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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Mar 31. 2021

오줌싸개의 추억

부르르


엄마, 진짜예요. 불장난을 한 게 아니고 그냥 돋보기로, 돋보기로 신문지 조금 태웠을 뿐이에요. 정말이에요. 그리고요, 돋보기도 현광이 글마가 가져온 거고, 신문지는 명수가 챙겨 온 거예요. 나는 그냥 글마들이 같이 놀자고, 하도 졸라대서 억지로 한 거예요. 그것도 제일 마지막 순서로요. 나는 진짜 코딱지만큼 쪼매난 귀퉁이 쪼금 태웠어요, 엄마. 정말이에요.


시끄럽다! 아이고, 동네 창피해서 어떻게 사노. 아홉 살이나 된 놈이 이불에 오줌을 싸다니. 내가 정말 창피해서 못 살겠다. 손 번쩍 안 드나?


시간은 이미 밤 열한 시를 지났다.


엄마는 요와 이불 홑청을 뜯느라 정신이 없고, 아버지는 선잠에서 깬 여동생을 달래고 있다. 나는 팬티마저 빼앗긴 알몸으로 방구석에 서서 아랫도리를 손으로 겨우 가린 채 엄마에게 눈물 어린 읍소를 하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세탁소 진복이 할배가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난다. 이놈들아, 불장난하면 자다가 오줌 싼다!




창규네 집 앞 공터엔 햇볕이 잘 들었다.


동네 조무래기들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내팽개치고 너나없이 그곳으로 모였다. 아이들은 공을 차거나, 땅따먹기를 하거나, 아니면 담벼락에 등허리를 착 붙이고 서서 그저 다른 애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이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쏟아지는 햇볕을 제멋대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


나와 몇몇은 창규네 대문 어귀에다 자리를 잡았다.


야 임마, 빨리 해라. 명수가 재촉했다.

가만히 쫌 있어라. 움직이면 초점이 안 맞는다 아이가.


나는 한쪽 눈을 감고 팔을 쭈욱 뻗어서 거리를 가늠한 다음, 신문지의 검은 부분을 겨누었다. 유리구슬처럼 빛나는 햇빛이 돋보기를 통과하면서 신문지 위로 환한 햇살 꽃을 피웠다. 팔과 손목을 살살 움직여가며 조금씩 거리를 줄여 나가자 동그라미가 점점 작아지더니 한 군데로 모였다. 그 점이 바늘귀만큼 되었을 때 마침내 바지직 소리를 내며 신문지에서 하얀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야, 탄다, 탄다.


좀 더 작게 해 봐 (사진 출처 : 스포티 블로그)


온 신경을 집중해서 쳐다보고 있으려니 조금은 어지러웠고, 신문지 타는 냄새가 코를 살살 간질였다. 돋보기가 종이를 태워가는 흔적은 그야말로 황홀한 신비였다. 별星 모양을 만들어보리라 큰소리친 탓에 모두가 넋을 잃고 돋보기의 그림자를 좇고 있는데, 그때 난데없이 큰 소리가 들렸다.


야 이놈들아, 불장난하면 자다가 오줌 싼다.


놀라서 돌아보니 세탁소 진복이 할배가 툭 튀어나온 배를 불룩거리며 우리를 지나치고 있었다.


웃기시네, 대머리 할배. 진복아, 대머리 깎아라. 군대 가면 건빵 준단다. 할배가 저만치 사라지자 현광이가 어설픈 노래를 부르며 키득거렸다. 명수가 거들었다. 내가 이때까지 돋보기 백 번 했지만 오줌 한 번도 안 쌌다. 저거 순 뻥이다.


그런데 왜? 백 번 틀렸다던 할배의 예언뻥이 하필이면 왜 지금?




니는 내일 아침에 보자!


한밤중의 난리를 겨우 수습한 엄마가 동생을 자리에 뉘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언제나 내 편이던 아버지도 그때만큼은 아무 말씀이 없었다. 나는 이불을 머리 위로 끄집어 올렸다. 자꾸만 훌쩍훌쩍 콧물이 나왔다.


아이고아이고 (사진 출처 : 故 김수열 선생님 1974)


반장 집 가서 소금 얻어 온나.


