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우 May 14. 2021

글짓기의 추억

코딱지로부터 내 글은 시작되고

코딱지로부터 내 글은 시작되고

사 학년 일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이민을 가시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의 공백 뒤에 새 담임이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김명숙 선생님이었다. 아줌마 선생님을 대신한 젊고 예쁜 선생님의 등장은 실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며, 떠나는 선생님을 끝내 울렸던 코흘리개들은,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새 담임 선생님의 눈에 띄기 위한 치열한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대머리 아저씨가 새 대통령이 되었다던 그 해, 봄의 일이다.




학교 담벼락 끝집에 살던 상훈이는 아침마다 꽁꽁 얼린 물통을 가지고 왔다. 당시 우리 학교는 제법 높은 언덕배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유 있는 걸음이라도 교실에 도착할 즈음이면 깔딱숨이 절로 나왔다. 상훈이가 챙겨 온 물을 시원하게 드시고 나서 선생님이 그러셨다. “상훈아, 오늘도 고마워.” 아니, 선생님이 상훈이 이름을 아시다니. 부끄러운 척 고개를 숙이면서도 등 뒤로 브이자를 만들어 보이는, 저 얄미운 녀석. 우리 집에도 냉장고는 있는데.


이에 질세라 명수는 선생님의 책상을 공략했다. 정작 자기 자리는 돼지를 키워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지저분한 녀석이, 그런 놈이 어떻게 선생님 책상을 정리하겠다는 건지. 그러나 명수는 영악했다. 책상에 엎드려 정신없이 자다가, 때가 되었다 싶으면 갑자기 교실 문 옆에 바짝 붙어 섰다. 그러다가 저만치에서 선생님이 오신다 싶으면 부리나케 걸레를 집어 들고선 선생님의 책상이며 의자를 닦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교실 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을 절대로 놓치지 않고, 땀은커녕 그저 퍽퍽한 이마를 애써 팔뚝으로 문지르며, “아, 이제 다 됐다. 선생님은 언제 오시지?” 하며 눈꼴사나운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또 그러셨다. “오늘도 명수가 선생님을 기분 좋게 해 주는구나.” 아이고, 이젠 명수 이름까지 아시는구나. 미웠다. 명수도 미웠고, 명수의 농간에 속고 있는 선생님도 미웠다.


나도 어떻게든 이 전투에 뛰어들어 선생님께 내 이름을 빨리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방법이 요원했다. 공부로 입신立身하자니 일등 할 재주가 없었고, 체육으로 양명揚名하자니 꼴찌보다 못한, 그저 어중간한 ‘나머지 학생들’ 중 하나였다. 그래서 속이 상했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빨리 아셔야 할 텐데. 상훈이와 명수가 신나게 깃발을 펄럭거릴수록, 딱히 돋보일 방법이 없었던 나는 애꿎은 돌부리만 걷어찰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 서울교육청


매주 월요일 국어 시간, 선생님은 우리에게 ‘짧은 글짓기’를 하게 하셨다. 선생님이 칠판에 적으신 낱말 한 개를 소재로 해서 두세 문장 정도의 짧은 글을 짓는 것이었다. 특별한 주제는 아니었다. 어떨 때는 ‘가족’, 아니면 ‘구름’, 때론 ‘염소’도 있었다. 그리고 십분 정도 뒤엔, 선생님이 지목한 분단의 아이들이 차례로 일어나 각자가 지은 글을 읽었다. 딱히 누구를 칭찬하거나 나무라는 경우는 없었다. 우리가 글을 짓고 읽는 모습을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보고만 계셨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기억하는 그 날의 주제는, 특이하게도 ‘코딱지’였다. 참 이상한 주제도 다 있구나 싶었다. 보나 마나 우리 분단은 안 걸리겠지. 대충 휙휙 갈겨쓴 다음,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는데, 우리 줄 맨 앞에 앉은 경희가 벌떡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서둘러 글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럴듯한 구절이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에서 땀이 삐질삐질 날 지경이었다. 그러는 사이, 순서는 점점 내게로 다가왔다. 바로 앞자리의 친구가 일어설 때까지도 나는 글을 고치지 못했다. 결국 내 차례가 되었다. 쉽게 일어설 수 없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자, 다음. 그래, 너. 짧은 글짓기 한 것, 읽어볼래?”


겨우 일어섰다. 공책을 들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걸 읽어도 될까? 에라, 모르겠다. 눈을 질끈 감고 나는 코딱지를 소재로 한 ‘짧은 글’을 큰소리로 읽어 ‘버렸다’.


