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잘 반죽이 된 찰흙은 어디서 올까? 이 물음은 뒤늦게야 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 눈에 보이는 것에 가려지니깐. 물레 위에 턱, 찰흙을 얹어 놓고 마른 손으로 두드린다. 무덤 모양으로. 질그릇을 본격적으로 만드는 일은 무덤을 만들면서 시작한다. 모든 살아 있던 것은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 있는 찰흙이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셀 수 없이 빙빙 돌며 순환해온, 삶과 죽음들로 꽉 차 있는 흙 덩이를 무덤 모양으로 두드린다. 여기에서 살려낼 질그릇을 생각하며. 물레는 그 자리에서 빙빙 돈다. 가만히 물레를 보다보면, 물레를 보는 내 눈도, 내 눈으로 물레를 보는 나도 딸려 돈다. 물레 위에서 빙빙 도는 흙덩이에 내 손이 잡힌다. 잡힌 손을 타고 내 몸도 같이 딸려 돈다. 질그릇이 되지 못한 흙덩이가 기울어진다. 울렁인다. 멀어진다.
“흙의 기강을 잡는다 생각하고 중심을 잡아야 해요.” 옆에 앉은 선생님의 말씀을 부여잡고 빙빙 도는 물레에서 잠깐 내린다. 질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레 위에 놓인 찰흙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흔들리며 떠가는 배 위에서 날아가는 새를 쏘기 어려운 것처럼, 빙빙 도는 물레 위에서 중심 없는 흙을 다루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빙빙 도는 물레도, 그 위의 부려진 흙도 제 갈 길로만 간다. 흙덩이는 가만히 놔두면 물레 위에서 그대로 빙빙 돌다 흩어질 것이다. 찰흙을 잡아도 내가 같이 딸려 돌다보면 질그릇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나를 중심 삼아야 한다. 질그릇 만들기에서 ‘중심을 잡는 일’은 흙의 중심을 잡는 일이면서, 동시에 나의 중심을 잡는 일인 것이다. 물레나 흙에 기대어서는 절대 중심을 잡을 수 없다. 오롯이 내가 스스로 나를 잡고, 그걸 기준으로 흙의 기강을 잡는다. 한 가운데로. 정확히 흙의 중심을 잡아내고 나서야 질그릇을 만들 수 있다.
흙덩이의 정수리를 엄지로 누르며 자리를 만든다. 검지와 중지로 흙을 끌어내며 공간을 넓힌다. 빙빙 도는 흙덩이가 밥그릇이 되도록 손바닥으로 감싸며 모아주거나, 손가락으로 눌러서 접시로 펼친다. 깊이와 넓이를 담으며 만들어지는 질그릇. 중심이 잘 잡힌 찰흙은 나 같이 중심이 아직 잡히지 않은 사람의 손도 비교적 잘 따른다. 모양이 어느정도 잡힌 질그릇의 밑부분에 쇠자를 대어 흙을 일부 파낸다. 그런 다음 무명실로 그릇 바닥 밑을 따내어 나무 판 위에 올려놓고, 날짜를 새긴다. 흙은 질그릇이 되었다.
물레에서 내려 탁자 위에 놓은 질그릇들은 가만히 조용하다. 순순해진 모습이다. 아직 찰흙이었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을 이 순순함을 이제야 본다. 작업실 한켠에 잘 반죽된 원통 모양의 찰흙들이 나란히 놓여있다. 그 만만치않음과 순순함들. 그들은 그걸 어디로부터 담아 왔을까. 질그릇을 만들어 보고 나서야, 잘 반죽된 찰흙들이 어디에서 여기까지 왔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