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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Jun 23. 2022

슬픔의 기록 (4)

또 하나의 죽음


   “당신들이, 당신들이 그때 허락해 줬으면, 그때 단 한 번만이라도 면회를 허락해줬다면, 내가, 내가, 내 친구의 손이라도 잡아볼 수 있었을 거 아냐? 그런데 영안실이라니, 명수가 왜, 내 친구가 왜 저기 누워 있어야 하는 건데? 의사 어딨어, 중환자실 담당 의사 나와! 내가 당신들을 가만 둘 줄 알아? 내 친구 빨리 살려내. 죽어가는 사람 살려내라고 당신들이 그 비싼 돈 받아 처먹는 거잖아!”

   막말과 함께 욕설이 튀어나왔다. 원망은 곧 눈물 섞인 악다구니로 바뀌었고, 헛헛한 절규는 텅 빈 복도를 가득 채웠다. 명애와 명옥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꼈다.

   “안돼, 이렇게는 안돼. 이렇게는 못 보내. 명수야, 강명수! 빨리 안 일어나고 거기서 뭐해? 이 자식아, 빨리 일어나. 부산 가야지, 우리 동네 가야지!”

   명수는 차가운 철 침대 위에서 얼굴만 겨우 드러낸 채 흰 천을 덮고 누워 있었다. 창을 두들겼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두꺼운 문이 텅텅 소리를 냈다.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영안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직원이 내 팔을 틀어잡으며 제지했다. 부탁과 애원의 눈빛을 보냈으나 통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코와 눈물이 범벅이 되어 턱 아래로 흘러내렸다. 

   ‘명수야, 너 이렇게 가면 안 된다. 명수야! 인사라도 하고 가야지. 내일 보자 하면서 헤어지던 그때처럼, 또 만나자는 인사는 하고 가야지.’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라는 듯, 흰 옷을 입은 남자 간호사는 시계를 흘끔거리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흰 천의 끝자락을 잡았다. 명수의 얼굴이 곧 그 아래로 덮였다. 간호사가 침대의 손잡이를 잡았다. 콜드 박스 안으로 밀어 넣을 모양이었다. 그 모습만큼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터엉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심장에 대못이 박히는 것처럼 그 소리가, 아팠다. 


   명수는 그렇게 떠났다. 


   보름 간의 사투死鬪 중에 단 한 번의 호전의 기미도 보이지 않은 채 그날 저녁 갑작스러운 심정지心停止가 왔다고 했다. 허망했다. 나는 숨이 붙어있던 친구의 손을 잡아보지 못했다. 평생을 두고 아쉬워할 일이 될 것이었다.




   슬픔은 컸지만 장례만큼은 잘 치러서 친구의 소풍 길을 제대로 배웅하고 싶었다. 코로나가 극도로 기승을 부릴 때보다는 장례 진행에 대한 제약이 완화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충격을 받은 명수 어머니는 명옥이가 자택에서 보살피기로 했다. 병철이, 현광이, 찬규, 우리 넷이 상주喪主 역할을 맡았다. 연락할 수 있는 모든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고, 직접 조문 오지 않으면 단박에 의절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소식을 듣고 친구들이 앞다투어 부산에서 서울까지 한달음에 왔다. 한 명이 올 때마다 한 번씩 울었고, 두 명이 올 때마다 네 번씩 통곡을 했다. 

   명애와 명옥이의 남편도 우리와 함께 조문객을 맞았다. 대부분 우리의 지인들이었고, 명수가 운영하던 식당의 직원들, 명수가 서울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차례로 다녀갔다.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명수의 친척은 한 명도 없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전쟁고아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힘든 세월을 남편도 없이 어머니 혼자 얼마나 힘들게 버텼을지 지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속 저 깊은 곳이 저렸다. 

   교통사고 가해자 측의 변호사가 합의를 요청하기 위해 조문을 빙자해서 찾아왔다. 죽여 버리겠다고, 감히 어디에다 얼굴을 들이미냐고 병철이가 난리를 쳤다. 겨우 진정을 시켰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것은 유족들이 판단하고 결정할 일이었다.


