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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May 07. 2021

이러면 나가린데

나만 그런 거야, 응?


1. 밤늦도록 심청이가 돌아오지 않자, 심봉사는 서둘러 심청이를 찾아 나섰다. 개울을 건너려다 발을 헛디딘 심봉사가 그만 다리 아래의 개울로 빠지고 말았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이때 근처를 지나던 몽운사 주지 스님이 그 소리를 듣고 심봉사를 가까스로 구해 주었다. 절을 하며 감사해하는 심봉사에게 주지 스님이 눈을 뜰 수 있는 비법이 있다고 조용히 알려주었다. 공양미 삼백석이면 눈을 뜰 수 있습니다. 이 말에 깜짝 놀란 심봉사, 그만 눈을 떠 버린다. 멀리서 이것을 본 심청, 조용히 중얼거린다. “이러면 나가린데….”


2.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서러움을 이기지 못한 길동은 집을 떠날 결심을 한다. 그래서 홍 판서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한다. 자초지종을 들은 홍 판서가 생각하기를, 길동의 상처가 아주 오랜 것임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호부호형을 허락하고, 전 재산을 물려주기로 하자, 홍길동이 가출을 포기하고 계속 눌러 살기로 했다. 멀리서 이것을 본 활빈당, 조용히 중얼거린다. “이러면 나가린데….”


3. 먹을 것이 떨어진 흥부, 한참 동안 고심하다가 형 놀부를 찾아갔다. 놀부의 처까지 나와서 흥부를 맞이했다. 진작 이런 사정을 왜 말하지 않았냐며 놀부가 눈물을 흘렸다. 놀부의 처 또한 흥부 가족을 따뜻하게 거두어들인다. 흥부 가족은 이제 먹고사는 걱정을 잊었다. 멀리서 이것을 본 제비, 조용히 중얼거린다. “이러면 나가린데….”




세 가지 이야기를 서둘러 메모한 다음, 나는 아내에게 쪼로로 달려갔다. 주방 청소를 하던 아내는, 내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나는 한번 더 재촉한다. “재밌지, 재밌지? 나는 웃겨 죽을 뻔했는데.”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아내가 고무장갑의 물을 탁 튕기며 그런다. “오빠 혼자만 재밌다니까! 저리 좀 가!”


시무룩해져서 내 방으로 돌아온다. “이러면 나가린데….” 춘향전을 각색할 걸 그랬나?


인생의 참된 행복은 아내의 웃음에서 나온다. 
The true happiness of life comes from wife's laughter. 

존 스프링스 John Springs 영국 1947~2005


이런 말 없다. 존 스프링스? 이런 사람, 당연히 없다. 내가 지어낸 거다. 어떻게든 오늘은, 아내를 웃기고 말 테다. 흥!



PS. 불라불라不拏不拏 - 굳이 잡거나 담아둘 필요 없는, 그저 가벼운 이야기들만 남겨두는 곳입니다.


Title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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