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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Oct 12. 2022

환생 일기 (1)

태풍이 상륙하던 날


   2022년 9월 5일 수요일 오후 4시 47분, 나는 죽었다.


   사인死因은 교통사고였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온 화물차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나를 들이받은 것이었다. 충돌의 순간, 고통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즉사卽死했기 때문에 통증을 느낄 만한, 찰나의 겨를조차 없었다. 의사는 ‘개방성 골절과 다발적 장기 손상 및 뇌진탕으로 인한 현장 사망’이라고 검시檢屍 기록을 작성할 것이다. 그런 끔찍한 신체적 손상을 감안한다면 어떠한 아픔도 없이 단박에 절명絶命했다는 것이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트럭에 받혀 죽었다.


   생生의 마지막을 경험한 사람들은 사고의 순간에 자신의 일생이 영화의 장면들처럼 스쳐간다고 했는데 나의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저 사고가 일어나던 날, 오직 그날의 일들만이 시간의 순서대로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었다.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강력한 태풍이 북상北上중이라고 했다. 이동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인지 며칠 동안 비슷한 내용의 뉴스가 계속 반복되었다. 먼바다에서 근해近海로, 근해에서 제주 앞바다로, 그러다가 그날 아침이 되자, 태풍이 드디어 육지에 상륙한다는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다. 기시감 가득한 자연재해 장면들 위로 아나운서의 무미건조한 멘트가 차갑게 입혀졌다.


   오후에 들이닥칠지도 모를 폭우가 미리부터 염려되었기 때문에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직원들을 평소보다 일찍 퇴근시켰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나도 사무실을 나섰다. 역시나 저 멀리서 검은 구름이 잔뜩 성을 내고 있었다. 다행히도 비는 아직이었다.

   얼마 전 퍼부은 기록적인 비로 인해 강남 3구가 완전히 침수되고 값비싼 외제차들조차 속수무책 물에 잠기는 영상을 아내와 함께 보았다. 그 때문인지 며칠 전부터 아내는, 매일 아침 주차장까지 따라 내려와 내가 차를 두고 출근하는지를 직접 확인했다. 올해로 결혼 이십 주년이 되는 아내를 굳이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당신 말이 옳다며, 그저 마음 편하게 다니기에는 대중교통만 한 것이 없다며 아내를 향해 억지웃음에다 손가락으로 브이자까지 만들어 보였다.


   오후의 인도人道는 퇴근을 서두르는 사람들로 붐볐다. 지하철 역을 지나 버스 정류장을 향해 잰걸음을 했다. 아내가 알면, 버스가 승용차와 다를 바가 무엇이냐고 화를 낼 것이 뻔했다. 지하철로 가는 편이 훨씬 빠르고 당연히 안전하겠지만 시간이 더 걸리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버스를 타는 것은 어릴 때부터의 내 몇 안 되는 취미였다. 당연히 아내에게는 지하철을 타고 왔다고 거짓말을 할 작정이었다.


   정확한 시각에 버스가 도착했다. 다행히 빈자리가 있었다. 등받이에 기대어 자세를 편히 하고서 이어폰을 꽂았다.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하늘은 아까보다 더 낮게 내려앉았다. 창 밖으로 지나가는 회색 풍경을 멍하니 보고 있으려니 연거푸 하품이 나왔고, 결국엔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


   “지금은 라디오 시대!”


   그 소리가 잠을 깨운 것은 아니었다. 이어폰에서 들려오던 노래가 끝났고,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때마침 부르르 떨었다. 그래서 눈을 떴다. 승객이 별로 없다 싶었던 버스 기사가 라디오를 틀어 둔 모양이었다. 특유의 높은 톤으로 인사를 던진 개그맨 진행자는 태풍 소식부터 전했다.

   주위를 슬쩍 둘러본 다음, 어서 받으라고 여전히 재촉 중인 전화기의 발신 번호부터 확인했다. 아내였다. 행여나 라디오 소리가 전해질까 봐 손바닥을 동그랗게 말아 입술 위를 덮었다. 아내가 먼저 말했다.

   “지금 어디예요?”

   “집으로 가는 길.”

   “그래요? 잘 됐다. 그럼 수내역 출구에 있는 펫 샵에 들러서 루이 사료 좀 사다 줄래요?”

   반려견 루이의 먹거리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사료값도 만만찮다.

