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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Apr 11. 2021

슬픈 꿈을 꾸었느냐

하나도 안 달콤한 인생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자다가 그 여인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입니다."


맞다. 그 이유다. 그래서 아내는 지금 사흘 째, 나와 묵언전쟁默言戰爭 중이다. 다른 여자를 슬쩍 쳐다봤다는 이유로 일주일 넘게 토라졌었던, 불꽃 튀는 연애 시절도 아닌데 굳이 아내가 이러는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할 당시, 나는 모某 홈쇼핑의 구매 담당자(바이어, MD)였다.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홈쇼핑에서, 1분에 300만 원어치 이상의 상품을 팔아야 했던 내 머릿속에는, ‘방송’과 ‘매출’이란 말이 언제나 떠나지 않았다. 마라톤 회의는 당연한 일상이었고, 스텝들과는 회의실 안팎에서 늘 머리를 맞대어 전략을 짜야했다. 특히나 내 머릿속 계획을 방송화면으로 구현해 주는 담당 피디는 단순한 업무 담당자를 넘어, 굳이 손을 뻗지 않아도 늘 닿아있는, 분신分身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만삭이 된 아내와 함께 처가로 향하던 차 안에서, 뒷자리에 앉은 아내를 부른다는 것이 나도 모르게 그만, 담당 피디의 이름을 불러버리고 만 것이다. 아뿔싸. 굳어버린 아내의 얼굴엔, 그 어떤 변명도 듣지 않겠다는 각오가 묻어났다. 후폭풍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내로부터 무슨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장모는 물론, 나중엔 처제까지 나섰다. “형부, 이러시면 안 되잖아요. 가정을 지키셔야죠. 언니가 홀몸도 아닌데.”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다행히도 우리의 결혼식 사회를 봐주었던 회사 동료가 직접 나서서 설명을 해 준 뒤에야 겨우 풀어지긴 했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이마에 진땀이 흐른다. (PS. 그 담당 피디가 지금 나영석 피디의 부인이다.)


이번 사단事端에도 차라리 그 피디의 이름이 나왔더라면, 오래전 강박을 핑계 삼아 어떻게든 넘어갔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아니다. 그때는 아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나, 이번엔 아내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이의 이름이다. 잠결에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온 것도 문제였지만, 그 이름을 아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결혼 직전 아내가 내게 말했다. 과거의 모든 것을 툴툴 털고 가자고. 당시의 나는 순진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나는 피노키오가 되고 싶지 않았다. 영혼의 마지막 한 줌까지도 정직한 사람이란 칭찬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순순히 말했다.


사실은 언제언제, 누구누구를 만나서 이런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저런 이유로 헤어졌다. 그러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그게 전부다. 한참 동안의 설명이 끝나자 그때, 아내가 나를 꼬옥 안아주며 그랬다. “그래요, 우리 모두 잊어요.”


그러나 아내는, 잊지 않았던 거다. 그 이름을 여태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잊자고 해서 나는 다 잊었는데. 우라질




“명수야. 아니 만났어야 될 아사코를 만난 것도 아니고, 바람을 피우기를 했냐, 아니면 눈길을 주기를 했냐? 이거 좀 심한 거 아니냐?”

“니, 진짜로 아무 일 없었던 거제?”

“니가 날 몰라? 이미 이십 년 전이라니까!”


버럭 소리에 친구 명수가 움찔했다.


“그래, 맞다. 니 말 맞고, 다 좋은데, 근데 머 할라꼬 입 밖에 꺼내노? 아무리 잠꼬대라도 조심해야제.”

“으이그, 조심할 수 있으면 그게 잠꼬대냐?”




나이가 드니 잊고 지냈던, 아니 잊은 척했지만 남몰래 담아 두었던 이름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 때가 있다. 부는 바람에, 내리는 비에, 지는 낙엽에, 새로 피는 꽃에, 좋은 노래에, 슬픈 선율에, 가 본 여행지에, 맛있는 음식에 그리고 빛나는 별밤에 그들이 슬쩍슬쩍 묻어 나온다.


이러다간 모두 잠든 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잠꼬대를 타고 언제 세상 밖으로 툭 튀어나올지 모를 일이다. 이름을 기억하는 이와, 그 기억을 전해 듣는 이의 감상이 같을 리 없다. 전쟁은 두 번으로 충분하다. 어떤 경우에라도 아내를 속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약藥이 그래서 필요하다. 자는 동안만큼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말하지 않도록 해 주는 약. 아니면 ‘여보, 사랑해’만 되풀이하는 약, 그런 약의 개발이 오늘, 지금, 나한테 정말 절실하다.


나이 오십에 마음속 그리운 이름 하나 없는 것도 참 퍽퍽한 일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마음 속이다, 마음 속. 늘 입조심하자. 특히, 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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