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로언치浮路言致
곽 하오. 조선 중종 때의 학자(1492~1547).
성은 곽郭, 이름은 하오河午, 자字는 다음多音, 호號는 가독加讀, 본관은 제주濟州. 세간世間에 떠도는 말들을 모아 ‘부로언치浮路言致’를 집필하였다. 그리고 ‘매거진每去盡’, ‘부론치북不論治北’ 등을 저술하였으나 왜란倭亂 때 모두 소실燒失되었고, 그중 일부一部만이 구전口傳의 형태形態로 오늘에 이른다.
중종 21年 5月, 대감께서 광주光州 출장出張을 명命 받아 어전御前에 나아가 예禮를 올리시었다.
원행遠行의 피로疲勞를 염려하신 임금께서 특별히 가마를 하사下賜하시니 그것이 곧 리무진裏無振이라. 이는 가마 안에 진동振動이 없다는 뜻으로 곧, 흔들리지 않는 편안便安함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다. 또한 리무진裏無振을 전담全擔하여 운행運行할 가마꾼 팔인八人 역시 내리시되, 이들이 곧 기통旣通, 즉, 모든 길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더라.
임금께서 이와 같이 팔인八人의 기통旣通과 리무진裏無振으로 출장出張을 격려하시니, 대감, 성은聖恩에 감읍感泣하여 절하고 물러남이었다.
허나, 출발이 임박臨迫하였음에도 기별記別 없음에 대감, 동자童子에게 이르시길, “주말週末에는 극심한 정체停滯가 예상豫想되는 바, 어이하여 출발出發을 서두르지 않는 것이냐. 너는 그 연유緣由를 고告하라.” 하였다. 이에 동자童子, 급히 다녀와 엎드려 아뢰기를, “작금昨今, 기통旣通 간에 언쟁言爭이 발생하였나이다.” 하니 대감, 이를 탄식嘆息하며 직접 팔기통八旣通에게 거去하시었다.
팔인八人의 기통旣通, 대감을 알현謁見하고 일제히 엎드려 예禮를 올리되, 대감께서 이르시길, “자고自古로, 인생만사人生萬事 오십칠분교통정보五十七分校通正步(삼분전에 아슬아슬하게 교문을 통과함)라 했거늘, 그대들은 어이 하여 출행出行 전前 언쟁言爭인가?” 하였다. 이에 팔기통旣通 중 으뜸인 백밀어白謐馭 조장組長이 뒤를 보며 말하기를, “송구하나이다. 팔인八人의 기통旣通들이 저마다 제 아는 길이 가장 빠르다 하여 그것을 다투고 있는 줄로 아뢰오.” 하였다.
이에 대감이 재차 탄식嘆息하며 말하기를, “내, 그대들의 협동정신協同精神 잘못 보았던가? 기통旣通들은, 각자 체득體得한 지식智識을 입밖에 내지 말고 우선 종이에 적도록 하라. 연후然後, 그것을 비교比較하여 하나를 선택選擇하면, 그것이 바로 언쟁言爭 없이 경로經路를 결정決定하는 가장 신속한 방법方法이 될 것이니라.” 하였다.
팔기통八旣通 생각하기에, 대감의 조언助言이 진정 혜안慧眼인지라, 지필紙筆을 가져와 각자의 경로經路를 적어 비교比較한 다음, 가장 빠른 것을 선택選擇하니 곧 리무진裏無振이 출발하기에 이르렀다.
(乃 : 서두를 내, 比 : 비교할 비, 皆 : 모두 개, 選 : 고를 선)
당일當日의 일화一話를 계기契機로, 여행 출발 전前에 기통旣通들이 모여, 최단경로最短經路를 선택選擇하는 습관習慣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또한 이후로 시중市中에 다양한 내비개이선乃比皆而選이 등장하니, 18세 미만未滿이 애용愛用하는 아이내비兒以乃比, 다섯 가구家口마다 널리 사용하는 가가오내비家家五乃比 등이 그것이었다.
또한 내비개이선乃比皆而選과 실제實際 경로經路가 어긋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여 구설口舌에 오르니, 이를 막고자 양자兩者를 일치一致토록 하는 것을 일러, 업대이투業對以透라 하였다.
그때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내비개이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제자 과속課俗, 앞으로 나아가 예禮를 갖추어 말하되, “소인, 내비개이선이 조선에서 비롯된 말임을 오늘에야 알았나이다. 실로 가슴이 벅차오르나이다.” 이에 스승이 크게 탄복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네 말이 과연 옳다. 그러한 것이 어디 하나뿐이겠느냐. 다음 시간에는 놀수로이수㐐手勞以首에 대하여 학습할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