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23년 4월 상순의 순간2)

잊지 못할 등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 이야기를 들려달라.

by 제II제이


이제 막 기기 시작한 아기가

제 엄마를 알아본다.

엄마가 저를 두고

잠깐 다른 일을 하러 가는 것을 본다.

등을 본 아이가 곧 운다.


아기에게 엄마의 등은 곧

엄마의 부재다.

등을 돌리며 사라지는 엄마.

아기에게 엄마의 등은

엄마의 일부가 아니라

사라진 엄마다.


엄마의 등으로부터 나오는 게

거의 없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등을 보인다는 것이

무얼 뜻하는지

이미 아기가 알기 때문인가.




등은 바깥으로 나와있는 신체 부위들 중

가장 소극적인 곳이 아닐까.

내가 직접 볼 수도,

쉽게 전체를 만질 수도 없는 부위.

내 손이 다 닿지 못하는

그런 먼 부위.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부위.


심하게 아프기 전까지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도,

관심도 없는 그런 부위.

등을 통해 뭔가 만들어지거나

전달되거나

표현되는 것은 거의 없지 싶다.

그저 밖에서 안으로

- 이를테면 등짝 스매싱처럼 -

전달되는 뭔가를 받아들이는

통로 정도나 되는 그런 부위.




그래서,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등에서 그 주인의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눈여겨볼 만한 일인 것이다.


내 앞에서 누군가의 돌아가는 등이 보일 때,

등이 굳게 다문 입처럼 보일 때,

혹은 그 등이 점점 멀어지고 있을 때,

등이 이전과는 다르게 처져 보인다거나

작아 보일 때 등등.


평소와 달리 누군가의 등이 눈에 띌 때,

왠지 모르게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그 사진을 찍고 싶어 했던 경험이

다들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럴 때 등은 그 소극적 면으로 밖에는

표현이 안 되는 무언가를

우리가 볼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창문이 된다.

말로, 표정으로, 손짓발짓까지 동원을 해도

해결이 안 되는 그런 때,

그러니까, 우리는 최종 지점까지 가서야

‘등’을 내미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등'은 누군가의 신체 일부로라기보다는

그와의 관계가 종결될 것만 같은

그런 예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등에다 대고 밖에는 할 수 없는 말만큼

절절한 말이 또 있을까.

등으로 듣게 되는 말만큼

더 뾰족하게 나를 찌를 말이 또 있을까.


다른 한편으로,

등으로 밖에는 듣지 못하는 말이나

등으로 밖에는 전할 수 없는 말만큼

마음을 저미는 말이 또 있을 것인가.




혹시나 당신이 잊지 못할 누군가의 '등'을

마음에 기억하고 있다면,

나는 그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당신에게 듣고 싶다.


그때 그 등이

무엇을 전달하고 있었는지 내게도 들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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