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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II제이 Apr 01. 2023

등 (23년 4월 상순의 순간2)

잊지 못할 등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 이야기를 들려달라.


  이제 막 기기 시작한 아기가 제 엄마를 알아본다. 엄마가 저를 두고 잠깐 다른 일을 하러 가는 것을 본다. 등을 본 아이가 곧 운다. 아기에게 엄마의 등은 곧 엄마의 부재다. 등을 돌리며 사라지는 엄마. 아기에게 엄마의 등은 엄마의 일부가 아니라 사라진 엄마다. 엄마의 등으로부터 나오는 게 거의 없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등을 보인다는 것이 무얼 뜻하는지 이미 아기가 알기 때문인가.


  등은 바깥으로 나와있는 신체 부위들 중에서 가장 소극적인 곳이 아닐까. 내가 직접 볼 수도, 쉽게 전체를 만질 수도 없는 부위. 내 손이 다 닿지 못하는 그런 먼 부위.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부위. 심하게 아프기 전까지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도, 관심도 없는 그런 부위. 등을 통해 뭔가 만들어지거나 전달되거나 표현되는 것은 거의 없지 싶다. 그저 밖에서 안으로 - 이를테면 등짝 스매싱처럼 - 전달되는 뭔가를 받아들이는 통로 정도나 되는 그런 부위.


  그래서,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등에서 그 주인의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눈여겨볼 만한 일인 것이다. 누군가 내 앞에서 돌리는 등이 보일 때, 등이 굳게 다문 입처럼 보일 때, 혹은 그 등이 점점 멀어지고 있을 때,  등이 이전과는 다르게 처져 보인다거나 작아 보일 때 등등. 누군가의 등이 보일 때, 왠지 모르게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싶어 했던 경험이 다들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럴 때 등은 그 소극적 면으로 밖에는 표현이 안 되는 무언가를 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창이 된다. 말이, 표정이, 손짓발짓까지 동원이 되어도 해결이 안 되는 그런 때, 그러니까 우리는 마지막에 가서 ‘등’을 내미는 것이다. 그러니, 어른에게도 등은 누군가의 일부로 보이기 보다는 그와의 관계가 사라지는 일의 예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등에다 대고 밖에는 할 수 없는 말만큼 절절한 말이 또 있을까. 등으로 듣게 되는 말만큼 더 뾰족하게 나를 찌를 말이 또 있을까. 한편으로, 등으로 밖에는 듣지 못하는 말이나 등으로밖에는 전할 수 없는 말만큼 마음을 저미는 말이 또 있을 것인가. 혹시나 당신이 잊지 못할 등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면, 당신에게 그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 등이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 내게도 들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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