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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May 05. 2021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를 살렸다 (3)

영원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

https://brunch.co.kr/@jay147/75


2016년 봄, 절친이나 다름없는 형들 몇 명과 함께 경북 상주常州에 있는 사층짜리 건물을 구입했다. 구도심舊都心이긴 하지만 위치도 그다지 나쁘지 않고, 왕복 이차선 도로를 끼고 있어서 리모델링한 다음에 재임대를 하면 수익이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관련 절차가 완료된 것을 확인한 후,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짜에 맞추어 일행들이 다시 한번 상주로 갔다.


지난 답사 때에는 마당 한쪽 편으로 삼십 년 된 미루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러나 주차장을 넓혀야 하니 그것을 베어내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다녀간 뒤로, 공사 책임자가 시청의 허가를 받아 윗동을 잘라냈고, 이번에 갔을 때는 아랫동만 겨우 남아있었다. 


성격이 급한 민구 형이 그걸 보더니, 딱히 할 일도 없는데 밑동을 마저 베자고 했다. 하지만 직경이 1미터나 되는 큰 나무를, 인력人力으로 어떻게 걷어내냐며 모두가 만류했다. 그러나 민구 형은, 남들이 말리면 말릴수록 나서서 완장을 차는 스타일이었다. 자기 차로 성큼성큼 가더니 트렁크 안에서 난데없이 손도끼를 꺼내왔다. 


“차에 별의별 걸 다 싣고 다니네?” 그 말에 민구 형이 또 어깨를 으쓱하며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렸다. 다른 형들이 재차 말렸지만, 민구 형은 그만 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장갑에다 두어 번 침을 뱉은 형이 힘차게 나무를 내리찍었다. 퍼억. 도끼가 나무에 박혔다. 이리저리 힘을 주자 도끼가 쑥 뽑혔다. 그걸 보고 또 형들이 놀렸다. “엑스 칼리버 뽑았네, 아더왕 민구!” 또다시 퍼억. 그러기를 서너 차례. 퍼억퍼억퍼억. 빗맞은 나무껍질이 이리저리 사방으로 튀었다. 저러다간 정말 다치겠다 싶어서 형을 말리려고 내가 마당으로 내려섰다. 


하지만 형은 또다시 머리 위로 도끼를 쳐들었다. 에에잇. 힘찬 기합과 함께 도끼가 나무를 향해 떨어졌다. 그런데 이번엔 이상한 소리가 났다. 티잉. 그리고 형들이, 아악 하는 비명을 내질렀다. 도끼가 나무에 빗겨 맞았다. 손잡이가 부러졌다. 그리고 손잡이를 떠난 도끼날이 내 쪽을 향해 날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이렇게, 이렇게 죽는구나.




“분명히 봤어. 너는 반사신경이 좋아서라고 우기지만, 그건 제이 네가 피한 게 아냐. 뭔가가 널 끌어당겼어.”

“맞아. 나도 봤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부웅 날 수 있어? 앞도 아닌 뒤로 말이야.”

“족히 3미터, 아니 5미터는 될 걸?”


형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앞다투어 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죄인이 된 민구 형만 그저 말없이 운전대를 잡고 있을 뿐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려 창 밖을 보니 저 멀리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부산 10KM. 나는 원래 상주를 거쳐 부산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그 날 저녁에 할머니 제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용하다는 점쟁이, 아니면 사주께나 맞힌다는 양반들이 어쩌다 우연한 자리에서 나를 만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물론 그것들을 이 자리에 시시콜콜 옮길 생각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나는 기본적으로 사주 팔자라든가, 정해진 운명 따위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전하는 이것만큼은 새겨들어 둔다.


“돌아가신 할머니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처사님(=나)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손주를 절대로 빼앗기지 않을 거라고 하시네요.”




전화를 끊고 나자 아내가 묻는다. “진짜로 꿈속에 할머니가 나왔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아내가 갑자기 팔 걸음으로 바짝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한다. “그럼, 할머니한테, 번호 여섯 개만 가르쳐 달라고 하지 그랬어요, 네?” 


나는 말없이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다가 다시 눈을 감아 버린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이 사람이 할머니의 손주 며느리입니다.'


그 날, 도끼가 빗겨맞은 흔적


할머니 이야기 끝!


PS. 불라불라不拏不拏 - 굳이 잡거나 담아둘 필요 없는, 그저 가벼운 이야기들만 남겨두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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