   입관을 위한 염습殮襲 절차를 진행할 때 그제야 비로소 명수의 손을 잡아볼 수 있었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렸지만 그래도 내 친구의 손이었다. 함께 어울려 놀며 수백 번, 수천번도 더 잡았을, 내 어깨에 수만 번은 올려졌을 내 친구, 명수의 손이었다. 


    사흘 간의 장례가 끝나고 경기도 승화원에서 화장火葬을 마쳤다. 고운 가루가 된 명수는 하얀 유골함에 담겼다. 병철이가 영정을 들고, 내가 명수를 안았다. 아직은 온기가 남아 있었다. 참으려는데, 참아야 했는데 또 눈물이 흘렀다. 

   명수는 어머니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납골당이나 묘墓 없이 여생이 다할 때까지 어머니가 당신의 곁에 두겠노라, 나중에 당신께서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때 함께 묻거나 안치해 달라는 당부가 있었다며 명애와 명옥이는 어머니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다. 

   영정과 함께 명수를 받아 든 어머니는 또다시 통곡을 했다. 눈물은 뚝뚝 떨어지는데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참으로 깊은 슬픔이었다.




   “명수 녀석, 야구를 정말 좋아했는데.”

   가족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병철이가 뜬금없이 피식했다.

   “번개 야구단도 만들고, 그지?”

   현광이가 거들었다. 그 말을 들으니 어린 시절, 그때의 일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번개야구단을 시작으로 저마다 명수와의 추억을 앞다투어 꺼냈다. 모든 기억들이 하나같이 어제의 일 같았다. 희한했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엔 눈물이 맺혔다. 친구 하나가 떠나버린 현실을 우리는 새삼 깨달아야 했다. 

   한참 웃던 중에 갑자기 현광이가 병철이의 말을 잘랐다.

   “병철아, 저 앞에다 차 잠시 세워봐라.”

   차가 멈추었다. 이유를 묻는 병철이에게 현광이가 창밖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 이제 눈치 보지 말고 여기서 속 시원하게 다 울어버리고 가자. 너거도 명수 보고 싶제?” 

    현광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병철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어깨를 들썩이다가 결국엔 꺼이꺼이 소리를 내가며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명수, 내 친구 명수야. 부디 잘 가라. 우리, 꼭 다시 만나자.


1979년 초등학교 2학년 가을 소풍. 왼쪽부터 병철, 명수, 나, 현광, 찬규


   병철이와 현광이는 부산으로 내려가고 나는 분당에서 며칠 동안 쉬기로 했다. 아내는 집이 아닌 병원에 이삼일 입원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전했다. 몸 고생, 마음 고생을 많이 했고, 다음 강의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있으니 방해받지 말고 푹 쉬면서 이번 기회에 완전히 회복하라는 것이었다.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와 함께 집 근처의 병원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사흘 동안 입원하기로 했다. 병원에서 제공한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것을 확인한 아내는, 내 휴대폰을 자기가 가져가겠다고 했다. 이런저런 연락도 아예 받지 말고, 말 그대로 푹 쉬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급한 연락이 아니라면 웬만한 것은 아내가 적당히 둘러대겠다고 했다. 역시 아내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다. 

   반투명 색의 수액이 주사 바늘을 통해 내 몸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취제도 아닌데 나는 수면 내시경을 받을 때처럼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숙면熟眠이었다. 




   내가 눈을 뜬 것은 아침 열 시를 한참 지난 때였다. 꼬박 열다섯 시간 이상 잠을 잔 것이었다. 아내는 침대 곁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었다. 인사라도 하며 말을 건네려는데 아내의 표정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내가 전화기를 내밀었다.

   “호텔에서 계속 전화가 오네요.” 

   호텔? 얼른 통화 기록을 살폈다. 준현 매니저의 번호가 열 번이 넘었고, 호텔의 대표 번호로도 그만큼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무슨 일이지?

   “받기도, 안 받기도 그래서, 급한 일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서둘러 준현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신호음이 들린다 싶더니 바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사장님.”

   “준현 매니저, 무슨 일이에요? 내가 친구 장례 치르고 나서 피로가 쌓여서…”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라니, 무슨?”

   “박 사장님이 말입니다.”

   박 사장이라면 내가 부산에서 운영을 돕고 있는 호텔의 소유주, 상현 형을 말하는 것이었다.

   “형이? 상현 형이 왜요?”

   “박 사장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계속]



* Image by kash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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