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부로언치

2章.태술라太術羅

부로언치浮路言致

by 진우


곽 하오. 조선 중종 때의 학자(1492~1547).
성은 곽郭, 이름은 하오河午, 자字는 다음多音, 호號는 가독加讀, 본관은 제주濟州. 세간世間에 떠도는 말들을 모아 ‘부로언치浮路言致’를 집필하였다. 그리고 ‘매거진每去盡’, ‘부론치북不論治北’ 등을 저술하였으나 왜란倭亂 때 모두 소실燒失되었고, 그중 일부一部만이 구전口傳의 형태形態로 오늘에 이른다.


KakaoTalk_20210402_115405005.jpg 가독 곽하오 대감 (1492~1547)


중종 六年 八月, 임금께서 타시는 안여安輿가 원행遠行 중에 부러지었다. 선공감繕工監은 책임을 물어 대호군大護軍, 선공繕工, 녹사錄事 등을 즉시 파직罷職하고, 고심苦心하여 서역국西域國으로 사자使者를 보내 안여장인安輿匠人을 초빙招聘하였으니 이는 일찍이 조선에 없던 일이었다.


서역장인西域匠人이 한양漢陽에 도착하여 임금께 조례朝禮한 후, 가히 신기神技의 재주로 닷새 만에 안여安輿를 고쳐내었다. 이에 임금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친히 연회宴會를 베푸시었다.


임금께서 가로시되, “저 서역인西域人의 기술이 출중出衆하여 짐을 기쁘게 하였도다. 저 자에게 내릴 상賞을 고告하라” 하시니, 영의정 남곤南袞이 앞으로 나아가 말하기를 “비록 외양外樣은 서역인의 것이오나 주상主上에 대한 충忠만큼은 어느 조선 백성 못지 않사옵니다. 그에게 조선의 이름을 하사下賜하는 것이 합당할 줄 아뢰오.”


이를 듣고 임금께서, “과연 공公의 말이 옳도다. 우의정은 합당合當한 이름을 추천하라.” 하시니 우의정 이의청李義聽이 엎드려 말하였다. “비록 역관譯官을 통通하기는 하였사오나 저 자는 선공繕工의 장인들과 철야徹夜 토론을 즐겼으니, 토론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애론愛論’이 합당할 줄 아뢰옵니다.”


홍문관 대제학 이직李稷이 이에 첨添하기를 “그의 외양外樣을 보면 전신全身에 털이 많고 그 또한 두꺼우니 모숙후毛熟厚가 어떠할까 고告하나이다.” 하였다.


이를 듣고 임금께서 다시 크게 기뻐하시며 “공公들의 말이 모두 옳다. 짐은 저 자의 이름을 애론모숙후愛論毛熟厚라 하겠노라. 아울러 저 자의 기술이 대단하고 아름다우니 태술라太術羅라는 별호別號를 하사下賜하노라.” 이를 듣고 만조백관滿朝百官이 만세萬歲를 불렀다.


태술라太術羅 애론모숙후愛論毛熟厚

대단히 아름다운 재주를 가진, 토론을 좋아하는 털 많은 사내


역관의 설명을 듣고 그가 앞으로 나아가니 임금께서 친히 하전下典하시어, 왕실王室의 명차名茶인 전기차轉氣茶를 직접 수여受與하시었다. 임금께서 다시 태술라太術羅에게 물으시기를 “경卿은 또다른 청請이 있으면 말하라.” 하시니 애론모숙후愛論毛熟厚가 머리를 조아리었다.


“소인이 가진 서역의 돈이 조선과 서로 같지 아니하여 환전換錢할 때마다 다툼이 일어나옵니다. 이를 해결해 주오소서.”


이를 듣고 임금께서 다시 이르시되 “다시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 자者가 가진 화폐에 왕실 고유固有의 도장을 찍어주겠노라. 그리고 이 도장이 찍힌 화폐를 비투고인非鬪固印이라 하겠노라.” 하시었다. 이것은 임금의 옥쇄玉碎가 찍힌 돈이었으므로 후일 그 가치價値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게 되었다.


애론모숙후愛論毛熟厚는 고향을 평생 그리워하였으나 결국 돌아가지 못하였다. 밤낮으로 달을 바라보며 살다가 '수패이수액수手覇而手厄壽 (손으로 얻었으나 손이 액을 불렀다)'라는 글을 남기고, 중종 27년 섣달 열아흐렛 날에 졸卒하였다. 그의 사후死後, 생전의 공적公積을 기려 능陵을 축조하고 이것을 일러 인공지능仁公之陵이라 명명命名하였다.




그 때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비투고인非鬪固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에 제자 한방限房이 앞으로 나서며 답하기를, “내의매매內衣賣買하더라도 완전몰방完全沒放하겠나이다.” 이에 스승이 크게 흡족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말이 정녕 옳다. 그러면 사천만 당겨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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