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뒤에서 누군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늦어진 이유는 순전히 소牛장수 박 씨 때문이다. 오래간만에 얼굴을 봤으니 딱 한잔만 하자는 통에, 그 한 잔이 곧 한 병이 되고, 결국엔 주전자 두어 개가 바닥 긁는 소리를 냈다. 그나마 박 씨 마누라가 잔을 뺏고 소판 돈을 구실로 성화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그 삐걱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을 노릇이었다.
입추가 지났다지만 여름밤은 후텁지근 더웠고, 오일장五日場이 그믐을 걸친 탓에 달 없는 길은 그저 어둡기만 했다. 신작로新作路를 따라 잰걸음을 하더라도 집까지는 얼추 이십 리, 적어도 한 시간은 족히 걸어야 할 거리였다. 장부丈夫에게 이깟 밤길이 대수냐 속으로 다잡아보았지만, 건넛마을 종수 안사람이 승냥이에게 화를 당했네, 진배미 홍가洪家가 눈뻘건 여우를 만났네 하던 말이 생각나, 은근 오싹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장터를 벗어난 지 대략 십여분 즈음 지났을까. 산모롱이를 돌았는데 저만치 앞에 웬 아낙이 혼자 걷는 것이 보였다. 질끈 동여맨 허리가 새초롬 잘록한 것이, 나이는 그리 들지 않은 듯했고, 머리에 올린 함지박은 틀림없이 아낙 또한 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함일 게다. 옳다, 잘 됐다 싶어서 나는 걸음을 빨리 했다.
“보소, 아지매요.”
그 소리에 아낙이 고개를 돌렸다. 달은 없어도 돌아본 얼굴이 고왔다. 땀에 절어 희번덕했지만 태態가 있어 밉지 않았다. 우뚝 선 아낙에게 다가갔다.
“나는 연직골 사는 사람인데, 시간이 늦었다 아잉교. 나쁜 사람 아니니까 말동무나 하면서 밤길을 도웁시다.”
아낙은 말없이 가던 길을 다시 걸었다. 나도 두어 걸음 뒤쳐져서 묵묵히 따랐다. 그래도 둘이 걸으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앞서 걷는 아낙에게서 풀 냄새가 났다. 다시 그렇게 삼십 분 즈음 걸었을 때였다. 갑자기 아낙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아재요,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입시더.”
“그, 그럽시다.”
아낙이 함지박을 내리는 것을 거들었다. 또 풀 냄새가 푸욱 났다. 돌에 걸터앉은 아낙이 함지박 위를 덮은 삼베를 걷어내고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오늘 장場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떡이 많이 남았십니더. 한 개 자셔 보이소.”
이게 웬 횡재인가? 달 없는 밤에 길동무를 만나 좋았다 싶었는데, 미인美人이 건네주는 야식까지 먹게 되다니. 운수 좋은 날은 오늘을 두고 하는 소린가 싶었다. 나는 아낙이 건네준 떡을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떡은 천천히 먹더라도 우선 인사를 섞어 수작부터 걸어볼 참이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어른어른 횃불이 보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도 가까워졌다. 그러자 갑자기 아낙이 서둘러 함지박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서더니 오던 길을 되돌아 방향을 잡았다. 저, 아지매가 와 저라노? 보소, 아지매요. 거기는 장터 쪽이요. 길은 반대 방향이고. 하지만 말이 목구멍에서만 맴돌았다. 곧 횃불들이 다가왔다. 불 아래 드러난 얼굴들은 아랫집 사는 복태와 동네 청년 서넛이었다.
“아이고, 행님. 여기서 뭐 하능교.”
“어, 그기 아이고, 내, 내는.”
“장에 간 행님이 자정이 다 되도록 안 와서, 우리가 찾아 나섰다 아입니꺼?”
“그렇나? 장에서 오던 중에 떡장수 아지매를 만나 잠깐 쉬려던 참인데.”
“아지매요? 우리가 아까부터 행님 보면서 내려왔는데 혼자 계시더만요. 근데 아지매는 무슨.”
“아이다, 봐라. 여기 아지매가 준 떡도 있다 아이가.”
낯선 여인에게 수작을 걸려던 것이 들통이라도 날까 싶어, 나는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손에 든 것을 내밀어 보였다. 그러자 복태가 혀를 차며 말했다.
“행님, 이게 무슨 떡인교, 소똥 아입니꺼, 소똥! 그리고 남의 무덤 위에서 지금 뭐합니꺼?”
고작해야 일 년에 한두 번, 아버지를 따라 고향에 가면, 큰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당신 품으로 당겨 안으셨다. 그리곤 무릎에 앉힌 다음, 주머니에서 젤리며 엿이며 사탕이며를 꺼내 내 손에 쥐어주며 말씀하셨다.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 주까?”
소똥 귀신 이야기는 아마도 서른 번은 더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귀신 이야기보다 사탕에 더 관심이 많았던 나는, 난생처음 듣는 것처럼 엄마야, 엄마야 하며 큰아버지에게 장단을 맞추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던 날, 마침 내가 아버지를 따라 고향에 갔던 그날, 논에 물을 대고 금방 오겠다던 큰아버지는 그 길로 영영 돌아오지 않으셨다. 난생처음 아버지의 대성통곡을 본 것도 서러웠지만, 다시는 박하사탕과 젤리를 못 먹게 되었다 싶어서, 그게 서러워서 나도 엉엉 울었다. 소똥 귀신을 따라가셨나 하는 생각도 몇 번은 한 것 같다.
소똥 귀신이 더 이상 안 먹힌다 싶으면, 큰아버지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셨다.
앞에서 걷는 귀신은 내게 길을 알려주는 것이고, 뒤에서 따라오는 귀신은 길을 잃은 것이다. 누군가 내 뒤를 따라온다 싶으면, 분명 그것은 길을 묻는 귀신이 나를 따라오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갑자기 뒤를 돌아보면 귀신도 깜짝 놀라서 사람을 덮칠 수 있으므로, 돌아보기 전에는 반드시 '돌아봅니다'라고 먼저 말해야만 귀신이 안 놀란다는 것이다. 에이,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코웃음을 쳤지만 그 이야기의 여파는 지금도 유효하다.
으슥한 밤 외진 길을 혼자 걷거나 차를 세우고 주차장을 빠져나올 즈음에, 가끔은 누군가 따라온다 싶어 뒷덜미가 서늘할 때가 있다. 마음 같아선 홱 돌아보고 싶지만 그때마다 큰아버지의 말씀부터 떠올린다. 그래서 나는 돌아보기 전에 '반드시' 조용히 혼잣말부터 한다.
“자, 돌아봅니다. 놀라지 마세요.”
아내는 배를 잡고 웃지만, 나는 진지하다. 이게 다 큰아버지 때문이다. 그래서 큰아버지가 보고 싶다. 비가 오니까 더욱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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