후다닥 자리에 앉았다. 교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이 웃으셨다. 그것도 그냥 빙긋 웃는 게 아니라 허리를 젖혀가며 큰 소리로 막 웃으시는 것이었다. 그걸 본 아이들이 하나둘 따라 웃기 시작했다. 연못에 던진 돌멩이가 물결을 일으키듯 교실은 금세 하하호호깔깔깔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상훈이와 명수는 손가락질까지 하며 웃어댔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분명 야단맞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이들의 웃음이 잦아든 이후에도 선생님은 교탁 모서리를 잡고는 웃음을 쉽게 멈추지 못하셨다. 그리고 한참 만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게 물으셨다.


“넌, 이름이 뭐지?”


그 순간, 교실 천장 구석에서 아주 밝은 빛 한 덩어리가 내게로 살며시 내려왔다. 나는 그 빛에다 또박또박 내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빛의 한편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그러자 그 빛은 다시 두둥실 떠올라 교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선생님의 귓가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아, 드디어 선생님이 내 이름을 아셨구나. 기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선생님이 다정하게 나를 부르셨다. 나는 큰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뒤로 나가서 손들고 꿇어앉아.”


상관없다. 벌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드디어 선생님이 내 이름을 아신 거야. 고마워, 코딱지. 이건 모두, 코딱지 네 덕분이야. 이제 됐어. 고마워, 정말 고마워.




사월 말이 되자 특활반이 만들어졌다. 특활, 말 그대로 특별활동 시간이었다. 매주 목요일 6교시가 되면, 학생들은 자기가 가입한 특활반으로 교실을 옮겨 수업을 했다. 공작반, 웅변반, 미술반, 서예반, 합창반, 그리고 문예반. 내가 문예반을 선택한 것은 당연했다. 김명숙 선생님이 문예반을 맡으셨기 때문이었다. 상훈이, 명수 녀석들도 재수 없게 거기에 끼었다. 받아쓰기도 제대로 못하는 것들이 문예라니, 정말 염치도 좋다 싶었다.


문예반 첫 시간, 선생님은 처음 듣는 노래 한 곡을 따라 부르게 하셨다.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노래가 생생하다.


기역니은 모여서 글자 되고요, 글자들이 모여서 낱말 되지요

낱말들이 모여서 문장 되고요, 문장들이 모여서 글이 되지요

생각 담은 좋은 글도 일등이고요, 재미있는 좋은 글도 일등이지요

생각 담아 재미있는 좋은 글 쓰는, 우리는 자랑스런 동명 어린이


노래가 끝나자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도 여전히 기억한다.


“글짓기와 글쓰기는 조금 다르다. 글짓기는 목적에 맞게 글을 만드는 것이고, 글쓰기는 자기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쓰는 것이다. 글을 잘 지으려면 우선 글을 잘 써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부터 시작하자.”


생각을 받아쓴다? 열한 살 철부지들이 이해하기엔 나름 어려운 말이었지만, 우리는 공책에다 정성껏 받아 적었다.


우리는 정작 문예반 수업보다, 다른 반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우리 반 담임인 것을 으스대는 것에 더 집중했다. 너희는 꼴랑 일주일에 한 시간이지만, 우리는 일주일 내내 김명숙 선생님과 같이 지낸다며 은근한 자랑을 했다. 물론 애당초 아무도 그것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또한 선생님도 문예반에서 우리를 편애하신 적은 없었다.


특활 시간이 끝나고 모두 자기 반으로 돌아간 다음, 그때서야 선생님이 우리들의 글을 챙기셨다. 그리고 유독 내가 쓴 글에는 꽤나 많은 첨삭을 해 주셨다. 상훈이와 명수가 그걸 부러워했다. 빨간 색연필이 원고지 위에다 장대비를 좍좍 뿌려도, 돼지꼬리가 줄줄이 잔치를 벌여도 나는 선생님이 내 글을 봐주시는 것이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이담에 장가는 무조건 선생님에게 간다, 이런 비장한 다짐도 자주 했던 것 같다.


ⓒ 故 김기찬, 골목안 풍경


선생님에게선 늘 좋은 냄새가 났다. 상훈이는 그걸 ‘향수 냄새’라고 했고, 명수는 뜻밖에도 ‘책 냄새’라고 했다. 새로 산 책과 똑같은 냄새가 선생님한테서 난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늘 책을 많이 읽으시니까 자연히 그럴 것이라는 나름의 추론도 명수가 덧붙였다. 과연,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다. 갓 사온 책의 냄새를 킁킁 맡아보면, 선생님에게서 느껴지는 것과 똑같았다. 지금도 책을 살 때마다 선생님을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그때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열심히 글을 썼다. 상훈이와 명수와 교실에 남아서 받아쓰기 연습도 하고, 교과서를 베껴 써 보기도 했다. 잘 써야 잘 지을 수 있다는 선생님 말씀을 그대로 따라 했다. 각자가 쓴 글을 서로에게 읽어주면서 욕을 평가를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선생님 마음에 들기 위해 글을 썼는데,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그리고 나는, 글을 쓰는 것에 더욱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복병이 나타났다. 그것은 여름 방학이었다.


