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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Jun 22. 2022

슬픔의 기록 (3)

친구의 죽음


   “진우 오빠……”

   “아이고, 진우야.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고.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고……”

   몇 걸음 다가와 얼굴을 확인한 어머니는 나를 끌어안고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깊이 팬 주름 사이로 어머니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이 퉁퉁 부은 명애도 내 손을 잡고 어깨를 들썩였다. 입술을 깨물어 가며 참아보려 했지만 눈앞은 금방 흐려졌다. 그 모습을 행여 들킬까 봐 나는 어머니와 명애를 우선 다독거렸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명애야, 울지 마라. 별일 없을 거야.”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란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어머니를 부축해 출입구 옆 간이 의자에 앉도록 했다. 그 사이, 명애가 종이컵에 물을 받아왔다. 어머니는 손바닥으로 당신의 가슴팍을 치며 다시 소리 내 울었다.

   “우리 명수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병원 직원들 몇 명이 앞을 지나치며 우리를 곁눈질로 힐끔거렸다. 어머니의 팔을 잡고 있던 명애가 저 쪽을 향해 손짓을 했다. 돌아보았다. 거기에 막내 명옥이가 서 있었다.




   코로나 오미크론 확산 방지를 위한 거리두기가 한참인 때였다. 저녁 아홉 시가 되자 명수는 직원들을 퇴근시키고 혼자서 마감을 한 다음, 가게 문을 닫고 나섰을 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지하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명수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창 밖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을 것이다. 마침 봄비까지 촉촉이 내렸으니 애창곡을 들으며 돌아갈 생각에 콧노래부터 흥얼거렸을 것이다.

   가게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신호등이 있는 큰길과 횡단보도만 있는 작은 길을 건너야 한다. 성격이 차분한 명수는 보행 신호가 표시되어도 단박에 건너는 법이 없다. 분명 녹색 등을 확인한 다음, 천천히 발걸음을 뗐을 것이다. 그날도, 그 순간도 그랬을 것이다.

   만일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만일 우산이 없었다면 신호를 무시한 채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차를 과연 피할 수 있었을까?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우산이 없었다면, 정지 신호가 시뻘겋게 노려보고 있음에도 미친 듯 달려오는 무면허 만취 운전자를 피할 수 있었을까?




   “오빠, 중환자실은 지금 면회가 안돼요. 정해진 시간에 직계 가족만…”

   명옥이가 말끝을 흐렸다. 미칠 노릇이었다. 식식거리는 내게 명옥이가 조용히 휴대폰을 내밀었다. 받아 들었다. 그 속에 명수의 지금 모습이 담겨 있었다. 출동한 구급대원이 찍어 두라고 한 것이란다. 붕대로 칭칭 감은 얼굴 위에 인공호흡기가 달렸고, 시뻘건 혈액과 주사에 연결된 줄들이 치렁치렁 복잡하게 늘어졌다. 또 다른 몇 장의 사진 속에 담긴 끔찍한 모습은 재차 묘사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내 친구 명수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무조건 내 눈으로 봐야 했다. 오른쪽 귀 뒤에 까만 사마귀 점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출입을 통제하는 직원에게 다가가 사정을 했다.

   “친굽니다. 가족보다 더 가까운 친굽니다. 먼발치에서라도 좋으니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없을까요?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네?”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코로나 시국이어서 더욱 그렇다는 설명이었다. 끝내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고 했다.


   “의사는 뭐라고 해? 왜 의식이 없다고 하는 거야? 언제쯤 회복이 될 거래?”

   나는 애먼 명옥이를 다그쳤다.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어낸 명옥이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직은 뭐라고 단정 지을 수 없대요. 그런데 어쩌면 뇌사腦死의 가능성도……”

   명옥이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서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홉 시를 지날 무렵에 병철이, 현광이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첫 기차를 탔다고 했다. 어머니와 명애, 명옥이는 병철이와 현광이 손을 잡고 또 울었다.

   내가 들은 정황을 친구들에게 말해 주었다. 병철이의 손에서 담배가 떨어지지 않았다. 답답한 것은 서로가 마찬가지였다. 면회가 안되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 같아선 몇 날 며칠이라도 좋으니 병원에서 기다릴 심산이었다. 하지만 하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종강과 취업을 불과 며칠 앞두고 있었다. 문 앞에 다다른 그들을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선은 다시 부산으로 와야 했다. 나는 잘 알고 지내는 교통 전문 변호사와 보험 대리점을 운영하는 선배의 연락처를 명애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별 일은 없을 거다만, 혹시나……”

   그렇게 말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 부산역에 도착할 때까지 기차 안에서 우리 셋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간간이 내뱉는 한숨만이 각자의 속내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저녁 수업이 끝나면 심야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 명수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날 오후에 기차 편으로 부산으로 돌아오는 날들이 이어졌다. 결국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소식을 들은 부모님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내가 그러하듯, 명수 역시 우리 부모님에게는 또 다른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주말 동안에는 아예 작정하고 서울에 머물렀다. 내가 운영을 돕고 있는 호텔의 형에게는 양해를 구했다. 형도 이전에 명수를 두어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호텔은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알아서 해 볼게. 어쨌거나 좋은 소식이 있어야 할 텐데, 그지?"

   고맙기도 했고, 한 편으론 미안하기도 했다. 격려를 해 주는 형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얼핏 들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명수의 회복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병원 건물 입구에서 기다렸다. 행여 들려올지 모르는 희소식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창문을 사이에 두긴 했지만 중환자실 복도에서 조금 더 가까이 명수를 볼 수 있는 때도 가끔 있었다. 면회 신청서에 ‘가족’이라 썼음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창문에 바짝 달라붙어 속으로 외쳤다.

   “임마, 명수야. 나야, 진우. 너 왜 거기 누워있어? 장난 그만 치고 빨리 일어나, 임마. 어머니랑 우리 모두, 다들 이렇게 기다리잖니? 빨리 일어나, 이 녀석아!”

   그러나 내가, 우리가 기대하는 희소식은 좀처럼 전해지지 않았다. 매일 눈에 띄게 수척해지는 어머니의 건강이 오히려 염려될 뿐이었다. 주말 오후에 내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음식을 챙겨 올 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한술 겨우 뜨다 말았다. 어머니는 아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윤성 애미야, 진우 좀 잘 챙겨줘라. 옆에 있을 때 잘 챙겨 먹여라, 알겠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사고가 발생한 날로부터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늘 네 시간 이상 걸리던 심야 버스 대신 그날은 운 좋게 기차를 타게 되었다.

   자리에 앉으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명애였다. 심장이 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응, 명애야. 나 지금 기차 탔어. 새벽 세 시 전에 병원에 도착할 것 같아. 근데 무슨 일이야?”

   “진우 오빠, 명수 오빠가, 명수 오빠가……”

   명애의 울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헤아리기도 전에 명애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비는 창 밖으로 내리는데 내 눈앞이 덩달아 흐려지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계속]



* Image by Rosalia Ricott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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