아침밥을 먹기도 전에 엄마가 내게 빈 바가지를 내밀었다. 소금은 왜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나는 조용히 대문을 열고 나갔다. 난 엄마의 속셈을 안다. 정말 소금이 필요한 것이었다면 나란히 이웃한 현광이네로 보냈어도 될 일이었다. 반장 집까지 가는 동안 나는, 행여 동네 사람들이 볼까 봐 바가지를 최대한 가리고 잰걸음을 걸었다.


심호흡을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누고? 하는 소리와 함께 곧 끼이익 대문이 열렸다. 반장 아줌마 대신 아저씨가 나왔다.


아저씨, 우리 엄마가 소금 좀 얻어 오라는데요.


잠시 나를 살피던 아저씨가 조용히 물었다. 제이야, 니 오줌 쌌나?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기다리 봐라. 집 안으로 들어갔던 아저씨가 다시 나왔다. 허리 뒤로 소금 바가지가 보였다. 다행히 순조롭게 소금을 얻어 가는구나 싶어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아저씨가 웃으며 물었다.


제이야, 우짜다가 오줌을 쌌노? 이불이랑 요랑 다 베맀나? 야단 많이 맞았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어야 했다. 아니면 그냥, 소금이 떨어져서 그래서 얻으러 온 것이라고 해야 했다. 그러나 아저씨의 친절한 말투에 넘어간 나는, 나도 모르게 그만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며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자 아저씨가 시익 웃더니 갑자기 큰 소리를 냈다.


동네 사람들아, 연산 국민학교 2학년 임 제이 어린이가 어제 오줌을 쌌답니데이. 아이고 창피하요. 나이를 아홉 살이나 묵었는데 오줌을 싸서 지금 우리 집에 소금 얻으러 왔습니데이. 오줌싸개 구경하러 나오세요들. 빨리 나와 보이소.


순간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나는 후다닥 돌아서서 집을 향해 다시금 정신없이 내달렸다. 여기저기서 이웃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내다볼 것만 같았다. 반장 아저씨의 웃음소리가 골목 끝까지 나를 따라왔다. 그리고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빈 바가지로 그냥 왔다고 또 한 번 혼이 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날 오후부터 며칠 동안은 창규네 공터에 나가지 않았다. 명수와 현광이가 같이 놀자고 졸랐지만 그냥 집에 있었다. 다행히 내가 오줌을 쌌다는 소문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해 가을, 우리 가족이 그 동네를 떠나던 날, 이사를 도와주러 반장 집 아저씨도 왔다. 나는 애써 아저씨를 외면했다.


아버지, 엄마가 사람들에게 인사를 모두 마치고 짐을 실은 트럭이 출발하려고 할 때 반장 아저씨가 나를 보고 슬쩍 던졌다. 오줌싸개야, 잘 가레이.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아저씨가 그 말을 받았다. 아하, 점마가 그 오줌싸갭니꺼? 갑자기 귀가 먹먹해졌다. 그리고 돋보기로 신문지를 태울 때처럼 눈 앞이 핑핑 돌기 시작했다.


옛다, 소금이다 (사진 출처 : 故 김수열 선생님 1974)


일요일 이른 아침, 벨 소리에 현관문을 열었더니 앞집 사는 여섯 살짜리 꼬마 소희가 서 있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이 필시 무슨 일이 있었던 눈치다. 아직도 서러움이 남았는지 물코를 힝힝 훌쩍이면서 그런다.


아저씨, 힝 우리 엄마가요 힝, 소금 쫌 주세요 하래요, 힝.


스을쩍 넘겨다보니 맞은편 문 틈새로 소희 아빠가 웃으며 눈인사를 한다. 평소에도 인사성 밝은 앞집 젊은 부부가 특이하게도 우리 어릴 때의 방식으로 아이를 훈육하나 보다 싶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소희, 오줌 쌌구나.


소희가 대답 대신 고개를 크게 끄덕거린다. 그 바람에 여태 맺혔던 눈물이 뺨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린다. 서둘러 주방으로 가서 굵은소금을 챙겼다. 들고 온 작은 컵에 소금을 붓고는 소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돌아서 가는 소희를 보니 그 옛날 반장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러나 나는 아저씨처럼 큰 소리로 소희를 놀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것은 아홉 살 오줌싸개 출신이 후배에게 반드시 지켜야 하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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