무려 오십여 일 동안 선생님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뜬금없는 몸살까지 날 지경이었다. 나는 또 잔머리를 굴렸다. 누나를 조르고 졸라서 교무실에 전화를 걸어 달라고 했다. 김명숙 선생님의 당직이 언제인지 알아야 했다. 결국 잘 익은 꿀밤 한 주먹과 함께 누나가 날짜를 알려주었다.


나는 그 날부터 원고지와 공책, 심지어 스케치북에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걸 가지고 선생님 당직 날짜에 교무실로 찾아갈 작정이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기꺼이 내 글을 봐 주실 거라 생각했다. 벌써부터 책 냄새가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그런 속내를 전혀 알 리 없는 엄마는, 그저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좋아하셨다. 엄마도 좋고, 나도 좋고. 내가 글을 쓰니까 모두가 행복하구나. 그러면 된 거지, 랄랄라.




드디어 그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서 머리도 감고, 좀체 쓰지 않던 비누로 얼굴도 씻었다. 양치질도 두 번이나 했고, 엄마 몰래 ‘로숑’도 조금 발랐다. 그동안 써둔 ‘원고’를 잘 챙겨서 학교로 갔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선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그래서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잠시 뒤면 선생님을 만날 거라는 기대로, 전에 없던 담력膽力마저 생겼다. 교무실 앞에 도착해서 숨을 고르고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선생님, 하고 부를 참이었다. 그런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난데없이 들렸다.


“어, 니도 왔나?”


그것은 다름 아닌 상훈이었다. 멀리서 선생님이 웃고 계셨다. 그리고 선생님 옆엔 명수가 브이자를 그리며 앉아 있었다. 으아아. 이것들은 평생 도움이 안 된다.




선생님은 우리가 써 온 글(모두가 똑같은 전략이었다. 결국 같은 수준이었던 거다)을 하나하나 읽어 보시고 일일이 고쳐 주셨다. 사실 글이라고 해 봤자 솔직히 담벼락 낙서 수준에 불과했을 것이다. 선생님이 우리의 얕은꾀를 모르셨을 리가 없다. 예상치 못한 찰거머리 두 마리가 달라붙긴 했어도, 나는 향기로운 책 냄새에 취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그저, 마냥, 한량없이 좋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선생님은 우리에게 짜장면과 군만두를 시켜 주셨다. 코를 벌름거리면서 만두를 욱여넣던 상훈이가 물었다. “선생님, 다음번 당직은 언제신가요?” 나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웃기만 하셨다. 내가 여쭤봤으면 분명히 답을 하셨을 것이다. 틀림없다. 왜냐하면, 히힛.


무엇보다도 그때의 운運이 좋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는 잘 모르지만 사 학년 때의 친구들이 학급 편성 없이 그대로 오 학년이 된 것이다. 담임 선생님도 물론 바뀌지 않았다. 그것을 알게 된 날, 상훈이와 명수와 나는 학교 놀이터에서 서로 끌어안고 깨춤을 추었다. 김 선생님과 다시 일 년을 함께 보내게 된 것이 그저 좋았다.


오 학년이 되자,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나를 백일장에 내보내셨다. 교내 대회는 물론이고 인근 초등학생들과 경쟁하는 학교 대항 글짓기 대회에도 자주 나갔다. 그리고 운이 좋았던지 대회에 나갈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상을 받아왔다. 선생님이 정말 좋아하셨다. 대견하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선생님 옆에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선생님, 전 선생님이 기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주먹 불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도 선생님을 자주 찾아뵈었다. 중고등학교 백일장에서 상을 탈 때면 편지로라도 꼭 알려 드렸고, 그때마다 선생님도 잊지 않고 답장을 주셨다. 잘했다는 칭찬과 함께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당부도 매번 잊지 않으셨다. 학기 중에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지만, 방학이 되면 선생님의 당직 일자를 확인한 다음, 학교로 찾아갔다. 물론 그때마다 찰거머리 두 마리도 역시 빠지지 않고 선생님께 달라붙어 있었다. 우리는 변함없이 짜장면과 군만두를 먹었다. 선생님은 그런 우리를 또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선생님이 글을 가르쳐주시던 날들이 기억난다.


교무실에서 글을 고쳐 주시던 날, 특활 반에서 노래를 부르던 날, 그리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선생님이 처음으로 내 이름을 물어보시던 날에 이르러 나의 기억이 머무른다. 그리고 거기에는 열한 살짜리 겁쟁이가 공책을 들고 머뭇거리며 서 있다. 짧은 글짓기와 삼행시도 제대로 구별 못하는 바보가 이제 막 입을 떼려고 한다.


“자, 다음. 그래, 너. 짧은 글짓기 한 것, 읽어볼래?”


 코 안에

 딱딱한 게 있다

 지금 뺄까?


그렇다. 그것이 바로, 내 인생에 처음으로 나의 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례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