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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Apr 09. 2021

최근에 울어 보셨습니까

울보 명수


친구 명수가 사무실에 왔다.


그런데 여느 때와 달리 인사말은 메말랐고, 얼굴은 푸석한 것이, 아마도 간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거나 아니면 뭔가 일이 있는 눈치다. 그러나 굳이 묻지는 않는다. 누가 콧물을 더 많이 흘리나 경쟁했던 열 살 때부터의 친구다 보니 이심以心이면 전심傳心이겠거니, 그래서 먼저 말하기 전에는 앞서 묻지 않는 것 또한 서로의 오랜 약속이기 때문이다.


커피를 내려주려는데 녀석이 별안간 크흑 소리를 내더니 어깨를 들썩들썩한다. 그러고는 곧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꺼이꺼이 하다가, 나중엔 엉엉 통곡하는 지경에 이른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마음대로 울도록 그냥 내버려 둔다. 그저 내가 한 것이라고는, 누가 불쑥 들어와 행여 명수를 방해할지 몰라서, 사무실 문을 조용히 잠그는 것뿐이다.


코까지 풀어 가며 꺽꺽대던 명수는, 커피가 식어버린 한참 뒤에야 겨우 울음을 멈추었다. 휴지를 뽑아 눈가를 훔친 녀석이 후우, 덩어리 끝숨에 붙여 어렵게 말을 꺼낸다.


우리 어릴 때, 니가 내한테 도화지 빌려 거 기억나나?”


퉁퉁 부은 눈으로 그제야 씨익 웃는다. 도화지?




명수 여덟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린 삼 남매를 건사하느라 어머니 혼자 노점상부터 남의 집 허드렛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만큼 정말 무던히도 고생을 하셨다. 명수는 그래서 언제나 준비물이 시원찮았다. 특히나 챙길 것이 많았던 미술 시간에는, 언제나 내게서 도화지 한 장을 얻었고, 크레파스를 나눠 쓰곤 했다. 그런데 그 사십 년 전 도화지 때문에 지금 우는 거라고? 설마?


“아, 창피하네. 미안하데이. 요즘 들어서 지난 시절이 문득 떠오르면, 왠지 몰라도 자꾸만 울고 싶어 지네. 적당히 눈물 찍어내는 거 말고, 소리 내서 엉엉, 그렇게 말이다. 뭔지 알겠나? 하지만 울고 싶어도 알맞은 장소가 없다 아이가. 결국 참고 참다가 오늘은 작정하고 너거 사무실 왔다. 니한테 설명부터 하면 감정 식을까 봐 일단, 먼저 울었다. 함 봐도.”


청승도 이런 청승이 없다. 울 거리를 챙겨 싸들고, 친구 사무실까지 고이 들고 와서, 여기서 팡 터뜨린다? 내 친구 강명수, 멋지다, 대단하다, 하하하! 확 죽여버릴까?




명수가 돌아가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마지막으로 울어본 게 언제였었나? 가장 최근의 일은 이십여 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인 것 같고, 그보다 앞선 것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울고 싶었던 적은 많았다. 솔직히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진급이 누락되었을 때, 갓 태어난 아들을 인큐베이터에 넣을 때, 첫 사업에 실패했을 때, 어디 그뿐이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잡다한 세상 일을 원망할 때는 어떠했었는지. 그러나 울고 싶다고 마음대로 울 수는 없었다. 남편이니까, 아빠니까, 남자니까, 어른이니까, 그리고 그전에도 울지 않았으니까.


어른이 된 다음부터 스스로에게 늘 그렇게 강요해 왔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 울면 안 된다고, 울면 정말 지는 거라고. 그런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그냥 주저앉아 소리 내서 엉엉 울었어도 될 일이었다. 그랬으면, 그랬더라면 그렇게 몇 날 며칠을 혼자서 속으로 끙끙 앓으며 가슴속에 독毒을 쌓는 일은 적어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울고 싶을 땐 그냥 울어야 된다. 참으면 병病된다.




퇴근 무렵, 명수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


오늘 진짜로 고맙다.
나이를 먹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많아진다. 그때 울 걸.
앞으로도 종종 신세 지러 갈게.


'나이를 먹으니'에 시선이 멈추었다가 '그때 울 걸'에선 마음이 짠해졌고, '앞으로도 종종'에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음번엔 명수가 무엇을 핑계 삼아 울지 궁금해졌다. 설마, 크레파스? 하긴, 뭐든 상관없다. 명수가 또 울겠다 하면 나는 기꺼이 자리를 내줄 작정이다. 오랜 친구가 찾아와 내 앞에서 시원하게 엉엉 울다가 돌아가는 풍경도 그리 나쁜 그림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언제나 대환영'이라 쓰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함께 울 명분이 생겼다 싶어 한편으론 기분이 좋았다.


오십이 되었으면, 속내를 편하게 털어놓고 엉엉 울 수 있는 친구 하나쯤은 반드시 있어야 된다. 없다면, 지금이라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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