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II제이 Mar 20. 2023

싫다. - <6월 상순의 순간>

더위가 더해진다. 2022년의 여름이 다가오며 점점  달궈지며.

일을 하기 싫다. 읽기 싫다. 평가하기 싫다. 평가하기 위해 뭔가를 받기도 싫다. 하기 싫은데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생기는 압박감이 싫다. 몸이 상하는 것 같아 싫다. 이런 생각이 몸을 상하게 한다, 고 생각하니 더 싫다. 누가 나에게 맡긴 일이라 생각하는 게 싫다. 저 혼자서 하는 생각이 더 나쁜 쪽으로 커지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이 싫다. 


오른쪽 눈의 오른쪽 피부가 저릿저릿 떨리는 게 싫다. 일자가 된 내 목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등이 결리는 데에 신경 써야 하는 게 싫다. 목 왼쪽 아래가 따끔거리는 게 싫다. 가끔 왼쪽 머리가 어지럽다가 즉각 중심을 잡는 것을 느끼고는 다시 어지럽지 않아져 매우 신경이 쓰이는 게 싫다. 


일은 쌓였는데 빨리 퇴근하고 싶어 서두르다가 내일 또 쌓인 일을 마주 해야하는 상황이 매일이라는 게 싫다. 지난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일이 아닌 다른 걸 한 것 중 남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후회가 되는 게 싫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뭔가를 읽는 데 시간이 아까워서 보고 싶은 게 많아서 대충 대충 보다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게 싫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할 일이 두 세 가지 떠오르는 게 싫다. 막상 본격적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면 남은 시간이 20분 정도 밖에 안 되어서 끝내 그럼 다음에 해야지 하고 엉뚱한 영상이나 보고 앉았는 게 싫다. 


남들을 무시하다가 그들의 진가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사실은 그가 나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싫다. 그가 나에게 잘해주는 게 싫다. 그가 나를 몰라주는 게 더 싫다. 나에게 한 충고에 자존심 세우면서 딴 소리를 하다가 결국 그게 진짜 나를 위한 조언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게 싫다. 깊이 생각 안 하고 억지로 선택한 힘든 방법으로 꾸역 꾸역 하는 게 더 싫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라는 게 싫다. 그런 허락을 문서  상으로 받아야 한다는 건 더 싫다. 실행도 안하고 두 세 가지 반응을 미리 예상해 본 다음 각각에 맞는 (일부러) 어설픈 대답을 미리 준비해보는 내가 싫다. 


대단하지도 않은데 대단해 보이지 않으려고 대단하지 않은 척 하는 게 싫다. 그러다가 진짜 나를 대단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면 어쩌지 걱정하고 있는 건 더 싫다. 너무 대단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별 것 아니지도 않은 수준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게 싫다. 책임질 일을 하지 못하는 게 싫다. 책임질 일을 바라지 않는 척 하면서 겁내고 있는 건 더 싫다. 그러면서 뭔가 정확히 알고 상당한 일을 하고 있다고 티 나지 않게 노력하면서 티 내게 되는 게 싫다. 나의 속을 열어 보이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속을 궁금해하는 게 싫다. 상대방의 속을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은 더 싫다. 


지금도 떨리는 내 오른쪽 눈의 오른쪽 피부에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게 싫다. 얼마 전 다친 왼쪽 중둔근이 신경 쓰여서 운동을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없는 게 싫다. 작년 수능 전날 등허리를 다친 게 싫다. 삼 년 전 축구를 하다가 접질러서 오른쪽 발목 인대가 몇 가닥 끊어진 게 싫다. 그 때 일을 아직도 완전히 털어버리지 못하고 자꾸자꾸 생각나는 게 더 싫다. 


솔직하게 글을 쓰겠다고 하고 적당히 필터링 해서 쓰고 있는 게 싫다. 완전히 솔직해지는 데도 어휘력이 필요하다는 게 느껴지는 게 싫다. 내 어휘력이 빈곤하다는 걸 더 깊이 느끼는 게 더 싫다. 아직도 글쓰기를 못하고 있는 게 싫다. 


싫은 게 많다는 게 싫다. 더 많이, 더 구체적으로 싫어하지 못하는 건 더 싫다. 누구에게 보여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적당히 수위를 조절하는 게 싫다. 결국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더 싫다. 보여줘도 상관없을까 지금도 검열하는 게 싫다. 이것도 누군가 보면 이렇게까지 생각했단 말인가하고 놀라주기를 바라는 게 더 싫다. 그러면서 이건 정말 솔직한 건가 잠깐 감동했던 게 싫다. 결국 완전히 혼자 솔직해지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 건 더 싫다. 


역시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지를 아직도 못찾았다는 게 싫다. 앞으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게 더 싫다. 잠깐 마우스 휠을 굴려 글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땠는지 살펴보는 게 싫다. 애매하게 남은 시간에 억지로 빨리 끝을 내려고 하는 게 싫다. 한 쪽을 써도 아무 가치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는 게 싫다. 어떻게 끝을 내야하는지 지금 당장 떠오르지 않는게 싫다. 떠올리지 못하는 게 더 싫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