인데 그 이유를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우현이를 생각하면 우선 독특한 머리 모양부터 떠오른다. 두발 자유화 시절이긴 했으나 파마(펌)나 염색을 하는 것은 철저히 금지되었다. 우현이의 머리는 마치 핀컬 파마를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물결치며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눈에 띄는 밝은 갈색이었다. 가끔 체육 선생이 불러 세워 확인할 때도 있었지만 특별히 꼬투리를 잡힌 적은 없었다.


눈썹은 짙고 피부는 하얀 편이었다. 여드름이 두어 개 정도 돋아나고 있었음에도 딱히 거슬리지는 않았다. 콧날이 오뚝하고 콧대가 높아서 그 위로 걸쳐진 전영록 잠자리 안경이 꽤나 잘 어울렸다. 도수가 거의 없었으니 아마도 멋으로 끼는 패션 안경인 듯했다. 키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체육 시간이면 줄의 가운데쯤에 섰다. 성장 과정에 있었으니 키는 논외論外라 해도 좋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꽤 잘 생긴 얼굴이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안경 낀 박남정이라고나 할까.


평소의 옷차림 역시 그를 기억할 때 빼놓을 수는 없다. 명품이란 말보다 ‘브랜드’라는 표현이 더 익숙했던 때였다. 게스 청바지와 폴로 셔츠에 빈폴 카디건, 아디다스 가방과 나이키 운동화, 심지어 양말마저 아식스였으니 어쩌면 속옷도 빤스가 아니라 ‘브랜드’였을 것이다. 같은 옷을 이틀 입는 법도 없었다. 갈아입은 것 역시 ‘브랜드’였다. 하물며 도시락 반찬은,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런 멋들어진 갖가지 특징에도 불구하고 우현이의 별명은 그러나 ‘칼자국’이었다. 그것은 우현이의 얼굴에 있는 상처 때문이었다.


미간眉間으로부터 뺨을 가로질러 왼쪽 귀 아래까지 길게 이어진 흔적. 본인이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분명 칼에 베인 것이었다. 다쳤을 때 응급조치가 늦었던 건지 상처의 흔적이 꽤나 깊었다. 학생의 인권人權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그 시절의 선생 하나가 우현이를 보자마자 대뜸 ‘어이, 칼자국!’ 해버린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우현이가 기분 좋을 리 없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친하게 지내자며 처음 손을 내밀었을 때, 내가 조금 망설였던 것도 어쩌면 그 상처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 그 상처는 유독 하얗게 도드라졌다. 그런 탓에 우현이는 공연한 다툼으로 화를 내는 일도, 체육 시간 외에는 숨이 차는 것도 되도록 피하는 것 같았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우리가 흙바람을 일으키며 축구공을 쫓아다닐 때에도 우현이는 스탠드 한쪽에 앉아서 그저 구경만 할 뿐이었다.


입학하고 처음 치른 주초週初 고사 성적이 나왔다.


우현이는 반에서 십 등 언저리를 했던 것 같다. 성적표를 받던 날, 우현이는 내 앞자리로 옮겨 왔다. 그리고 수시로 뒤로 돌아앉아 내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때로는 유철이가 도와주기도 하고 어쩌다 우리 머리로 안 되는 것은 반장에게 가서 다 같이 배웠다. 그럴 때마다 아이처럼 좋아하던 우현이의 얼굴이 기억난다.




봄 소풍을 다녀온 4월에는 이미 꽤나 친해진 상태였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에 서식하는 말썽쟁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가방을 챙기는데 우현이가 나를 불렀다.


“우리 집에 갈래? 라면 끓여 먹고 같이 공부하자.”


공부는 됐고, 라면은 땡긴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었던 것 같다. 작은 골목 하나를 빠져나가자 번듯한 이층 양옥이 떡하니 나타났다. 담벼락에는 흰색 각그랜저 한 대가 서 있었다. 우현이네 차인 것 같았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엄청난 부자구나. 집안에는 아무도 없는지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우현이가 열쇠를 꺼냈다. 터엉. 대문이 열렸다.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자 꽤나 너른 잔디밭 마당이 펼쳐졌고, 저건너 한쪽 편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차를 마실 수 있는 탁자와 의자, 그네도 매어져 있었다.


“우와, 너그 집, 억수로 부자네? 밖에 있는 그랜저, 저것도 너그 차 맞제?”


우현이가 빙긋 웃으며 현관문을 열려고 했다. 그때였다. 안에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어? 집에 누가 있었나 보네. 우현이가 한 발 물러섰다. 곧 문이 열리고 그림자가 밖으로 나왔다. 젊은 여자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아마도 우현이 누나인 것 같았다. 그런데.


“아, 우현아. 벨을 누르지 그랬어. 친구랑 같이 왔구나. 어서 와요. 나는 우현이 엄마야.”


역시 서울말이었다. 그런데 누나가 아니라 엄마란다. 외모로만 본다면 어느 누구도 이 분을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냄새가 났다. 집에 있는 우리 엄마가 순간 떠올랐다.


아, 안녕하세요, 하며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우현이의 반응이 이상했다. 내 옷깃을 잡더니 서둘러 현관 안으로 끌어당겼다. “엄마 잠시 다녀올 테니…” 어머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현이가 문을 걷어찼다. 쾅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그리고 우현이가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누가 엄마래? 미친년.”


(2편에 계속됩니다)



Image of Kwangalli By Jin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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