   “루이 사료? 벌써 다 먹었어? 지난번 그거랑 똑같은 것 사면되지? 응, 알았어.”

   전화를 끊고 몸을 세워 창 밖을 내다보았다. 내려야 할 곳이 마침, 다음 정류장이었다. 서둘러 하차벨을 눌렀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버스는 곧 떠나 버렸다. 겨우 네 시가 지났을 뿐인데 주위는 꽤나 어두워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한바탕 쏟아질 분위기였다.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면 마주 오는 상대의 얼굴조차 뚜렷하게 분간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걸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했던가?


   지하철 역은 버스 정류장에서 오백 미터 가량 떨어져 있다. 수내역 입구의 펫 샵에 가려면 큰 사거리를 지나서 조금만 걸으면 된다.

   파크 타운 사거리 횡단보도에 섰다. 길 건너편의 여자는 벌써 우산을 펴 들었다.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노란색 우산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제대로 비가 내리기 전에 빨리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평소 습관처럼 하나둘을 센 다음 천천히 길에 내려섰다. 횡단보도의 흰 선을 피아노 건반처럼 밟아가며 셋넷을 마저 헤아릴 작정이었다. 셋, 넷. 넷에 맞춰 디딘 발이 그만 선 밖으로 나가버렸다. 에이, 바보같이… 스스로에게 핀잔을 주려던 그때였다.


   빠아아아아앙.


   갑자기 고막을 찢는 듯한 경적과 함께 끼이이이이익, 아스팔트를 통째로 쥐어뜯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쪽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커다란,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정말 커다란 헤드라이트가 내 얼굴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어디선가 고무 타는 냄새도 얼핏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눈부시게 밝은 헤드라이트가 얼굴에 닿는가 싶더니 그것이 붙어 있는 차가운 쇳덩어리는 곧 내 몸을 거세게 밀쳤다. 나는 그대로 공중으로 튕겨 올랐고, 허공에서 잠시 허우적대다가 이내 차가운 바닥에 인정사정없이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수십 바퀴를 더 구르다가 커다란 돌에 부딪힌 다음에야 겨우 멈추었다. 차도車道의 경계석인 듯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아까 말했듯이 차라리 즉사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뼈는 완전히 부러진 채로 살갗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왔고, 내장은 성한 것 하나 없이 모두 터져버렸다. 그리고 머리뼈 속에 담겼던 뇌腦에 꿉꿉한 바깥공기가 직접 닿았다.

   짙은 회색빛 캔버스에는 저 멀리 노란 점 하나가 도드라지게 찍혔다. 그 위로 누가 쏟았는지 모를 빨간 물감이 서서히 타고 내리면서 그와 동시에 어둠도 천천히 몰려왔다. 영화가 상영되기 직전, 실내의 조명이 꺼질 때, 그때 갑자기 접하게 되는 어둠과도 같았다. 여전히 끄지 않은 누군가의 전화기 불빛마저 곧 사라지듯, 내 눈에 담겼던 세상은 암전暗轉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고 말았다. 2022년 가을, 태풍이 제대로 비를 쏟으려던 어느 오후에, 나는 그렇게 죽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텅빈 욕탕에서 들었음직한 공명이 저멀리서 희미하게 맴도는 듯 했고 그것과 더불어,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가장 가까운 어둠이 서서히 인식되기 시작했다.

   눈을 떴다고, 눈으로 본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 어폐語弊가 있을 것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보다 더 깜깜한 어둠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시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자각自覺에 가까웠다. 생전生前에 알던 어둠과는 다소 이질적인 것이지만 어쨌거나 빛이 없는 상황, 그것을 가리키는 명칭이란, 내가 가진 상식 선에서는 그저 어둠일 뿐이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볼 눈이 없고, 눈이 붙어있을 얼굴이 없고, 얼굴 아래로 이어질 몸이 없으며 그러니 팔과 다리가 없는 것 역시 지극히 당연했다.

