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 하나 빠짐없이 챙기고 신경 써 주셨던, 큰 이모 같은 선생님. 1학기 월례고사에서 국산사자 네 과목 모두 백 점을 받았다고, 나를 업고 교실을 한 바퀴 도셨던 게 기억난다. 지금은 우리 어머니랑 언니, 동생 하면서 노년을 함께 보내고 계신다. 최근에 암 판정을 받으셨다고 들었다.
2학년 7반 / 이화춘 선생님
할머니 선생님이셨다. 자동차를 잘 그린다고 칭찬을 해 주신 기억이 있다. 봄 소풍 때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 있긴 한데 그 외에는 딱히 추억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냥 좋으신 분이었다.
3학년 3반 / 이숙희 선생님
내겐 제2의 어머니 같으신 분. 우리 집 형편을 아시고 몰래 육성회비를 챙겨 주시기도 했다. 그런 도움을 받은 아이가 나 말고도 여럿 있었음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최근까지 부산 모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계시다가 정년퇴직하셨다.
4학년 6반 / 김영희, 김명숙 선생님
김영희 선생님은 3월 한 달만 담임을 하다가 이민 가셨고, 나머지 기간은 김명숙 선생님이 맡으셨다. 내가 지금까지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를 부여해 주신 분이다. 어찌 보면 선생님이라기보다 큰누나 같은 느낌이었다.
5학년 6반 / 김명숙 선생님
초등학교 6년을 통틀어 가장 즐겁고 재미있게 학교를 다녔던 때다. 선생님은 담임 2년 차를 맞아, 우리를 더욱 능숙하게 조련하셨다. 선생님, 하면 새 책 냄새가 어김없이 떠오른다.
6학년 2반 / 김부* 선생님
초등학교 6년 동안 첫 남자 담임이자 최악의 선생님. 나뿐만 아니라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따로 모아 수시로 면박을 주셨고, 내가 그린 그림과 지은 글을 치맛바람 날리던 다른 아이 이름으로 바꿔치기해서 상을 주기도 했다. 엄마가 학교에 오지 않는다고 싸구려 운동화를 신었다고 아이들 앞에서 내 뺨을 때리기도 했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1983년이다.
중학교 1학년 1반 / 정강옥 선생님
남녀공학 중학교의 여학생 체육 과목을 담당하셨다. 2학기 때 출산을 하셔서, 아기 장난감과 기저귀를 사 들고 자택으로 문병을 간 적 있다. 내가 크면 바람둥이가 될 거라는 예언을 하셨다. 별명은 미스 정. 입술 끝에 까만 점이 매혹적이었고, 꽤나 서구적인 미인이셨다.
2학년 10반 / 정청오 선생님
기술 과목을 맡으셨다. 호탕한 웃음이 기억난다. 내게도 꽤나 잘해 주셨다. 학교 앞 목욕탕과 이름이 비슷해서 별명이 청오탕이었다. 본인은 그 별명을 좋아하셨다. 자기로 인해 모두가 깨끗해진다고.
3학년 6반 / 이가수 선생님
국어 선생님이셨다. 별명은 할매 그리고 싱어 Singer. 진짜로 많이 늙으셨다. 수업 준비가 부실해서 아이들이 대놓고 놀리기도 했다. 소녀 같은 여린 심성이라, 국어책을 읽다가 울기도 하셨다. 소풍 때는 아주 특이한 옷차림을 하셨는데, 알고 보니 우리 어머니도 야유회 갈 때 그렇게 입고 가시더라.
고등학교 1학년 10반 / 강영린 선생님
국어 과목을 담당하셨다. 별명은 바람돌이. 국어 교사가 되고 싶다는 나를 적극 응원해주셨다. 한 번도 체벌을 하지 않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내 결혼식의 주례를 서 주셨다. 지금은 정년퇴직하셨다.
2학년 3반 / 추종석 선생님
수학 담당이셨다. 한쪽 몸이 불편하셔서 비가 오는 날은 극심한 히스테리를 부리셨다. 내가 반장이었는데, 나와 그다지 사이가 안 좋았다. 이유는 내가 국어만 신경 쓰고, 수학은 개판을 쳤기 때문이다. 이때 수학여행 사진을 보면, 다들 내가 담임인 줄 안다. 그만큼 선생님의 체구가 작으셨다.
3학년 4반 / 최재언 선생님
지리 담당이셨다. 최 선생님의 반대로 내가 사범대에 진학할 수 없었다. 내 장래를 위해선 사범대보다 상과대를 가야 한다고 하셨다. 반장이라고 특별히 챙겨주신 것은 없었다. 지리 과목과 상관없이 민주주의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씩 해주셨다. 별명은 이주일이었다. 이유는…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는 모든 것이 선생님들의 덕택이다.
여덟 살짜리 코흘리개를 앉혀놓고 기역니은을 가르쳐 주셨고, 질풍노도의 시기에 노를 잡아 주셨으며, 장차 살아갈 방향을 일러 주신 것도 모두 선생님들이셨다. 물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선생님도 있고, 떠올리기 싫은 일화도 있다. 하지만, 이미 아물어버린 상처를 보면서, 굳이 다치던 날을 떠올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스승의 날이 되니, 선생님들이 생각났다. 모두 건강하시기를, 그리고 평안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나의 선생님들.
(덧글. 한 분을 뺀 다른 선생님들의 실명을 밝히는 것은, 굳이 숨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동명이인이라도 좋으니 어, 나도 저 선생님께 배웠는데, 하며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면, 이 글을 쓴 목적은 얼추 달성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