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하는데 쓰인다기 보다는, 뭔가를 하는 것을 위해 뭔가를 하는.
치발기
이가 아직 나지 않은 아기들에게 쥐어 주어 빨고 물게 하는 도구. 별, 달, 바나나, 꽃, 작은공 등 여러가지 모양이다. 아기가 물라고 의도된 곳보다는 그렇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이 물린다. 잇몸을 자극해 이가 나게 하지만, 막상 이가 나면 쓰지 않는다. 종종 끓는 물에 넣어 삶거나 소독기에 넣어 소독한다. 늘 침이 묻어 번들번들하다.
아기는 자기가 이 치발기를 썼었다는 걸 기억할 수 있을까. 아기는 입이 눈이고 코고 귀라 한다. 감각을 깨우는데 소용된 이 도구, 늘 씹히지만 부드럽고, 깨문 자국은 남지 않는 이 도구, 곧 큰 관심도 받지 못한 채로 관심 밖의 사물이 될 이 도구. 지나가는 도구. 이를 나게 도와주는 도구. 즉, 그 자체로 뭔가를 하기보다는 뭔가를 하기 위한 뭔가를 위한 도구.
치발기가 부모가 될 순 없지만, 부모 역할 일부를 치발기가 해 주는 것이 사실이다. 부모가 치발기 같기만 하다면 부족하겠지만, 치발기 같은 부모의 역할도 필요하겠지. 만약 치발기 같은 부모가 있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 것인가. 나는 치발기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가 무언가를 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는데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
아직 이가 나지 않은 8개월 막내를 보며, 치발기를 덜 씹혀서 이가 안나나 걱정을 하며, 나의 부모됨을 또 생각해보며, 일부러 발음을 되게 해본다. 치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