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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Jul 25. 2022

기분 좋은 내로남불

복숭아는 거들뿐


   일요일 저녁, 화영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친정에 다녀오는 길인데 내게 줄 것이 있다며 자기 집으로 당장 오라는 것이었다. 한 살 터울인 화영이 남편과도 이미 오래전부터 호형호제를 하는 사이여서 아홉 시를 조금 넘은 시각이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나설 수 있었다. 부모님 집에서 화영이네까지는 아흔 걸음 남짓. 담장을 나란히 하고 살던 다섯 살 꼬맹이 시절보다는 약간 멀어졌으나 마음만 먹으면 재채기 소리 정도는 수월하게 들릴 거라는 농담을 며칠 전에 하기도 했다. 


   현관에 들어섰을 때, 가족들의 인사와 함께 내 눈에 단박 들어온 것은 소반小盤 위로 예쁘게 올려진 복숭아였다. 색이 고운 것이 꽤나 잘 익은 듯했다. 양산梁山에서 혼자 계신 화영이 어머니가 직접 농사지은 것인데 우리 부모님에게 전해드리라 신신당부를 하셨단다. 그저 고마웠다. 

   감사를 드릴 겸 화영이를 통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유통 기한이 여전한 몇몇 추억들과 함께 그 이야기를 또 덧붙이신다.

   “인연이 되었으면 진우 니가 내 사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하하하.”


   맞는 말이다. 이웃사촌, 초등학교 동창, 여자 사람 친구, 어떤 말을 갖다 붙이더라도 상관없을 우리의 인연은 어느새 오십 년이 되어가고 있다. 삶의 궤적이 달랐기에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지만, 국화꽃 옆에 서도 좋을 나이가 되어 다시 우정을 나눌 수 있음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화영이의 남편은 항만공사에 다니고 있고, 큰딸은 경찰 채용 시험에 합격, 지금 충주에서 교육을 받는 중이다. 아들에게는 발달 장애가 있는데 그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화영이가 몸 고생, 마음고생, 참 많이도 했었다. 모두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던 그 아들 역시 정말 다행스럽게도 장애인 특별 채용 과정을 통해 모某 복지재단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그라모 차라리 진우한테 시집가지 뭐할라꼬 내한테 왔노?”

   “그 이유를 모르나? 당신이 진우보다 훨씬 더 잘생겼잖아!”

   몇 번을 되풀이해도 싫증 나지 않을 부부의 우스개에 나는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비록 가진 것은 넉넉하지 않아도 작은 것 하나에 감사함을 잊지 않고 그마저도 이웃과 나누며 살려는 이 부부가 언제나 행복하기를 늘 기도한다. 


   복숭아가 다시 한번 채워지고 우연히 해외여행이 화제가 되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부부 동반으로 여행을 가자는 제안도 나왔다. 나는 여기가 좋은데, 당신은 어디 가고 싶노? 진우야 니는 어디? 머릿속으로는 벌써 지구 두 바퀴는 돌았다 싶을 즈음에 화영이가 무심코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혹시라도 잊어먹을까 봐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를 서둘렀다. 그것은 올해, 아니 여태까지 들었던 내로남불 중에서 가장 기분 좋은 내로남불이었다.


내 내가 가고 싶은 도시는
로 로마하고 파리,
남 남편이 가고 싶은 나라는
불 불가리아랑 네덜란드



* Image by Margo Lip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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