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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May 06. 2021

안 사면 그만이다

그 말이 정답일세


1.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데 말쑥한 양복 차림의 아저씨가 우리 앞을 막았다. "아저씨 설명 들으면 이 축구공이랑 글러브, 공짜로 줄게." 호기심에 따라갔더니 또래의 코흘리개들이 이미 수십 명이었다. 뙤약볕 아래 맨땅에 앉아 땀을 뻘뻘 흘려가며 한 시간을 족히 들었다. 결국 백과사전을 사야만 축구공을 준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투덜거렸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경찰에 신고할 거라고. 그러자 어머니가 그랬다. “놔둬라, 안 사면 그만이잖니.”


2. 고향으로 가는 버스는 언제나 남강 휴게소에 들렀다. 그때마다 험상궂은 남자들이 버스로 올라왔다. "추첨을 통해 딱 한 분께 고급 시계를 무료로 드립니다." 그리고 나는 어김없이 '딱 한 분"이 되었다. 시계는 공짜지만 소득세를 내야 하니 2만 원을 자기들한테 달라고 했다. 학생이라 돈이 없다며 시계를 돌려주자, 그들은 내 귀에 들리도록 욕을 하며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와서 투덜거렸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경찰에 신고할 거라고. 그러자 어머니가 그랬다. “놔둬라, 안 사면 그만이잖니.”


3. 벨 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어떤 남자가 서 있다. 불쑥 전단지를 들이민다. "신비의 영약, 드디어 부산 땅에!" 전단지를 얼핏 보니,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물개가 엎드렸고 그 위로 거북이가 올라타고 있다. 관심 없다고 문을 닫으려 하자, 문틈에 냅다 구둣발을 끼운다. 특별히 50% 싸게 해 주겠다고 한다. 한참 동안의 실랑이 끝에 겨우 문을 닫았다. 대학생에게 무슨 정력제를 파냐며 투덜거렸다. 가짜 약을 파는 나쁜 사람이라고, 경찰에 신고할 거라고. 그러자 어머니가 그랬다. “놔둬라. 안 사면 그만이잖니.”




최근 들어서, 돈을 받고 글쓰기를 가르쳐 주겠다는 게시물들이 눈에 띄게 부쩍 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글 쓰기를 ‘도와’ 드립니다, 십몇만원. 한 달 동안 글 쓰기를 ‘도와’ 드립니다, 몇만 원. 일대일로 ‘도와’ 드립니다, 몇만 원. 그럴듯한 제목 만드는 데 몇만 원, 구독자 늘리는 데 몇만 원, 이것에 몇만 원, 저것에 몇만 원.


나는, 잘 모르겠다.


이런 글들이 최근에 자주 올라온다고 하자, 아내는 순식간에 그 시절의 어머니로 빙의한다. “놔둬요. 안 하면 그만이잖아.”




갑자기 궁금해졌다.


글을 쓰다가 이 부분에서 좋은 문장이 필요하다고 진샤님께 말씀드리면, 어느 부분요 하실까? 입금부터 하라고 하실까? 글을 쓰다가 이 대목을 고치고 싶다고 한량님께 말씀드리면, 어느 대목이요 하실까? 계좌번호부터 찍어 주실까? 물론 청하기 전에 ‘도와 달라고’ 확실히 못부터 박을 것이지만 말이다.



PS. 불라불라不拏不拏 - 굳이 잡거나 담아둘 필요 없는, 그저 가벼운 이야기들만 남겨두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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