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 하오. 조선 중종 때의 학자(1492~1547). 성은 곽郭, 이름은 하오河午, 자字는 다음多音, 호號는 가독加讀, 본관은 제주濟州. 세간世間에 떠도는 말들을 모아 ‘부로언치浮路言致’를 집필하였다. 그리고 ‘매거진每去盡’, ‘부론치북不論治北’ 등을 저술하였으나 왜란倭亂 때 모두 소실燒失되었고, 그중 일부一部만이 구전口傳의 형태形態로 오늘에 이른다.
가독 곽 하오 대감(1492~1547)
중종 14年 7월, 가독加讀 대감이 한양漢陽 판윤判尹으로 봉직奉職하고 있을 때의 화話이다.
모일某日, 두 사내가 동헌東軒으로 끌려왔다. 대감께서 연유緣由를 하문下問하자 포졸 아뢰기를, “이 자들은 한양의 갑급甲級 주막인 영화관英花館에서 전일야간前日夜間에 주먹다짐을 하였나이다.” 하였다. 이에 대감이 두 죄인을 직접 취재取材키로 하시였다.
대감이 먼저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어이하여 저 자를 선공先攻하였느냐?” 이에 얼굴이 크고 다리가 긴 사내 엎드려 말하되, “소인, 이날치李捺致 패거리의 소리를 감상感想하며 앉았사온데, 이 자가 소인 의자倚子의 팔걸이에 불현듯 자신의 팔을 올렸사옵니다. 그리하여 경계警戒를 준 것이옵니다.” 하였다.
그러자 얼굴이 작고 팔이 짧은 다른 사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고告하기를, “아니옵니다.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이옵니다. 저는 제 의자이기에 팔을 올렸사옵니다. 그런데 이 자가 갑자기 소인에게 욕설辱說을 토吐하고 우족右足을 투投하였사옵니다.”
대감이 포졸에게 이르되, “형리刑吏는 당장 이 자들이 말하는 의자를 대령하라”하니 나졸邏卒 일인一人이 의자를 들고 대감 전前에 당도하였다. 대감이 의자를 목도目睹하고 생각하기를, “과연 기이奇異한 형상形狀이로다. 좌석은 두 개인데 팔걸이는 세 개뿐이로구나. 이인二人이면 응당 네 개의 팔걸이가 필요하거늘 어찌하여 세 개뿐이란 말인고. 참으로 기괴奇怪하도다.”
대감이 크게 노하여, “형방刑房은 당장 이 엉터리 의자를 만든 자를 포박하여 하옥下獄하라.” 엄명하고 다시 자세를 고쳐 두 사내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들어라. 저것을 만든 장인匠人에게 그 원죄原罪가 있다 하나, 그것과 너희들이 투鬪한 것은 별개니라. 동방예의지국에서 연유를 확인치 아니하고 무조건 선방先彷을 날리는 것은 옳지 않도다. 앞으로 어디서든 자리에 앉기 전에 팔걸이를 확인하되, 그것에 문제가 있다면 서로가 조심하고 양보하도록 하라. 즉, 시지부이면 매가박수하라.”
시지부이視之不二면 매가박수每駕迫手하라
그것을 보고 두 개가 아니면 항상 기꺼이 팔을 당기도록 하라
(迫 : 줄일 박)
대감이 형形을 결정하여 벌罰을 내리기를, 두 사내의 성명姓名을 마일리지馬日利誌에 쓰게 하고, 이레 동안 마구간에서 말馬을 살피도록 하시였다.
그때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시지부이視之不二면 어찌 하겠느냐?” 제자 솔로率魯가 앞으로 나서며 말하기를 “은애恩愛하는 여인과 동행同行하여 가운데 있는 한 개만 쓰도록 하겠나이다.” 스승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은애하는 여인이 없는 사내는 어찌해야 하느냐?” 이에 제자 솔로率魯가 다시 예를 갖추어 가로되, “그런 남정네는 그런 곳에 오면 아니 되옵니다.” 이에 스승이 크게 탄복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매정한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