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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Aug 06. 2021

메이 브릿의 노래 (1)

제이, 나를 도와줘


손님이 기다린다는 연락을 받고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다. 로비로 들어서자 프런트 매니저가 건너편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누군가가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여자였다. 일행으로 생각되는 한 남자와 네 명의 소녀들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곧 두어 걸음의 거리를 두고 그녀와 마주 섰다.


외국인 손님이라는 매니저의 전화가 없었다면 나는 그녀를 그저 평범한 한국인 가이드쯤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복스럽게 생긴 동그란 얼굴에 시원하게 드러난 이마, 뒤로 질끈 동여맨 검은 생머리, 까맣고 커다란 검은 눈동자. 만일 길에서 마주친다면 그녀를 외국인으로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혹시 교포? 인사를 하면서 확인해 볼 요량이었다. 악수를 청하려는데 그녀가 먼저 물었다.

“Are you really Jay? 당신이 정말 제이입니까?”

“나처럼 못생긴 사람이 또 있을 리 없으니 아마도 내가 제이일 것입니다. There can't be another ugly person like me in the world, so I'm probably Jay.”


실없는 농담으로 첫 만남의 어색함을 풀고 싶었다. 짧은 몇 마디였지만 그녀의 발음과 억양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우리말을 못 하는 한국인 2세인가?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그녀가 말을 이었다.

“Jay, please help me. 제이, 제발 나를 도와주세요.”


만나자마자 도와달라니, 이게 무슨 말이지? 농담을 건넨 것이 오히려 머쓱해졌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맞다. 어쩌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짧게 숨을 고르고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당신이 메이 브릿입니까? Are you maybe May Britt?”


그 말이 반가웠던지 그녀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입은 웃고 있는데 커다란 두 눈에는 금세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다. 그 눈물에 어떤 사연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뒤로 서 있는 일행들의 시선이 내 얼굴에 꽂혔다. 2019년 4월 17일, 내가 메이 브릿과 그녀의 가족을 처음 만난 날이었다.


메이 브릿 코드 May Britt Koed


Jay, I must meet you. You will be able to help me. I want you to make time for me. - from May Britt
제이, 나는 너를 꼭 만나야 한다. 너는 나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위해 시간을 내주기 바란다. 메이 브릿으로부터


예약 담당 직원이 메시지 노트를 내밀었을 때만 해도 나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부산에 도착하기 전, 손님들이 미리 인사 메일을 보내는 것은 내게 있어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었다. 아마도 먼저 다녀간 지인들의 적극적인 소개 내지는 기분 좋은 권유가 있었을 것이다. '미리 연락을 하면 제이가 더욱 친절하게 해 준다.' 한편으로 그것은, 우리 호텔을 다녀가는 거의 모든 손님들의 자발적인 추천 릴레이였다.


내가 경영하는 호텔은 외국인 전용이었다. 물론 내국인의 숙박이 원천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석 달 전부터는 서둘러야 겨우 예약을 할 수 있고, 또 일주일 이상의 장기 숙박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로비에서 한국인을 보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시설이 완벽하다거나 고급 서비스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객실 수도 고작해야 오십여 개에 불과한 그저 작은 호텔이었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은 우리 집(호텔)을 진심으로 아껴주었다. 여행객들의 유별나고 특별한 애정은, 오너 Owner인 내가 생각하기에도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간 다음에 선물을 챙겨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나 네덜란드, 핀란드, 독일 등 유럽에서 오는 손님들은 인사말이 담긴 메일을 미리 내게 보내는 것이 자기들의 여행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루틴처럼 되어 있었다. 대개가 이런 식이었다.


“Jay, this is my first trip to Busan. 제이, 나는 이번이 첫 번째 부산 여행이야."

"I've heard a lot about you. 너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

"I really want to meet you. 너를 꼭 만나고 싶어.”


메이 브릿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더구나 예약 내용대로라면 덴마크 여행객 여섯 명이 고작 하루 일정으로 부산을 다녀간다는 것인데, 그것은 서울이나 경주에 오래 머물면서 부산을 일일 코스로 대충 둘러보고 가는 여행임이 뻔했다. 그래서 그녀의 메시지도, 그녀가 온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대만에서 온 의제義弟 가족들과 식사를 하던 중에 매니저로부터 받은 전화 역시 그냥 외국인 손님이 기다린다는, 평범한 내용이었다. 그 외국인 손님이 바로 메이 브릿이었음을 알고 나서는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내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메이 브릿과 가족들이 나란히 앉았다. 그녀가 가족을 소개했다. 시원한 민머리가 인상적인 남편, 알프레도. 요리사라고 했다. 그리고 네 명의 딸, 이다, 마리, 로사, 노라. 알프레도와는 가볍게 악수를 했고 딸들과는 돌아가며 눈인사를 나누었다. 커피를 가져오고 문이 닫히자 메이 브릿이 의자를 테이블 앞으로 바짝 당겼다. 우선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나는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녀가 먼저 말을 했다. 그녀의 첫마디를 지금도 기억한다.


“제이, 나는 메이 브릿 코드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자마자 덴마크로 입양되었습니다. 나는 나를 찾고 싶습니다. 나를 꼭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Jay, I'm May Britt Koed. I was adopted to Denmark as soon as I was born in Korea. I want to find myself. Please help me. I beg you.”