   나는 그저 하나의 작은 빛 덩어리로 변해있었다. 그 크기가 얼마인지도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물론 뇌가 없어졌기 때문에 ‘생각’이라든가 ‘가늠’이란 말도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존재를 자각하는 빛 덩어리가 된 채, 마치 우주인이 유영하듯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전혀 알 수 없는 무한의 어둠 속을 부유浮遊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가 한 곳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론가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꽤나 빠른 속도로 말이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새벽 여섯 시에 경기도 고양을 출발해서 부산으로 향하는, 무정차 KTX의 속도와 같다고나 할까? 분명 그것은 내 의지가 절대 아니었으며, 누가 미는 것도, 그렇다고 누가 끌어당기는 것도 절대 아니었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포함된 공간 전체가 한꺼번에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 느낌? 마치 엄청나게 빠른 무빙 워크 위에 올라선 기분이라고 한다면 여러분들의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한참을 그렇게 이동하다 보니 저 멀리 있는 것들이 점점 뚜렷하게 보이기, 아니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빛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움직이면서 수시로 앞뒤 자리를 바꾸었다. 속도는 제각각인 듯했다. 어쩌다 한두 개는 도중에 빛을 잃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방향을 돌려 움직임이 시작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도 있었다. 사람들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이라고 불렀던 것들이, 어쩌면 나와 같은 어둠 속의 빛들을 지칭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각은 금세 편안한 상태를 가져왔다. 그러자 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사고의 순간이 떠올랐다. 영화에서처럼 사고 직후 몸을 벗어난 영혼이 자신의 육체를 내려다보는 일 따위는 없는 것 같았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때로는 꽤나 유치한 것이다. 그러나 곧 우울한 기분으로 바뀌었다. 아내와 아들, 그리고 부모님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많이 슬퍼하겠지? 내일 예정된 본사 미팅은 어떻게 될까? 꽤나 중요한 건데. 박 부장이 알아서 잘하겠지? 은행 계좌의 비밀번호를 아내에게 알려주는 걸 깜빡했다. 생년월일 네 자린데, 아내는 눈치가 빠르니 금방 풀 수 있을 거야.'

   이상하게도 나의 죽음을 슬퍼할 그들을 떠올렸지만 예전과 달리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약간의 슬픔마저 곧 사라지고, 그저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무미건조한 사실만이 다시금 자각될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생전의 기준으로 가늠하자면 사흘은 족히 지난 것 같았다. 이 비행이 어디서 멈추는지 조금씩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눈이 없지만 사방을 볼 수 있었고, 귀가 없어도 작은 소리까지 느낄 수 있었다. 입이 없는데 말은 할 수 있을까? 혼자서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난데없이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코가 없는데 냄새를 맡을 수 있다니, 그것 또한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얼른 그쪽으로 자각의 방향을 돌렸다. 뜻밖에도 거기엔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도 아닌, 네 다리를 꼿꼿이 세운 채 꼼짝 않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날아오다가 내가 있는 곳에 이르러 갑자기 속력을 늦춘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나란한 채로 같이 움직이는 모습이 되었다.


   ‘이 강아지도 이미 죽은 건가? 나랑 같은 곳으로 가는 것 같은데, 그런데 얘는 어떻게 개의 모양 그대로인 거지? 사람만 빛으로 바뀌고 다른 생명체들은 생전 모습을 그대로 Yuji 하는 것일까?’

   강아지를 곁눈질로 슬쩍 쳐다보았다. 여전히 앞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뿐, 작은 움직임도 없었다. 꼼꼼히 뜯어보니 꽤나 귀여운 얼굴이었다. 노란 털이 여전히 보송보송했다. 두고 온 루이가 생각났다. 할 수만 있다면 루이에게 하듯 이 강아지도 한 번 쓰다듬고 싶었다. 그때였다.

   “사부달. 오랜만이야.”


   어둠을 인지한 이후에 처음으로 듣게 된, 의미를 담은 ‘말’이었다. 도대체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리지? 나는 주위를 훑으며 음성의 발원지發源地를 자각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사방에는 여전히 수많은 빛들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뿐, 내게 말을 걸 만한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사부달, 이거 여전히 멍청하네? 여기야, 여기.”

   소리가 전해지는 쪽을 향해 다시 한번 자각을 집중했다. 그 소리는 놀랍게도 강아지로부터 들려오는 것이었다. 틀림없었다. 천천히 강아지를 내려다보았다. 세상에나, 강아지가 나를 쳐다보며 씨익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미처 놀라기도 전에 이번에는 강아지가 가지런한 이빨을 활짝 드러냈다. 그리고 반갑게 말했다.

   “날 몰라 보겠어? 사부달. 이게 얼마 만이야? 적어도 삼천 년은 더 지난 것 같은데?”


   사부달? 그리고 삼천 년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이 없기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다.


(계속)



* Image by Vladyslav Topyekh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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