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불라불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우 Jun 20. 2022

슬픔의 기록 (1)

누이의 죽음


   사촌 누이가 세상을 떠났다.


   사인死因은 코로나 백신 쇼크라고 했다. 비보悲報를 전하는 동생 정택이의 목소리는 예상외로 차분했지만 목에 턱턱 걸리는 울먹임에 담긴 슬픔, 친남매지간이 아닌 제삼자가 함부로 쉽게 가늠할 수 있는 것 아니었다. 하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기 때문에 어떤 애도사哀悼辭가 적합할지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런 잠시 동안의 허식虛式 준비를 동생이 서둘러 막다.

   “차라리 잘 죽었습니다. 그런 꼴로 더 살아봤자 정희 누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한동안 잊고 지냈던 누이의 ‘그런 꼴’이 더욱 선명한 모습으로 떠올랐다.


   누이는 결핵성 척추 후만증, 속칭 ‘꼽추’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장애라는 말은 고사하고 병든 몸이라는 욕설이 오히려 일상적이던 1970년대였다. 변변찮은 두어 마지기 밭농사가 전부였던 가난한 시골 가정에서, 장애를 가진 누이가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으며 ‘사람 구실’을 하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큰아버지의 푸념과 하소연 끝에, 아버지는 겨우 열네 살에 불과했던 누이를 부산으로 불렀다. 변두리 공단工團에 있는 작은 제조 공장에 어렵사리 자리를 만들어 취업을 시켰다. 첫 달 월급의 반을 작업반장에게 챙겨준다는 조건이 있었음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알게 된 사실이다.


   자기보다 한 뼘 이상 키가 큰 옷가방을 끌고 누이가 우리 집에 오던 날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처음 마주하는 누이의 기괴한 행색은 바로 그 몇 해전 개봉한, 영화 ‘ET’에 나오는 외계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색하기도 했고 무섭다는 생각마저 조금 들었다. 저녁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한 번도 누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한잠도 잘 수 없었다. 거북이처럼 튀어나온 누이의 등에서 들려오는 삐걱삐걱 소리 때문이었다. 서로 어긋난 등뼈끼리 부딪혀서 그러는 거라며 큰아버지는 다음날 아침 밥상에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중학교 일 학년 나이에 불과한 어린애가 어른도 버티기 힘든 공장 일을 어떻게 하겠냐며 걱정을 했지만 엄마의 그러한 염려와는 달리 누이는 직장 생활을 곧잘 했다. 어쩌다 한 번씩 우리 집을 다녀갈 때면, 고작 한 살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맛동산이며 새우깡이며 그 잘난 과자 몇 봉지들을 내 눈앞에 들이밀면서, 잊지 않고 누나 행세를 하려고 했다. 속으로 아니꼬울 때도 있었지만 고소한 과자의 유혹을 끝내 뿌리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누이는 공장에서 만난, 같은 장애를 가진 남자와 결혼할 거라는 소식을 전해왔다. 부모님은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또 몇 년 뒤에는 그새 금金 세공 기술을 익힌 남편을 따라 대구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그러므로 잘 살고 있다는, 아니 잘 살고 있을 것이라는 가늠이 내가 누이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런데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난데없이 누이의 부고訃告를 전해 듣게 된 것이었다.


   “성격 차이가 너무 심해서 결혼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 갈라섰어요. 그 뒤로 누나는 우울증에다 결국 정신 착란 증세까지 보이더군요. 어렵게 혼자 살면서 약물로 근근이 버텨왔나 봐요. 그러다 코로나 백신 주사 맞고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서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데 사흘 만에 그냥……”


   나는 정택이의 이야기를 말없이 들었다. 그것은 설명이라기보다 차라리 하소연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정희 누나의 죽음을 두고 정택이와 어른들은 정부에 대해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차라리 잘 죽었다’는 ‘막말’, 그 속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장례는 서둘러 마쳤고, 딱히 주위에 알릴 만한 일도 아니라서 우리 부모님께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정을 알지 못한 채 함부로 나무라거나 대책 없이 질책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 돌봐줄 사람도 없으니 묘墓 역시 쓰지 않고 그냥 뒷산에 뿌릴 거라며, 고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내게 연락을 한 것이라고 했다.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잊지 않겠다는 뜻보다 전해 들었다는 의미로 다이어리에다 누이의 기일忌日을 표시한 다음, 짧게 기도를 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추모의 전부였다. 은 등 때문에 한 번도 반듯하게 누워잘 수 없었던, 그래서 그것만이 유일한 소원이라던 누이의 그 바람이 저 곳에서는 부디 이뤄지길, 꼭 이뤄지길 그저 그렇게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어느덧 2월이 시작되고 있었다. 혈소판 기증을 받은 블루애틱 님 매형의 건강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던 즈음이었다.

   저녁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현관으로 막 들어서려던 때였다.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명애였다. 평생지기平生知己 명수의 여동생 명애는 내 친동생이나 다름없었다. 명애가 이 시간에 웬일일까? 평소처럼 신랑이랑 맛있는 거 먹고 있다며 자랑이라도 하려는 걸까?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버튼을 눌렀다.

   “응, 명애야.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보고 싶었냐는 농담을 이을 참이었는데 뜻밖에도 커헉 하는 명애의 울음소리가 튀어나왔다. 명애는 분명 울고 있었다.

   “진우 오빠.”

   “명애야, 왜 그래, 왜 울어? 무슨 일이야, 응?”

   “진우 오빠, 우리 오빠가, 우리 오빠가 지금 병원에……”

   “뭐? 명수가? 병원에는 왜? 어제도 나랑 통화했는데?”

   “오빠가, 명수 오빠가 아까 저녁에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뭐라고? 교통사고? 어디서, 어쩌다가? 얼마나 다쳤어? 그런데 명애야, 왜 네가 전화해? 명수는?”

   명애는 대답 대신 코 울음을 두어 번 삼키더니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오빠가… 지금 의식이 없어요. 오빠, 어떡해요, 진우 오빠.”

   의식이 없다니, 명수가, 명수가 의식이 없다니. 눈앞이 핑핑 돌기 시작했다. 사촌 누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일련一連의 비극이 제대로 나를 괴롭힐 것임을, 적어도 그 순간에는 알지 못했다.


[계속]



* Image by RJ001rock from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도움이 시작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