순간, 어디선가 인간극장의 배경 음악이 들리는 것 같았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도 잠시 스쳤고, 성덕 바우만의 모습도 얼핏 떠올랐다. 하지만 감성에 젖거나 선입견 따위에 흔들려선 안될 일이었다. 억지로 냉정하려고 무척 애썼다.


“제이, 당신의 이야기를 나의 친구 윌리암에게서 들었습니다. 윌리암은 당신의 친절에 아직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내게도 그 친절을 나눠주시기를 바랍니다. I heard your story from my friend William. William still appreciates your kindness. I want you to share that kindness with me, too.”


윌리암?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생각이 났다. 덴마크 청년, 잘 생긴 윌리암. 몇 달 전 부산 여행 중에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를 당했었다. 낯선 나라에서 당한 뜻밖의 일로 난처해하는 그를 우선 입원시킨 다음, 우리 직원들과 내가 정성 들여 간호를 했다. 다행히 금방 회복이 된 윌리암은 무사히 덴마크로 돌아갔다. 메이 브릿은 그의 지인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나를 찾고 싶다’는 그녀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부모를 찾는 것이 아닌, 나를 찾는다라? 외국인들의 형식적인 표현인가? 일단은 더 들어봐야 했다. 커피잔을 들면서 눈을 맞추자,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이름은 김수영. 1976년 10월 22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출생 직후 알 수 없는 이유로 길에 버려졌고, 서울의 어느 고아원에 잠시 맡겨졌다가 1977년 봄에 홀트 재단을 통해 덴마크로 입양되었다. 인자하고 자상한 양부모님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으며 행복하게 자랐다. 이탈리아 요리사 남편을 만나 두 개의 식당을 운영하면서 보다시피 이렇게 예쁜 네 딸을 키우고 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나의 시작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한 다음, 2009년도에 가족과 함께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서울을 관광했으며 일정의 말미에 나의 강력한 요청으로 홀트 재단의 담당자들을 만났다. 혹시라도 알지 못했던 나와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의 입양 서류에 기록된 것이 그들과 내가 아는 정보의 전부였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날 무렵, 담당자가 한 말이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그가 말하기를, 그때까지 알고 있던 나의 이름 ‘김수영’과 나의 생일 ‘1976년 10월 22일’은 모두 고아원 의사들이 지어낸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름과 생년월일이 없는 채로 내가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나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이름과 생일 밖에 없다고 믿으며 살았는데, 갑자기 그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하니 나는 슬픔을 이길 수 없었다.


그때 담당자가 조용히 내게 메모를 전해주었다. 종이에는 MASAN AERIWON (마산 애리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담당자는 그것이 고아원의 이름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고아원이 대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내가 맡겨졌던 서울의 고아원 말고 또 다른 곳을 거치기라도 했다는 걸까? 더 알아보고 싶었지만 정해진 일정이 촉박하며 덴마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 또 시간이 지나고 식당에서 우연히 윌리암을 알게 되었다. 한국 여행의 경험이 있는 윌리암은 MASAN(마산)이라는 것이 한국의 도시이며, BUSAN(부산)이라는 곳과 가깝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제이 당신을 소개해 준 것이다. 당신이라면 무조건 나를 도와줄 거라고 윌리암이 자신했다.


제이, 나는 십 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아왔다. 간절하게 부탁한다. 어쩌면 나의 마지막 기회는 당신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를 찾고 싶다. 제발 나를 도와다오.




메이 브릿이 이야기를 마쳤을 때 나는 서둘러 휴지를 찾아야 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그녀가 울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무도 익숙한 장면들이 쉴 새 없이 머릿속을 스쳐가는 통에 나 역시 눈물을 참을 재간이 없었다.


우선은 마산 애리원부터 확인해야 했다. 메이 브릿의 설명으로도, 그리고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름으로도 그곳은 고아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도 운영을 하는지, 그리고 그녀의 지난날을 밝혀줄 어떤 단서라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서둘러 스마트폰을 검색했다. 마, 산, 애, 리, 원. 클릭. 아, 있다, 있어!

“메이 브릿, 마산 애리원이 있어요. 지금도 있어요!”

나도 모르게 우리말로 소리쳤다. 굳이 영어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말뜻을 알아차린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표시된 번호로 곧장 전화를 걸었다. 통화 모드를 스피커로 바꾸자 전화 연결음이 사무실에 가득 찼다. 딸깍, 누가 전화를 받는다.

“네, 애리원입니다.”

“선생님, 저는 아무개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애리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 아동 복지 시설입니다.”

“혹시 오래전에, 그러니까 칠팔십 년도에도 운영을 했습니까?”


잠시 메이 브릿을 바라보았다. 내 질문을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무엇과도 비할 바 없는 간절함이 그녀의 얼굴에 가득했다.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럼요. 그때는 고아원이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애리원의 기억을 가진 분이 계셔서요. 그런데 혹시 한 번 찾아뵈어도 실례가 안될까요?”

“전혀요. 낮에는 다른 선생님들도 많이 계시니까 언제든 편한 시간에 오세요.”     

"가, 감사합니다!"


됐다! 내가 주먹을 불끈 쥐고 허공에 흔들었다. 메이 브릿이 남편을 와락 끌어안는 것이 보였다. 내일 날이 밝으면 애리원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나는 그녀의 가족들과 일일이 하이 파이브를 나누며 기뻐했다. 그러나 그것이 또 다른 혼란의 시작임을 그때의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2부에 계속됩니다)



Image by Fuzz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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