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로언치浮路言致
곽 하오. 조선 중종 때의 학자(1492~1547).
성은 곽郭, 이름은 하오河午, 자字는 다음多音, 호號는 가독加讀, 본관은 제주濟州. 세간世間에 떠도는 말들을 모아 ‘부로언치浮路言致’를 집필하였다. 그리고 ‘매거진每去盡’, ‘부론치북不論治北’ 등을 저술하였으나 왜란倭亂 때 모두 소실燒失되었고, 그중 일부一部만이 구전口傳의 형태形態로 오늘에 이른다.
중종 4年 7月, 한양漢陽에 적籍을 두고 거주居住하는 자者, 십만十萬을 초과超過하니 새로이 터를 닦고 집을 짓는 공사工事 또한 끊이지 않았다. 이에 건설현장建設現場에서 용역用役하는 자者, 아울러 증가增加하되 그들의 거주지居住地가 도성외곽都城外廓인 것이 문제였음이다.
야심夜深한 시각時刻에 공사종료工事終了하면, 장정壯丁들은 무리 지어 귀가歸家하니 별무문제別無問題였으나, 현장現場의 취식取食을 담당한 여인女人들의 사정事情은 같지 아니하였다. 언덕을 넘으니 포악暴惡한 범이요, 언덕을 넘기 전에는 흉악凶惡한 인범人犯인지라, 이에 민원民怨이 급증急增하여 대감이 이를 두고 고심苦心하시였다.
대감께서 공조工曹에 하명下命하시어 대책對策을 마련하시니, 그것은 곧 한양漢陽의 가마소와 협력協力함이었다. 관청官廳의 주간사용晝間使用이 종료된 가마를 이용利用, 심야深夜에 여인女人들을 수송輸送하되, 안전安全을 보장保障하고자 가마꾼으로 하여금 반드시 집이 보이는 곳까지 도착倒着하라 명命하시니, 그것이 곧 택시가마였다. 요금料金은 닷푼이 추가追加되었다.
(宅 : 집 택 視 : 보일 시)
안전귀가安全歸家의 방안方案을 득得한 여인女人들의 기쁨 소리 컸으나, 장정壯丁들의 불만不滿 또한 생겨나니, 대감께서 또한 민원民怨을 수렴收斂하시어 장정 전용專用 가마를 준비토록 하시었다. 최대最大 팔구인八九人이 합승合乘하되, 장정이란 본시本始 신체身體가 장대長大하고 갓을 쓴 자者, 상투를 높게 올린 자者 많음으로, 가마의 지붕 또한 높게 개조改造하도록 하여 승차昇車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니 그것이 곧 봉고였다.
(峯 : 봉우리 봉 高 : 높을 고)
한양漢陽의 업자業者들이 봉고를 응용應用하여 새로운 가마를 제조製造하되, 그것이 곧 가니발可泥發이였다. 가니발可泥發은 진흙밭에서도 출발出發이 용이容易하다 하여 명명命名된 것이었다.
모일某日, 한양 사는 재웅再熊이란 자者가 대감을 알현謁見하여 가로되, “귀가歸家 희망자들의 동선動線을 이용하여 효율적效率的으로 수송輸送하면 어떻겠나이까?” 하니, 대감이 과연 묘수妙數로다 하시며 이어 듣기를, “행선지行先地가 동일同一한 자들이 다 함께 가마를 이용하면 비용費用도 절감節減되며 수익收益도 발생發生하나이다.” 하였다. 재웅再熊, 재차 말하되, “그들을 많이 태우는 것이므로 이 제도制度를 일러, 타다他多라 하겠나이다.” 하였다.
허나 타다他多가 시행施行된 이후, 도성내都城內 가마꾼들이 불만不滿을 토로吐露하고 급기야 분신粉身(몸에 가루칠을 함)하는 자마저 출현出現하니, 대감이 고심 끝에 타다他多를 결국 종료終了함이었다.
그때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가가오택시家家嗚宅視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제자 합승合乘, 앞으로 나아가 예禮를 갖추어 가로되, “근일 간 가가오택시家家嗚宅視를 수차례 이용하였으나 소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비싼 요금제로 유도하나이다.” 이에 스승이 크게 탄식하여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하였다. “내, 너의 심정 충분히 이해하나 브런치에서는 가가오 욕하면 아니 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